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예수님의 오심 3 - 믿는 것과 따르는 것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048회 작성일 2013-12-18 22:30
*** 예수님의 오심3-믿는 것과 따르는 것 / 마태복음 16:24-27, 야고보서 2:18-22

마태복음 16:24-27,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야고보서 2:18-22, “18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 들어가는 말

사람들이 살아가는 형태는 여러 가지입니다. 자신의 성품과 기질을 따라서 나름대로의 삶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중에서도 이 시간에 살펴보려는 말씀의 내용은 이론가와 실천가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부류에 있어서 그들의 말은 기름 바른 듯이 매끄럽고 유창하게 잘 하는데 실천이 없는 사람이 있고, 어떤 부류는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가가 있습니다. 사람의 몸의 건강은 ‘얼마나 많이 먹느냐?’ 라기 보다는 ‘어떤 것을 먹고 어떻게 소화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많이 벌어들인다고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소비와 저축에 달려있으며, 책을 많이만 읽는다고 박식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같은 논리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많이 기도하고, 많이 바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신실하게 순종하고 실천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야고보서 본문 18절에서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신 말씀처럼, 믿음만 가진 신앙적 이론가가 아니라 믿는 바를 순종하고 실천하는 실천가가 되어야 합니다.

✦신학자 ‘사무엘 루터포트(Samuel Rutherford)’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들은 자신들이 안락한 침대 위에 평안히 누운 채로 천국으로 운반될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초대 교부인 ‘터툴리안(Tertullian)’은 “고난 받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고난을 받으신 그분의 백성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1547-1553년까지 영국의 국왕이었던 에드워드 6세는 매우 경건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예배할 때에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서서 말씀을 들었으며, 설교를 기록하여 일주일 내내 그 말씀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열정을 다하여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교회가 심각하게 세속화 되어서 세상의 빛이 아니라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근래 들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동떨어져서 이론적인 신앙으로 세상을 피곤하게 하고 불신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즉 신앙은 신앙대로, 생활은 생활대로 따로 국밥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보이신 것은 철저한 행동의 모범이었습니다. 가르치기만 하시는 이론가가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에 오시는 탄생부터 낮은 자리의 본이 되셨고, 가르침과 전도와 섬김에서 본을 보이셨으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순종과 희생의 본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사도행전 첫머리에서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동으로 본을 보이신 후에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에도 그러했습니다. 요한복음 13:12절입니다.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그래서 예수님의 오심을 생각하는 우리는 당연히 나 자신의 신앙이 믿는 것에 그치는 이론적인 신앙인인지, 아니면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함으로 따르는 진정한 실천적인 신앙인인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시간의 두 부분의 본문말씀은 굳이 배경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말씀이어서, 믿는 것과 따르는 것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 이론적인 신앙인의 무지함이 무엇입니까?

도시의 큰 교회에 새로운 목사가 부임했습니다. 그 교회 성도들은 은퇴하신 목사님의 뒤를 이을 젊은 후임 목사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드디어 부임 후 첫 번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목사는  “당신은 헌신했는가?”라는 제목의 설교로 많은 교인들을 감동하게 했습니다. 교인들은 마음이 고무되어 다음 주일에는 앞 다투어 앞자리로 갔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주일에도 목사는 똑같은 설교를 했습니다. 교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주일에도 같은 설교를 했습니다. 교인들은 장로님을 대표로 목사님께 보내어 “왜 한 가지 설교만 계속하는지, 그 설교 밖에 준비하지 못했는지?”를 항의하도록 했습니다. 장로의 말을 들은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많은 설교를 준비했지요. 하지만 여러분이 첫 번째 설교를 듣고도 실천하지 않고 두 번 세 번 거듭해도 도무지 실천하지 않아서 그 다음에 준비된 설교를 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들은 말씀을 실천할 때 준비된 다음 설교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소상하게 표현한 말씀이 있습니다. 에스겔 33:30-32절을 봅시다. “30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31 백성이 모이는 것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32 그들이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이 말씀에서 아주 심각한 상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지 않았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은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라는 말씀입니다. 즉 ‘이론적인 신앙인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흉내만 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모인 수많은 교회가 있고 수많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특히 성탄절이라고 마음이 들떠 있는 때입니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순종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마태복음 7:13-1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이어지는 마태복음 본문 27절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그리고 마태복음 7:21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의 핵심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이처럼 이론적인 신앙인이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하지 않으면 즉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잡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눈앞의 현실이 더 확실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쯤으로 여깁니다. 베드로후서 3:3-5절을 봅시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들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는 순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성이 없다고 여겨지고, 지금 당장은 눈앞의 이익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8:47절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이것이 이론적인 신앙의 무지입니다.

※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따라가야 갑니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로욜라’ 대학교의 ‘프레드 브라이언트’ 교수가 ‘사람들의 심리적 건강’에 대한 임상실험을 했습니다.
실험 대상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서 각각 일주일동안 수행해야 할 과제를 주었습니다. 과제는 ‘일주일동안 매일 20분씩 산책을 하는 것’입니다. 첫째 그룹은 ‘주변의 경치, 만나는 사람, 어떤 것이든지 감사와 가슴 벅찬 감격의 대상을 주목하라.’고 했고, 두 번째 그룹은 ‘낙서, 쓰레기, 찌푸린 얼굴 등과 같은 부정적인 대상을 주목하라.’고 했고 세 번째 그룹은 ‘그냥 운동 삼아 걸으라.’고 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후, 각 그룹의 웰빙 지수를 평가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실험 전 보다 행복감을 느꼈고, 두 번째 그룹은 실험 전 보다 더 행복하지 못했고, 세 번째 그룹은 별 변화가 없이 그저 그랬습니다.

위의 실험에서 밝혀졌듯이 사람은 같은 환경에서라도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서 그 삶이 달라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속했다고 할지라도 각자가 추구하는 것에 따라 그 삶의 내용이나 질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여전히 자신의 생각과 뜻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보이고 나타나는 것이 세상적인 것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고민하면서 주님과 세상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사람에게는 죄책감으로 삶이 부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주님을 닮아가려고 순종과 실천을 힘쓰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삶에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고린도후서 2:14-16절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그래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 뒤를 따라갑니다. 야고보서 본문 20-22절을 봅시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 탄식은 이론적인 믿음만 가진 사람들의 허탄함에 대한 탄식이며,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원한다면 순종과 실천이 따라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본문 25-26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실천하는 행동임을 말씀하십니다. 앞서 교부 터툴리안이 ‘고난 받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고난을 받으신 그분의 백성이 될 수 없다.’고 한 말처럼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따라서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수 있게 됩니다.

성경에 있는 약속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약속의 대표로 신명기 28장의 하나님께서 명하신 복과 저주가 있습니다. 1절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이 후의 모든 복을 열거하십니다. 신약의 약속의 대표로 산상수훈인 마태복음 5장의 팔복이 있습니다. 이 팔복의 말씀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행복을 말씀합니다. 10절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에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약속입니다.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22:7절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이 모든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여 실천하고 있다면 주님이 언제 재림하셔도 부끄러움 없이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채로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재앙을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한다면 이제부터 하나씩이라도 순종하고 실천하여 부끄러움 없이 주님을 기다리는 행복한 주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Total 1,420건 39 페이지 RSS
설교모음 목록
No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예수님의 오심 3 - 믿는 것과 따르는 것
  • 배의신
  • 12-18
  • 5049
849
예수님의 오심 2 - 치유와 회복
  • 배의신
  • 12-12
  • 4980
848
예수님의 오심1 - 비움과 새로운 채움
  • 배의신
  • 12-03
  • 5716
847
안주하면 죽습니다.
  • 배의신
  • 11-27
  • 5440
846
자신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 배의신
  • 11-20
  • 5449
845
결실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 배의신
  • 11-13
  • 4823
844
감사의 조건
  • 배의신
  • 11-05
  • 6677
843
의식화된 감사, 생활화된 감사
  • 배의신
  • 10-30
  • 5701
842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 배의신
  • 10-20
  • 5543
841
준비한 만큼 채우시는 하나님
  • 배의신
  • 10-15
  • 6517
840
작은 힘 큰역사
  • 배의신
  • 10-08
  • 4813
839
다가오는 수확의 계절
  • 배의신
  • 09-29
  • 5323
838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 배의신
  • 09-25
  • 5281
837
실천해야합니다.
  • 배의신
  • 09-17
  • 5162
836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는 길
  • 배의신
  • 09-08
  • 5089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