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오심1 - 비움과 새로운 채움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715회
작성일
2013-12-03 20:13
*** 예수님의 오심1 - 비움과 새로운 채움
에베소서 4:17-24,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빌립보서 2:5-11,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들어가는 말
벌써 2013년의 대강절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계속 되는 대강절이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대강절에는 나 자신이 다시 오실 예수님을 부끄럽지 않게 맞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점검해 보려합니다. 그 첫 시간으로 ‘예수님의 오심은 옛 것의 비움과 새로운 채움’임을 상기하며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비움과 채움은 ‘새로운 변화’를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본문 22-24절에서 그 의미를 밝혀줍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꾸라.’고 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는 것은 변화가 아니라 재창조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의 성향은 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23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하시며, 10-12절에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고 하십니다.
이처럼 모든 인생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서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이미 죽은 인생은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이 필요했습니다. 이 죄악으로 가득 찬 육신에 새로운 영의 생명이 거하려면 옛 것을 철거해야 합니다. 옛 것을 그대로 둔 채로는 새로운 생명이 들어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비움과 채움의 과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해 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는 순조로운 길도 있고 어려운 난관도 많습니다. 이 과정을 전도서 7:14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비록 어려운 난관이 많은 길이기는 하지만 이 새 생명의 길은 그 끝이 너무나 달콤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9절에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십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면 새 생명의 삶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벼농사 하는 것을 많이 보셨지요? 벼는 못자리에서부터 물이 많이 필요합니다. 모를 심을 때에도 물이 풍성하게 있어야 하고 벼가 성장하는 동안 내내 물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벼농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논에 항상 물이 가득 차 있어야 벼가 잘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논에 물이 말라 있는 것을 보면 ‘벼가 죽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논에 물을 항상 채워 놓으면 벼가 부실해서 조금만 바람이 세게 불어도 쉽게 넘어집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가끔 논바닥이 아주 마르지 않을 정도로 며칠씩 물을 빼두는 것입니다. 그래야 벼가 튼튼해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생명체의 성장이 이와 같습니다. 비옥한 땅에서 자란 장미꽃은 향기가 별로 없지만, 열악한 조건에서 자란 장미는 짙은 향기의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나무는 거센 바람으로 줄기가 흔들려야 뿌리가 흡수한 영양분이 높은 가지 끝까지 전달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늘 풍성하고 평안하고 형통하면 영의 성장도 둔해지고 아름다운 삶의 향기도 없습니다. 하지만 욥처럼 고난을 통하여 성장한 그리스도인은 그 삶이 아름답게 빛이 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고난의 환경은 오히려 하나님의 주도면밀하시며 세심한 배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비워야 하고, 무엇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를 살펴봅시다.
※ 옛 사람을 비워야 합니다.
옛 사람이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 이전의 삶을 말합니다. 모태신앙이라고 하는 믿음의 부모님을 둔 사람에게 있어서의 옛 사람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기 이전의 삶입니다. 지금 교회에 소속해 있으면서 예배에 출석하는 사람들 중에는 옛 사람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옛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들의 특징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을 자신의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뜻은 생각지도 못하고, 자신의 모든 삶에서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뜻, 자신의 계획에 의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묻지는 않고 자신의 생각, 자신의 요구사항만을 나열합니다. 그러니 조금만 일이 잘 못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걱정에 싸여버립니다. 옛말에 ‘잘 되면 자기 탓, 안 되면 조상 탓’이라고 했듯이, ‘모든 일이 잘 되면 자신이 잘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안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육체에 속한 옛 사람의 삶을 갈라디아서 5:19-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뿐만 아니라 에베소서 본문 다음에 나오는 25절부터 5:5절까지에서 벗어 버려야 할 옛 사람의 일들을 열거합니다. ‘거짓을 버리고,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도둑질 하지 말고, 더러운 말을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버리고,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을 버리고,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을 버리고, 어둠의 일을 버려라.’고 하십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면서 하나님을 거역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모두 비워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는 삶입니다. 이런 것들을 비워내지 않고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의 속에 있는 것들을 드러내는 것이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6:4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그러므로 자신의 생활 속에서 말이나 행동들이 옛 사람의 것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을 비워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 하나님의 뜻이 아닌 모든 것을 비워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이 그러했습니다. 빌립보서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비우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합니다. 바로 ‘자신의 뜻을 비워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5:18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고 하셨고, 6:38절에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6:39절에서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께서 마태복음 7:21절에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래서 우리가 비워야 할 것은 옛 사람에 속한 것들과 내 생각과 내 뜻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모든 것입니다.
※ 새 생명으로 채워야합니다.
새 생명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본문 24절에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 거듭난 삶입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거듭난 사람인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자신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을 했고, 회개하여 죄 사함도 받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자신이 거듭났는지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직 주님으로 충만하게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불행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1:24-26절입니다. “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다시 옛 사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런 형편을 일컬어 베드로후서 2:22절에서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고 했습니다. 이런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비운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채워야 합니다.
채워야 하는 대표적인 본으로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빌립보서 본문 5절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가 채워야 할 예수님의 마음이 어떤 것입니까? 6-8절입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 말씀을 요약하면 우리가 채워야 할 예수님의 마음이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뜻 모든 것을 다 비우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구약 성경 전체의 결론입니다. 전도서 12:13-14절을 봅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우리가 채워야 할 하나님의 뜻은 성경말씀에 낱낱이 기록해 두셨습니다. 대표적으로 말한다면 갈라디아서 5:22-23절에서 말씀하는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와 에베소서 5:9절의 빛의 열매 세 가지입니다. 에베소서 5:8-10절을 읽어봅시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창원시 홈페이지에 있는 감동적인 실화를 소개합니다.
주민센터(구 동사무소) 문을 열고 80대로 보이는 어르신이 들어옵니다. “이거 쌀이 좀 적은데… ”라고 머뭇거리시더니 “어려운 사람들한테 나눠줘~”라고 하십니다. 직원이 “어르신! 성함하고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라고 하자 어르신이 돌아서면서 “왜? 내가 누군지 알아서 뭐 할 건데? 그냥 알아서 처리해줘!”라고 호통 치듯이 말하고는 휑하니 나가버리셨습니다. 그렇게 쌀 100포를 두고 자리를 떠나신 어르신! 짧게 남긴 구수한 한 마디가 우리의 마음을 울립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마음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예컨대 주님으로 채워진 삶은 이런 삶입니다.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만 나타내려는 삶이 주님으로 채워진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억압보다는 이해와 관용의 마음,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감사의 말을, 위로하며 섬기며 봉사하면서도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기뻐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억지로가 아니라 마음에 채워진 하나님의 말씀이 삶에 저절로 나타나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의 오심에 감사하면서 주님이 보여주신 삶을 본받아 옛 사람을 비워내고 새 생명으로 채워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부끄럽지 않는 준비를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에베소서 4:17-24,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빌립보서 2:5-11,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들어가는 말
벌써 2013년의 대강절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계속 되는 대강절이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대강절에는 나 자신이 다시 오실 예수님을 부끄럽지 않게 맞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점검해 보려합니다. 그 첫 시간으로 ‘예수님의 오심은 옛 것의 비움과 새로운 채움’임을 상기하며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비움과 채움은 ‘새로운 변화’를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본문 22-24절에서 그 의미를 밝혀줍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꾸라.’고 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는 것은 변화가 아니라 재창조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의 성향은 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23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하시며, 10-12절에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고 하십니다.
이처럼 모든 인생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서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이미 죽은 인생은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이 필요했습니다. 이 죄악으로 가득 찬 육신에 새로운 영의 생명이 거하려면 옛 것을 철거해야 합니다. 옛 것을 그대로 둔 채로는 새로운 생명이 들어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비움과 채움의 과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해 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는 순조로운 길도 있고 어려운 난관도 많습니다. 이 과정을 전도서 7:14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비록 어려운 난관이 많은 길이기는 하지만 이 새 생명의 길은 그 끝이 너무나 달콤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9절에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십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면 새 생명의 삶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벼농사 하는 것을 많이 보셨지요? 벼는 못자리에서부터 물이 많이 필요합니다. 모를 심을 때에도 물이 풍성하게 있어야 하고 벼가 성장하는 동안 내내 물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벼농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논에 항상 물이 가득 차 있어야 벼가 잘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논에 물이 말라 있는 것을 보면 ‘벼가 죽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논에 물을 항상 채워 놓으면 벼가 부실해서 조금만 바람이 세게 불어도 쉽게 넘어집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가끔 논바닥이 아주 마르지 않을 정도로 며칠씩 물을 빼두는 것입니다. 그래야 벼가 튼튼해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생명체의 성장이 이와 같습니다. 비옥한 땅에서 자란 장미꽃은 향기가 별로 없지만, 열악한 조건에서 자란 장미는 짙은 향기의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나무는 거센 바람으로 줄기가 흔들려야 뿌리가 흡수한 영양분이 높은 가지 끝까지 전달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늘 풍성하고 평안하고 형통하면 영의 성장도 둔해지고 아름다운 삶의 향기도 없습니다. 하지만 욥처럼 고난을 통하여 성장한 그리스도인은 그 삶이 아름답게 빛이 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고난의 환경은 오히려 하나님의 주도면밀하시며 세심한 배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비워야 하고, 무엇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를 살펴봅시다.
※ 옛 사람을 비워야 합니다.
옛 사람이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 이전의 삶을 말합니다. 모태신앙이라고 하는 믿음의 부모님을 둔 사람에게 있어서의 옛 사람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기 이전의 삶입니다. 지금 교회에 소속해 있으면서 예배에 출석하는 사람들 중에는 옛 사람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옛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들의 특징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을 자신의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뜻은 생각지도 못하고, 자신의 모든 삶에서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뜻, 자신의 계획에 의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묻지는 않고 자신의 생각, 자신의 요구사항만을 나열합니다. 그러니 조금만 일이 잘 못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걱정에 싸여버립니다. 옛말에 ‘잘 되면 자기 탓, 안 되면 조상 탓’이라고 했듯이, ‘모든 일이 잘 되면 자신이 잘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안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육체에 속한 옛 사람의 삶을 갈라디아서 5:19-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뿐만 아니라 에베소서 본문 다음에 나오는 25절부터 5:5절까지에서 벗어 버려야 할 옛 사람의 일들을 열거합니다. ‘거짓을 버리고,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도둑질 하지 말고, 더러운 말을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버리고,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을 버리고,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을 버리고, 어둠의 일을 버려라.’고 하십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면서 하나님을 거역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모두 비워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는 삶입니다. 이런 것들을 비워내지 않고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의 속에 있는 것들을 드러내는 것이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6:4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그러므로 자신의 생활 속에서 말이나 행동들이 옛 사람의 것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을 비워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 하나님의 뜻이 아닌 모든 것을 비워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이 그러했습니다. 빌립보서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비우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합니다. 바로 ‘자신의 뜻을 비워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5:18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고 하셨고, 6:38절에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6:39절에서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께서 마태복음 7:21절에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래서 우리가 비워야 할 것은 옛 사람에 속한 것들과 내 생각과 내 뜻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모든 것입니다.
※ 새 생명으로 채워야합니다.
새 생명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본문 24절에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 거듭난 삶입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거듭난 사람인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자신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을 했고, 회개하여 죄 사함도 받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자신이 거듭났는지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직 주님으로 충만하게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불행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1:24-26절입니다. “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다시 옛 사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런 형편을 일컬어 베드로후서 2:22절에서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고 했습니다. 이런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비운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채워야 합니다.
채워야 하는 대표적인 본으로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빌립보서 본문 5절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가 채워야 할 예수님의 마음이 어떤 것입니까? 6-8절입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 말씀을 요약하면 우리가 채워야 할 예수님의 마음이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뜻 모든 것을 다 비우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구약 성경 전체의 결론입니다. 전도서 12:13-14절을 봅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우리가 채워야 할 하나님의 뜻은 성경말씀에 낱낱이 기록해 두셨습니다. 대표적으로 말한다면 갈라디아서 5:22-23절에서 말씀하는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와 에베소서 5:9절의 빛의 열매 세 가지입니다. 에베소서 5:8-10절을 읽어봅시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창원시 홈페이지에 있는 감동적인 실화를 소개합니다.
주민센터(구 동사무소) 문을 열고 80대로 보이는 어르신이 들어옵니다. “이거 쌀이 좀 적은데… ”라고 머뭇거리시더니 “어려운 사람들한테 나눠줘~”라고 하십니다. 직원이 “어르신! 성함하고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라고 하자 어르신이 돌아서면서 “왜? 내가 누군지 알아서 뭐 할 건데? 그냥 알아서 처리해줘!”라고 호통 치듯이 말하고는 휑하니 나가버리셨습니다. 그렇게 쌀 100포를 두고 자리를 떠나신 어르신! 짧게 남긴 구수한 한 마디가 우리의 마음을 울립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마음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예컨대 주님으로 채워진 삶은 이런 삶입니다.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만 나타내려는 삶이 주님으로 채워진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억압보다는 이해와 관용의 마음,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감사의 말을, 위로하며 섬기며 봉사하면서도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기뻐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억지로가 아니라 마음에 채워진 하나님의 말씀이 삶에 저절로 나타나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의 오심에 감사하면서 주님이 보여주신 삶을 본받아 옛 사람을 비워내고 새 생명으로 채워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부끄럽지 않는 준비를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