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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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11-20 15:43
*** 자신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 창세기 35:1-5, 유다서 1:5-7
창세기 35:1-5,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유다서 1:5-7, “5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 들어가는 말
얼마 전에 미국의 예일 대학교에서 TV공개실험을 했습니다. 주제는 ‘사람들의 비교심리연구’였습니다. 첫 번째 실험으로 다섯 명의 젊은 여성들의 심리 테스트입니다. 다섯 여성들이 테이블을 중심으로 둘러앉게 하고 관계자가 실험에 대한 설명을 했습니다. “이 실험은 스타킹 제품의 질과 색상, 신축성, 편의성 등을 비교 평가하는 것이며, 자신의 소감을 솔직하게 기록해 주십시오.” 그리고 번호를 붙인 스타킹이 1번부터 차례로 5번까지 순차적으로 주어졌습니다. 여성들은 다섯 제품을 동시에 모두 비교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다섯 명의 여성들이 각각 제품에 대하여 자신이 느낀 장. 단점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평가 내용은 다섯 제품 모두가 달랐고 다섯 명의 여성이 모두 달랐습니다.
두 번째 실험은 다섯 젊은 남성들에 대한 심리 테스트였습니다. 역시 다섯 남성들이 테이블을 중심으로 둘러앉았고, 실험의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다섯 제품의 청바지에 대하여 질과 색상, 신축성, 편의성 등을 비교해서 자신의 소감을 솔직하게 기록해 주십시오.” 그리고 번호가 붙은 청바지가 1번부터 5번까지 순차적으로 주어졌습니다. 참가자들은 다섯 제품을 서로 비교하며 꼼꼼하게 비교했습니다. 발표 시간에 여성들과 같이 다섯 명이 모두 제품에 대한 의견이 달랐고, 다섯 제품에 대한 평가도 모두 달랐습니다.
모든 평가를 들은 후, 실험 관계자가 제품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본 제품은 한 공장에서 동일한 날짜에 동일한 라인에서 생산된 동일한 제품입니다.” 모두들 ‘이럴 수가!“라는 충격적이고 허탈한 표정들이었습니다.
관계자가 실험에 대한 의도를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의 뇌는 비교분석을 명령하면 서로 다른 점을 가상하여 비교검토하게 됩니다. 그래서 같은 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점을 찾게 되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사람의 마음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감정을 신뢰합니까? 사람들은 강한 척하며, 똑똑한 척하지만 우리 인생들은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시편 78:39절에서 시인은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사야 2:22절에서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인생들이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자신의 길을 계획하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여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신뢰하고 세상을 더 신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를 마다하고 자신의 생각을 따라갑니다. 이 시간에는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창세기 본문말씀은 야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야곱이 형인 에서의 장자의 권한을 팥죽 한 그릇으로 샀고,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형의 보복이 두려워서 외갓집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도망쳤습니다. 가는 길에 한 곳에서 잠을 자다가 꿈에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하겠다고 하시며 야곱의 미래에 대하여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그곳에 베게로 했던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부르고,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20-22)
그리고 도착한 외삼촌의 집에서 20년을 지내며 가정을 이루었고, 외삼촌 라반의 눈총을 피하여 가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 세겜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세겜에서 딸 디나가 세겜의 추장에게 강간을 당하게 되고, 그 오빠들이 보복으로 세겜 성을 기습하여 추장을 비롯한 남자들을 죽였습니다. 이렇게 야곱 가족의 일들이 꼬여갈 때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이 말씀은 20여년 전에 했던 약속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이 머물러야 할 곳은 세겜이 아니라 벧엘이었습니다. 자신이 머물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바른 자리를 찾게 하신 것입니다.
유다서 본문말씀은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가 초대교회의 올바른 신앙을 지키도록 하기 위하여 기록한 말씀입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은 피조물들을 징계하신다는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믿지 않는 자들은 멸하시고, 자기가 머물러야 할 자리를 이탈한 천사들 즉 사탄과 마귀들을 심판하시며, 사탄의 미혹을 따른 소돔과 고모라와 다른 도시들을 불로 심판하신 것을 거울로 삼으셨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중요한 요점도 ‘자신의 자리를 떠나게 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7절을 봅시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거울이 되었다는 것은 지금 우리들에게도 경고로 보여주시는 것임을 뜻합니다.
※ 자신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믿음의 사람들과 그들의 믿음으로 행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죽도록 충성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주어진 은사도 다르고 환경이나 상황도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부름 받은 그 자리에서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20-24절을 봅시다.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 자리가 좋은 자리일 때에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지만, 그 자리가 나쁘거나 고난이 따르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다른 모든 우상숭배자들처럼 자신이 만든 종교를 따르는 종교인일 뿐입니다.
여러분도 혹 이런 일들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고난이 있을 때에 야곱처럼 하나님께 약속을 합니다. 앞에서 보았던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께 했던 약속을 ‘서원’이라고 합니다. 즉 ‘이렇게 해주시면 이렇게 행하겠습니다.’라는 식의 조건부 약속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야곱처럼 형편이 좋아지거나 삶에 바빠서 그 약속을 잊고 살아갑니다. 야곱은 두 아내를 얻기 위해 14년을 일했고, 자신의 재산을 위하여 6년을 외삼촌인 라반의 양을 먹였습니다. 너무나 바빠서 자신이 했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결단코 그 약속을 잊지 않으십니다. 신명기 23:21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그리고 전도서 5:5-6절을 봅시다.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하나님께서는 서원을 잊지 아니하실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갚으라고 하십니다. 서원이 아니라도 자신의 자리를 떠난 사람에게는 그 자리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만일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지 않으면 그 자리를 기억하도록 고난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유다서에서는 자신의 자리를 떠난 천사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신다고 하셨고,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은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미혹을 따랐다가 불 심판을 받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자리를 떠나 재물에 미혹되어 예수님을 팔았다가 저주를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제자들이 가룟 유다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뽑으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바 되어 봉사와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서원을 잊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야곱에게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도록 환경을 만드셨습니다. 외삼촌 라반이 야곱을 시기하여 미운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창세기 31:2절에서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아내들을 불러내어 떠나야 하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그런데 야곱은 가족들을 이끌고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에서 주저앉아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계속 움직이도록 사건을 일으키셨습니다. 딸인 디나가 성읍에 놀러갔다가 추장인 세겜에게 강간을 당한 것입니다. 그것을 보복하려고 세겜의 남자들이 할례를 받게 했고, 움직이기 힘들 때를 틈타서 시므온과 레위가 성을 급습하여 남자들을 다 죽여버렸습니다. 야곱은 더 이상 세겜에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치러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급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야곱은 가족들과 모든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야곱 가족은 옷을 갈아입고 우상을 버렸습니다.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은 예배의식을 위한 청결뿐만 아니라 행위를 고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야곱의 집안에도 우상이 있었습니다. 즉 가족들 중에는 주변의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던 우상을 조각한 인형들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을 떠날 때 아내 라헬이 아버지의 신을 도둑질 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들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를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실행할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그 자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리입니다. 진실한 삶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리입니다. 만일 하나님보다 재물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자신의 욕망 때문에 선택한 자리라면 하나님이 주신 자리가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의 자리에 있을 때에 가장 편안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의 자리를 지킬 때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 명예권세를 쌓아놓았을지라도 자신의 자리가 아니면 불편하고 불안하고 고통스럽습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주님이 주신 자리에 있을 때는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탕자의 이야기 중에서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탕자가 자유와 즐거움을 찾아서 세상으로 갔지만 그곳에는 평안도 진정한 기쁨도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곳에 평안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3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믿을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세상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버리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 한 약속은 지키십시오. 돈을 따라가고 쾌락을 따라가고 명예를 따라가고 사람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징계와 죽음도 함께 따라갑니다. 오직 주님께서 부르신 자리에서 죽도록 충성하여 주님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상급을 쌓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창세기 35:1-5,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유다서 1:5-7, “5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 들어가는 말
얼마 전에 미국의 예일 대학교에서 TV공개실험을 했습니다. 주제는 ‘사람들의 비교심리연구’였습니다. 첫 번째 실험으로 다섯 명의 젊은 여성들의 심리 테스트입니다. 다섯 여성들이 테이블을 중심으로 둘러앉게 하고 관계자가 실험에 대한 설명을 했습니다. “이 실험은 스타킹 제품의 질과 색상, 신축성, 편의성 등을 비교 평가하는 것이며, 자신의 소감을 솔직하게 기록해 주십시오.” 그리고 번호를 붙인 스타킹이 1번부터 차례로 5번까지 순차적으로 주어졌습니다. 여성들은 다섯 제품을 동시에 모두 비교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다섯 명의 여성들이 각각 제품에 대하여 자신이 느낀 장. 단점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평가 내용은 다섯 제품 모두가 달랐고 다섯 명의 여성이 모두 달랐습니다.
두 번째 실험은 다섯 젊은 남성들에 대한 심리 테스트였습니다. 역시 다섯 남성들이 테이블을 중심으로 둘러앉았고, 실험의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다섯 제품의 청바지에 대하여 질과 색상, 신축성, 편의성 등을 비교해서 자신의 소감을 솔직하게 기록해 주십시오.” 그리고 번호가 붙은 청바지가 1번부터 5번까지 순차적으로 주어졌습니다. 참가자들은 다섯 제품을 서로 비교하며 꼼꼼하게 비교했습니다. 발표 시간에 여성들과 같이 다섯 명이 모두 제품에 대한 의견이 달랐고, 다섯 제품에 대한 평가도 모두 달랐습니다.
모든 평가를 들은 후, 실험 관계자가 제품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본 제품은 한 공장에서 동일한 날짜에 동일한 라인에서 생산된 동일한 제품입니다.” 모두들 ‘이럴 수가!“라는 충격적이고 허탈한 표정들이었습니다.
관계자가 실험에 대한 의도를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의 뇌는 비교분석을 명령하면 서로 다른 점을 가상하여 비교검토하게 됩니다. 그래서 같은 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점을 찾게 되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사람의 마음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감정을 신뢰합니까? 사람들은 강한 척하며, 똑똑한 척하지만 우리 인생들은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시편 78:39절에서 시인은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사야 2:22절에서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인생들이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자신의 길을 계획하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여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신뢰하고 세상을 더 신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를 마다하고 자신의 생각을 따라갑니다. 이 시간에는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창세기 본문말씀은 야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야곱이 형인 에서의 장자의 권한을 팥죽 한 그릇으로 샀고,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형의 보복이 두려워서 외갓집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도망쳤습니다. 가는 길에 한 곳에서 잠을 자다가 꿈에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하겠다고 하시며 야곱의 미래에 대하여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그곳에 베게로 했던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부르고,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20-22)
그리고 도착한 외삼촌의 집에서 20년을 지내며 가정을 이루었고, 외삼촌 라반의 눈총을 피하여 가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 세겜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세겜에서 딸 디나가 세겜의 추장에게 강간을 당하게 되고, 그 오빠들이 보복으로 세겜 성을 기습하여 추장을 비롯한 남자들을 죽였습니다. 이렇게 야곱 가족의 일들이 꼬여갈 때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이 말씀은 20여년 전에 했던 약속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이 머물러야 할 곳은 세겜이 아니라 벧엘이었습니다. 자신이 머물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바른 자리를 찾게 하신 것입니다.
유다서 본문말씀은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가 초대교회의 올바른 신앙을 지키도록 하기 위하여 기록한 말씀입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은 피조물들을 징계하신다는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믿지 않는 자들은 멸하시고, 자기가 머물러야 할 자리를 이탈한 천사들 즉 사탄과 마귀들을 심판하시며, 사탄의 미혹을 따른 소돔과 고모라와 다른 도시들을 불로 심판하신 것을 거울로 삼으셨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중요한 요점도 ‘자신의 자리를 떠나게 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7절을 봅시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거울이 되었다는 것은 지금 우리들에게도 경고로 보여주시는 것임을 뜻합니다.
※ 자신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믿음의 사람들과 그들의 믿음으로 행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죽도록 충성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주어진 은사도 다르고 환경이나 상황도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부름 받은 그 자리에서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20-24절을 봅시다.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 자리가 좋은 자리일 때에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지만, 그 자리가 나쁘거나 고난이 따르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다른 모든 우상숭배자들처럼 자신이 만든 종교를 따르는 종교인일 뿐입니다.
여러분도 혹 이런 일들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고난이 있을 때에 야곱처럼 하나님께 약속을 합니다. 앞에서 보았던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께 했던 약속을 ‘서원’이라고 합니다. 즉 ‘이렇게 해주시면 이렇게 행하겠습니다.’라는 식의 조건부 약속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야곱처럼 형편이 좋아지거나 삶에 바빠서 그 약속을 잊고 살아갑니다. 야곱은 두 아내를 얻기 위해 14년을 일했고, 자신의 재산을 위하여 6년을 외삼촌인 라반의 양을 먹였습니다. 너무나 바빠서 자신이 했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결단코 그 약속을 잊지 않으십니다. 신명기 23:21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그리고 전도서 5:5-6절을 봅시다.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하나님께서는 서원을 잊지 아니하실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갚으라고 하십니다. 서원이 아니라도 자신의 자리를 떠난 사람에게는 그 자리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만일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지 않으면 그 자리를 기억하도록 고난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유다서에서는 자신의 자리를 떠난 천사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신다고 하셨고,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은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미혹을 따랐다가 불 심판을 받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자리를 떠나 재물에 미혹되어 예수님을 팔았다가 저주를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제자들이 가룟 유다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뽑으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바 되어 봉사와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서원을 잊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야곱에게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도록 환경을 만드셨습니다. 외삼촌 라반이 야곱을 시기하여 미운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창세기 31:2절에서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아내들을 불러내어 떠나야 하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그런데 야곱은 가족들을 이끌고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에서 주저앉아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계속 움직이도록 사건을 일으키셨습니다. 딸인 디나가 성읍에 놀러갔다가 추장인 세겜에게 강간을 당한 것입니다. 그것을 보복하려고 세겜의 남자들이 할례를 받게 했고, 움직이기 힘들 때를 틈타서 시므온과 레위가 성을 급습하여 남자들을 다 죽여버렸습니다. 야곱은 더 이상 세겜에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치러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급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야곱은 가족들과 모든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야곱 가족은 옷을 갈아입고 우상을 버렸습니다.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은 예배의식을 위한 청결뿐만 아니라 행위를 고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야곱의 집안에도 우상이 있었습니다. 즉 가족들 중에는 주변의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던 우상을 조각한 인형들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을 떠날 때 아내 라헬이 아버지의 신을 도둑질 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들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를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실행할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그 자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리입니다. 진실한 삶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리입니다. 만일 하나님보다 재물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자신의 욕망 때문에 선택한 자리라면 하나님이 주신 자리가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의 자리에 있을 때에 가장 편안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의 자리를 지킬 때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 명예권세를 쌓아놓았을지라도 자신의 자리가 아니면 불편하고 불안하고 고통스럽습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주님이 주신 자리에 있을 때는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탕자의 이야기 중에서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탕자가 자유와 즐거움을 찾아서 세상으로 갔지만 그곳에는 평안도 진정한 기쁨도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곳에 평안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3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믿을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세상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버리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 한 약속은 지키십시오. 돈을 따라가고 쾌락을 따라가고 명예를 따라가고 사람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징계와 죽음도 함께 따라갑니다. 오직 주님께서 부르신 자리에서 죽도록 충성하여 주님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상급을 쌓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