설교문
하나님 나라 상속자가 지켜야 할 소신
*** 하나님 나라 상속자가 지켜야 할 소신 / 디도서 2:15-3:8
디도서 2:15-3:8, “15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1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2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8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 들어가는 말
구약에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나타내는 시대 분류가 있습니다. 창세 이후 족장들의 시대는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신 ‘신정(神政) 시대’입니다. 다음으로는, 역시 신정 시대에 포함되지만,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셔서 다스리시던 ‘사사 시대’입니다. 그리고 사사 사무엘을 마지막으로 하여 사사 시대가 끝나고, 왕을 세워 통치하게 하신 ‘왕정 시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사 시대 말기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즉, 통치자나 법이 없이, 사람마다 자기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살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현대인들은 너무나 많은 법의 올가미에 갇혀, 자기 가치관과 신념을 지키기도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올바른 신앙적 가치관을 지키기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법에 매이고, 사람에 매이고, 일에 매이고, 쾌락에 매이고, 이단과 이념의 덫에 매여 무엇이 진정한 신앙의 길인지도 모른 체 기류에 휩쓸리며 삽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미 이러한 시대를 예고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3-5절입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그리고 디모데후서 4:3-4절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우리가 사는 시대가 이러합니다. 비록 시대는 혼탁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사람으로서 신앙적 소신을 지켜야 합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디도서는 사도 바울이 목회자인 디도에게 보낸 목회 서신입니다. 특히 디도가 사역하고 있던 그레데 섬 지역의 교회에는 유대주의자와 이단들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단적인 신앙을 배격하고, 바른 신앙과 바른 삶을 강조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바른 신앙과 바른 삶을 이어가도록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의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상속자로 삼으신 뜻을 기억하여, 분별력 있는 소신으로 살아야 함을 명합니다. 본문 2:15-3:2절을 봅시다.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소신 있게 생활하도록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소신을 지켜야 할 이유를 본문 4-5절에서 말씀합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를 ‘하나님께서 긍휼하심으로 죄를 씻으시고 성령으로 새롭게 하셨다.’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가 믿음의 소신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상속자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3-7절에서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영적인 소신으로 살아야 할 자세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즉, 우리도 믿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어 영생의 상속자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8절에서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라고 하십니다. 이 유익한 일을 힘쓰도록 성도들에게 담대하게 가르치라고 하십니다.
※ 하나님 나라 상속자가 지켜야 할 소신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회의를 하다 보면, 어떤 사람의 발언을 ‘소신 발언’이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소신(所信)이라 함은, 자기가 굳게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상황이나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의 믿음을 표현하는 발언이 소신 발언입니다. 바꾸어서 자기가 믿는 대로 행동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소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지금처럼, 온갖 부정과 불의, 권력형 비리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자기 신앙의 소신을 지킨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실, 직장이나 어느 공동체에서 자기의 신앙적 소신을 나타낸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지금은 점점 더 그리스도인에 대한 세상의 시각이 곱지 않습니다. 이런 때,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시는 말씀이 본문 1-2절에 있습니다.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참으로 어려운 요구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신 말씀에 비하면 그래도 괜찮은 편입니다. 마태복음 5:38-42절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나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참 그리스도인 즉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구원받은 사람에게 주시는 행동지침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신이란, 이처럼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행동지침을 어느 곳,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제가 고등학생 때, 교회에서 학생회장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친구들을 대거 전도해서 동기들이 많았습니다. 학교의 같은 반에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믿음이 채 들어가지 않아서겠지만,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내놓고 기도하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부끄러워서겠지요. 어떤 친구는 손으로 얼굴을 쓱 문지르면서 기도했다고도 했습니다. 제가 대한화섬에 다닐 때도, 점심시간이면 그 많은 직원이 식당에서 식사하지만, 분명히 그리스도인인데 기도하지 않고 식사하는 모습도 많이 보았습니다. 역시 조롱이나 비난이 두렵거나 부끄러움 때문이겠지요.
마가복음 8:38절입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이 말씀은 구원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주변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또는 내게 여러 가지 손실이 발생할 것 같아서 자기 신앙적 소신을 지키지 못하고 나타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과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의 의식 세계는 전혀 다릅니다. 의식뿐만 아니라 소속과 신분이 다르고, 소망이 다르고, 영의 유무(有無)까지도 다릅니다. 그렇다면 삶의 방식이 달라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12절에서,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에게 차별된 삶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왜 차별되어야 합니까? 그 이유를 본문 3-7절에서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의 의도는 ‘우리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의 말씀대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려면, 옛 된 세상적인 삶의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두울수록 빛이 더 필요하듯이 세상이 혼탁하고 불안할수록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소신은 뚜렷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렇게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듯이, 한 걸음씩 주님을 따라가면 됩니다. 영국의 철학자인 ‘밀’은, “어제 맨 끈은 오늘 허술해지기 쉽고, 내일은 풀어지기 쉽다.”라고 했습니다. 즉 ‘끈은 매일 다시 매어야 하듯, 사람도 그 결심한 일을 매일 거듭 여며야 변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신앙을 점검하여 옳고 그름을 잘 분별하면서 신앙적 소신을 따라 성실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한 여행자가 아주 황량한 광야 같은 지역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무 하나 없는 황폐한 땅이었습니다. 그때 한 양치기가 보였습니다. 양치기는 양 30마리와 함께 그곳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3년 전부터 황폐한 그곳에 홀로 양을 돌보면서 떡갈나무를 심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너도밤나무 묘목을 심고 습기 찬 골짜기에는 자작나무를 심습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여행자는 군인으로 우연히 예전의 그 황폐했던 땅을 다시 방문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황폐했던 그곳은 더는 황무지가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아름다운 숲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양치기가 그동안 심어놓은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자작나무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환상의 숲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 황폐했던 곳은 바로 지금의 남프랑스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다고 하는 프로방스 지방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나무를 묵묵히 심었던 양치기의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Elzeard Bouffier)'입니다. 이 글을 쓴 여행자는 ‘장 지오노(Jean Giono)’이며, 그는 프로방스 지방을 여행하다가 이 특별한 사람을 만났고, 그의 삶에 큰 감명을 받아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단편 소설을 썼습니다. 이 단편 소설은 실화이며 1953년에 처음 발표된 이후 미국 삼립협회 등. 지구재녹화운동 교육 자료로 꾸준히 보급되어왔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렇게 자신의 소신으로 환경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저나 여러분은 영적인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을 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영적인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영적인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영의 삶은 육신의 삶을 포함하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영적인 소신은 육신의 생활까지도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본문 8절에서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 나라 상속자로서 신앙적 소신으로 선한 일에 힘쓰며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고 사람들에게 유익하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이제 우리도 조금 더 넓은 시선과 확고한 믿음의 소신으로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내가 다니는 직장과 사업장 그리고 사회와 환경을 바꾸어가는 능력의 삶을 이룰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