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신앙으로 삽시다.
***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삽시다. / 데살로니가전서 5:12-22
데살로니가전서 5:12-22,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 들어가는 말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 모든 사람은 단 한 시간을 살더라도 인생의 여정이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우리는 십 수 년에서 몇 십 년의 인생 여정을 지나왔습니다. 여러분은 하루 한 순간의 삶의 시간들을 어떤 마음으로 지내 오셨는지요? 그리고 지금과 앞으로의 여정에 대하여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인도의 호랑이 사냥꾼으로 불리는 ‘짐 코벳’이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이 걸어가는 여정에 관심 없는 사람은 목적지에 도달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 사람은 자신의 삶의 매 순간에 관심을 가지고 의미를 부여할 때 목적이 이루었을 때에 행복감과 성취감이 더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 여정은 짧은 순간들이 모여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인생 여정을 고백하면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지금의 우리야 말로 ‘우리가 살아갈 날에 대하여, 우리의 인생 여정에 대하여’ 지혜를 구해야 할 때입니다. 만일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인생을 산다면 무미건조하고 피폐한 삶이 될 것입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이 말은 1982년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캘링이 ‘깨진 유리창의 이론(Broken window theory)’이라는 사회 무질서에 관하여 발표한 논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소한 무질서를 처리하지 않으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우연히 집 근처에 쓰레기를 버렸는데, 집주인이 이를 방치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곳에 또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하고, 결국은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깨진 유리창 하나는 별 것 아니지만 즉시 수리해야 더 큰 문제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고 지나치게 되면 ‘나비효과’에서 말하듯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영적인 일이 이러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겠다.’고 하신지 이천 년이 지난 오늘에는 이제는 더 미루려야 미룰 수도 없을 환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사는 지구촌은 기상 이변으로 시작해서 온갖 자연 재난들이 일어나며, 전쟁과 전쟁의 위협들, 땅이 붉어지는 사막화와 바다가 붉어지는 해양오염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천연자원의 고갈은 인류가 더 이상 지구에 의존하여 살 수 없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재림의 임박성에 대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경고하신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3:28-29절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우리 신앙인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님의 재림을 대비한 신앙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하듯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기름과 등을 함께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종말이나 예수님의 재림에도 흔들림 없이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7년 첫 주일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 준비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초대교회 신앙의 삶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데살로니가전.후서는 그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가 당면한 많은 시련과 고통에 대하여 성도들을 위로하고 마음을 담대하게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데살로니가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들이 우상숭배의 위협과 유대인의 위협과 황제숭배의 위협으로 생명의 위기까지 이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에 관하여 자세하게 알려줌으로써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성결한 삶을 살도록 가르칩니다. 본문 앞쪽 4:16-18절을 봅시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말한 바울은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이처럼 재임이 임박한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따라야 할 영적인 삶에 대하여 권면합니다.
※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의 원형은 초대교회의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은 초대교회의 신앙을 닮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순수하고 열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에베소교회에 편지하시면서 강력하게 권고하시는 말씀이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4-5절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아주 무서운 경고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다가온 시대를 사는 우리는 다시 처음 사랑과 행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처음 사랑과 행위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기쁨을 감사하며 감격하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랑과 감격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시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함께 모여 기도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기도하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불꽃처럼 임하셨습니다. 이렇게 성령님의 역사로 시작된 초대교회는 뜨거운 사랑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44-47절을 봅시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러한 열정이 박해와 환난으로 이어지자 예루살렘 교회는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가는 곳마다 교회를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로마의 박해와 유대인의 박해, 이단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제자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교회가 세속화 되고 변질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의 제자들인 교부들은 진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재림과 부활의 소망으로 성도들을 무장시키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회복하라고 하신 처음 사랑과 행위이며, 사도 바울의 편지 속에 나타나는 초대교회적인 신앙입니다.
※ 초대교회의 신앙은 하나님의 뜻에 민감한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나타내는 유명한 구절 중의 하나가 본문 16-18절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본문에는 14가지의 권면형식의 신앙 명령이 있습니다. 이 내용은 종말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것입니다. 12-15절에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성도가 해야 할 사항’입니다.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가장 귀히 여기라. 너희끼리 화목 하라.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라.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라.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라. 모든 사람을 대하여 항상 선을 따르라고 합니다. 이는 사랑과 겸손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화평을 유지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16-22절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성도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기도에 힘쓰며 성령 충만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삶의 권면들은 그리스도인이 당연히 이루어야 할 신앙의 삶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은 우리 스스로 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이어서 감히 제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삶을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이루어 주실 것을 간구 합니다. 본문 23-24절을 봅시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의 길을 스스로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4:26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그리고 로마서 8:26-27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그래서 항상 내 안에 성령님으로 충만하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열네 가지의 권면들을 요약해서 살펴봅시다. 본문 12-13절은 사역자들에 대한 의무들입니다. 이 말씀은 ‘목자가 양들을 아는 것처럼 양들도 자기들의 목자를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너희끼리 화목 하라.”는 13절 후반절부터 15절까지는 성도 상호간의 의무를 가르칩니다. 화목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원수를 맺지 말고 모든 사람과 화목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사회적인 약자와 육체적으로 연약한 자, 마음이 약한 자들을 무시하거나 해롭게 하지 말고 서로 받아 주고 위로하고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즉 자신들의 일조차 잘 감당하지 못하거나 자신들이 져야 할 짐을 잘 지지 못하는 자들의 연약함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15절 말씀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우리 자신이 앙갚음하는 일을 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용서받았거나 용서받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만 합니다. 짤막하게 권면한 세 가지는 짧게 표현했지만 가장 강력한 명령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거나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면 이 말씀은 더 설명도 이유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100% 순종만 필요합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말씀은 문자대로 하면 ‘성령의 불을 끄는 일을 중지하라.’고 할 수 있는데, ‘성령의 활동을 제한하거나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은 ‘악이라고 여겨지는 그 어떤 것들과도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신앙적 삶은 초대교회 신앙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부활신앙의 실현입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쓴 ‘지금 하십시오.’라는 시가 있습니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마디 생각나거든 지금 말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거든 지금 웃어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지금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나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 날이 저물어 갑니다. 인류역사가 저물어갑니다. 지금 하십시오. 그리고 부끄럽지 않게 주님을 기다립시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