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내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것
*** 내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것 / 마태복음 19:23-30
마태복음 19:23-30,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데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 들어가는 말
이 본문 말씀은 지난 10월에도 같은 본문으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초점을 달리해서 의미를 찾아보려 합니다. 이렇게 같은 말씀이 반복되는 것은 제게 주시는 감동 때문입니다. 한 해를 결산하고 새해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돌아보고, 어떤 삶을 계획해야 할지를 주님의 말씀 속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성도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즉 구원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요건과 주님을 따른 상급을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아온 지나온 삶의 자취를 돌아보고, 믿음의 삶을 업그레이드할 길을 찾아봅시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을 포함하는 구절은 ‘재물이 많은 청년 관원의 비유’라고 불리는데, 마태복음 19:16-30절, 마가복음 10:17-31절, 누가복음에는 18:18-30절에 공통으로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세 곳 모두가 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앞쪽에는 ‘어린아이를 축복하시는 예수님’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본문의 뒤쪽에는 ‘주님을 따름에 대한 진정한 보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부자와 천국 비유’처럼 여겨집니다. 이는 세상적인 시각으로 볼 때 그렇게 보입니다. 하지만, 본문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의 자세’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이 예수님을 찾아온 어떤 재물이 많은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이 청년을 다른 복음서에서는 ‘부자 청년 관원’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청년이 예수께 온 목적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하는가?’를 묻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청년에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라고 하셨습니다.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여, 오히려 영생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이 예수님과 부자 청년과의 대화의 주제는 ‘영생을 얻기에 합당한 삶’ 즉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이 이야기 다음이 바로 본문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라는 말씀에서의 부자는 세상적으로 재물을 많이 축적한 사람입니다. 본래의 주제는 ‘자기 버림, 자기 부정(否定)’입니다. 본문 29절의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자기 버림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16:24-25절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본문 말씀과 일치합니다. 이를 조금 바꾸어서 표현한다면 주님이 인정하시는 부자는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며, 이들은 ‘세상에서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는’ 사람입니다.
※ 예수님 말씀에 내가 찾아야 할 가장 귀중한 것이 있습니다.
본문 23-24절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포인트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일 것입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16:2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우리에게는 두 가지 생명이 있습니다. 육의 생명과 영의 생명입니다. 육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의 생명입니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그때는 모든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5:28-29절입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는 영원한 행복의 부활인지, 영원한 고통의 부활인지를 나누는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반드시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절에서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행복을 위한 부활인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내가 찾고 지켜야 할 가장 귀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이 돌아간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때문에 제자들이 단체로 정신적 공황 상태가 일어났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라는 말씀을 제자들은 ‘불가능하다’로 이해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요? 낙타가 어떻게 바늘귀로 들어갑니까? 그런데 예수께서는 아이러니(irony)한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은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나타냅니다. 계산 빠른 베드로가 예수님 말씀 의도를 대충 감잡고 나섰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데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그런데,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물음에 파격적인 대답을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천국에 들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천국에서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까지 받을 엄청난 보상을 제시하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엄청난 보상을 끌어낸 원인은 베드로의 말입니다. 베드로가 한 이 말에 우리가 찾고자 하는 중요한 열쇠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감잡으셨습니까?
베드로의 말을 다시 봅시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데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이 말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데” 이 말입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말입니다. 그러면, 잠시 과거로 돌아가 봅시다. 마태복음 4:18-22절을 봅시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태복음 9:9절도 봅시다.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제자로 삼으시려고 그들을 부르실 때, 그들은 집과 생업을 모두 버리고 즉시 주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이 했던 순종의 행동을 지금의 말로 바꾸면 ‘내 삶의 최우선은 주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따르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보상은, 지금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내 삶의 최우선 권을 둘 때 주어집니다.
※ 내 삶의 최우선권을 주님께 둔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로마서 8:5-8절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예수께서 명하신 말씀에 굴복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2:26절입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하나님의 나라에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을 위하여 준비하신 곳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님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그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즉 내가 삶에서 최우선권을 주님께 두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가장 귀하게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세상의 것들을 비우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영의 삶으로 채우는 것이 삶의 우선권을 주님께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육신적인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인기 절정의 가수였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에는 참된 기쁨도, 평안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성경을 뒤적이다가 어릴 때의 교회 생활이 가슴 뭉클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는 즉시 가까운 교회로 갔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는 감동에 젖어 자신의 지나온 날들을 회개하면서, 남은 생애를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면서 전속계약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는 정중하게 거절하면서 말했습니다. “너무 늦게 전화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제 목소리와 모든 재능을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만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 사람이 유명한 복음성가 가수이자 작곡가인 쉐아(G. B. Shea)입니다. 그가 작곡한 찬송가가 94장인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찬송입니다. 한번은 전도 집회에서 영감 있는 그의 찬송에 모두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는 박수에 답례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서 이렇게 박수갈채를 보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의 박수갈채와도 예수님을 바꿀 수 없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 명예권세를 거절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돈 싫어하는 사람 없겠지요? 세상에서 매일 일어나는 수많은 범죄 중에서 절대다수가 돈이나 재물과 연관된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돈이나 권력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만큼 세상 재물과 권세는 사람들에게 달콤한 유혹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토록 좋아하는 재물이 주님을 따르는 데에는 버려야 할 1순위입니다. 마태복음 6:24절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재물을 이렇게 경계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디모데전서 6:9-10절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세상 재물에 대하여 마음이 초연할 수 있다면, 그만큼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본문 27절에서 베드로가 한 말을 봅시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데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보다 쉽다.’라고 하신 말씀에 충격을 받은 베드로가 자신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는 것을 강조하며 당당하게 물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내 삶의 우선권을 주님께 둔다는 것은,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주님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지금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내 삶의 최우선을 주님께 두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따르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보상은, 지금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내 삶의 최우선 권을 둘 때 주어집니다. 그리고 내 삶의 우선권을 주님께 둔다는 것은,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주님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59절 이하에서 주님께서 ‘따르라.’라고 부르신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따르기를 미루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세상을 등지고 주님께로 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앞으로의 삶에서 주님이 내 삶의 가장 귀중한 목적이 되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내 인생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