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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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11-13 13:47
*** 결실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 열왕기하 4:8-10, 16-17, 마태복음 10:40-42
열왕기하 4:8-10, 16-27, “8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9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10 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
“16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17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한 해가 지나 이때쯤에 엘리사의 여인에게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마태복음 10:40-42,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어저께 사랑밭 새벽편지에 올라온 이야기입니다.
버스가 정류장에 서는데, 어떤 학생이 멀리서 버스를 보고 뛰기를 시작했습니다. 버스 기사는 그 모습을 보고는 15초 정도를 기다렸습니다. 남자 고등학생이 먼 거리를 전력으로 뛰어와서 버스를 타면서 \"헉헉, 고맙습니다!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기사 아저씨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러자 기사아저씨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 정신이면 된다. 그렇게 힘껏 하면 안되는 게 없다.”
세상에서는 이런 정신력을 일컬어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고 합니다. ‘정신을 집중하여 노력하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성취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사람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희망일 것입니다. 이러한 특성은 시대가 어둡고 환경이 어려울수록 더 강하게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대해도 좋을 여건을 만들어 놓지도 않은 채,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이런 막연한 기대감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66권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다스림의 원칙은 ‘행한 대로 갚는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33:20절에서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가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고 하시며, 마태복음 16:27절에서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라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도록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본문을 중심으로 결실을 원하는 사람이 마땅하게 해야 할 일들을 살펴보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열왕기하 본문말씀은 자주 거론했던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나타내셨던 일입니다. 수넴은 아셀 지파의 성읍인데, 한번은 엘리사가 수넴에 갔다가 한 귀한 여인의 정성어린 음식대접을 받았습니다. 여인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남편과 상의하여 가끔 지나는 선지자를 위하여 머물 수 있는 방을 마련했습니다. 엘리사는 그 곳을 지날 때마다 그 집에 들러 음식을 먹고 쉴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그 방에 누웠다가 그 여인의 후대와 호의에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환에게 여인을 불러오라고 했고 여인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모든 것이 족하다고 했습니다. 사환이 그 집에는 자식이 없다고 알렸고, 엘리사는 다시 그 여인을 불러서 일 년 후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축복했고 과연 일 년 후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그 아이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여인은 엘리사를 찾아 갔고 엘리사는 죽은 아이를 살려주었습니다. 수넴 여인이 이렇게 놀라운 결실을 경험한 이유는 그녀의 성실한 삶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8절에서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진심어린 대접의 결과였음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상을 받을 사람’에 대한 말씀입니다. 즉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상급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약하면 ‘자신이 영접하고 섬긴 대로 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크고 위대한 일에만 상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일, 즉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 하여 냉수 한 그릇을 주는 것까지 반드시 상급이 있다고 하십니다. 마가복음 9:4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이 말씀에서도 우리가 무엇이라도 심고 뿌려야 그 결과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이 두 본문말씀에서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은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라 ‘성실과 진심어린 영접과 섬김과 대접이 놀라운 결과를 이루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이 삶을 돌아보면서 앞으로의 삶에는 놀라운 결실을 얻을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설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결실을 원한다면 정성스럽게 심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천국에 대한 일곱 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31-33절에 나오는 겨자씨와 누룩에 대한 비유는 ‘천국의 확장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겨자씨와 누룩은 작고 미미한 것을 의미합니다. 즉 처음에는 아주 미미하게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엄청나게 성장하고 확장되어 온 세상 사람들에게 참 생명력을 주게 될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겨자씨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외적 성장을 의미하며, 누룩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내적인 성장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요약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것까지도 소중하게 여기며 심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과도 꼭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도 별로 없고, 심고 뿌리고 가꾸고 기다리는 삶도 별로 없습니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는 옛말처럼 금방 결실을 얻기를 바라는가 하면 아예 심지도 않고 얻을 생각만 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무작정 크고 좋은 것을 선호하는 풍속까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런 사상이 교회에도 깊숙이 퍼져 있습니다. 이는 또 다른 교회의 세속화입니다. 하지만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정성어린 마음으로 작은 것부터 심어가야 합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돌보는 것도 심는 것이지만 이는 초보적인 신앙의 삶입니다. 성숙한 신앙의 삶은 주변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하지 않습니까! 주님을 닮아갈수록 영적인 시각은 넓어지고 멀리까지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서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2절입니다.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변을 돌아보며 작은 것이라도 정성어린 마음으로 심어가야 합니다. 심어 놓은 것이 있을 때는 기대하지 않을지라도 때가 되면 좋은 결실로 얻게 됩니다. 시편 126:5-6절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하십니다.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라도, 암담한 현실 속에서라도 주님을 생각하며 나누고 베풀고 대접하고 섬기기를 계속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결실을 맺게 하시고 거두게 하십니다. 갈라디아서 6:9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씨를 뿌리는 기회는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번에 처음으로 겨울철 농사를 시작 했습니다.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지나서 봄에 수확하는 것입니다. 지난주간에 시금치 씨를 뿌리고 양파 모종을 심었습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시금치는 겨울에도 수확을 할 수 있고 양파는 내년 오월 경에 수확할 것입니다. 작은 텃밭이지만 이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웁니다. 열왕기하 본문에서 수넴 여인은 의도적으로 섬김의 씨를 뿌렸습니다. 물론 어떤 이익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고 섬김의 사랑을 심었습니다. 9-10절의 여인의 말을 봅시다.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여인은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았고, 주도면밀하게 계획하여 섬김의 사랑을 심었습니다. 엘리사가 자신이 사는 마을에 온 것은 하나님의 사람을 섬길 수 있는 기회였고 여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손님을 대접한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도 아브라함은 자신의 집 앞을 지나는 하나님과 그 사자들을 그냥 지나가게 하지 않았습니다. 섬김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님을 영접하여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그것이 조카 롯의 가정을 살리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수넴 여인에게도 섬김의 결실이 의외로 빨리 이루어졌습니다. 자식도 없이 쓸쓸한 노부부에게 아들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생산할 수 없는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 여인의 가정에 상급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갑자기 죽었을 때에, 다시 한 번 아들을 살려주시는 상급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본문말씀처럼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것에도 상급을 주겠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수넴 여인에게 하나님의 사람을 섬긴 보상을 기적으로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원리입니다. 고린도후서 9:6절에서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적게 심은 자는 적게,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그리고 아무 것도 심지 않은 자는 분명히 아무 것도 거두지 못합니다. 또한 육신을 심으면 육신에서 악을 거두고, 영을 심으면 영으로부터 영생을 거둡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결실을 원한다면 그것이 비록 보잘것없이 작은 것, 미미한 것이라 할지라도 성실하게 정성으로 심어야 합니다. 심은 것을 자라게 하시고 결과를 내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께 맡기고, 부지런히 심으십시오.
심는 일에는 수고로움이 따릅니다. 앞서 읽었던 시편126:5-6절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하십니다. 비록 눈물이 흐르는 아픔과 수고로움이 있다 할지라도 인내하며 충성을 다할 때, 기쁨으로 거둘 수확의 때를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하나님 나라가 하루아침에 전 세계에 확장된다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위대한 성장을 위해서는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보잘 것 없고 무식한 어부와 죄인의 대명사인 세리, 혈기 많은 다혈질의 사람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뿌리신 하나님 나라의 최초의 씨앗이었습니다. 이처럼 겨자씨 한 알 그리고 보이지 않는 누룩처럼, 그 시작은 작고 미미해서 눈에 띄지 않을 정도지만 온 땅에 복음이 전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게 될 것입니다.
Giving is the best communication! ‘베푸는 것이 최고의 소통이다.’라는 의미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은 더 큰 사랑으로 돌아옵니다. 성도인 우리는 사람 앞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입니다. 그리고 결과를 내시며 사람을 높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의 약속과 인도하심을 믿고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심고 뿌립시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에 많은 상급을 쌓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열왕기하 4:8-10, 16-27, “8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9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10 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
“16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17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한 해가 지나 이때쯤에 엘리사의 여인에게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마태복음 10:40-42,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어저께 사랑밭 새벽편지에 올라온 이야기입니다.
버스가 정류장에 서는데, 어떤 학생이 멀리서 버스를 보고 뛰기를 시작했습니다. 버스 기사는 그 모습을 보고는 15초 정도를 기다렸습니다. 남자 고등학생이 먼 거리를 전력으로 뛰어와서 버스를 타면서 \"헉헉, 고맙습니다!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기사 아저씨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러자 기사아저씨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 정신이면 된다. 그렇게 힘껏 하면 안되는 게 없다.”
세상에서는 이런 정신력을 일컬어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고 합니다. ‘정신을 집중하여 노력하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성취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사람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희망일 것입니다. 이러한 특성은 시대가 어둡고 환경이 어려울수록 더 강하게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대해도 좋을 여건을 만들어 놓지도 않은 채,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이런 막연한 기대감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66권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다스림의 원칙은 ‘행한 대로 갚는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33:20절에서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가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고 하시며, 마태복음 16:27절에서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라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도록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본문을 중심으로 결실을 원하는 사람이 마땅하게 해야 할 일들을 살펴보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열왕기하 본문말씀은 자주 거론했던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나타내셨던 일입니다. 수넴은 아셀 지파의 성읍인데, 한번은 엘리사가 수넴에 갔다가 한 귀한 여인의 정성어린 음식대접을 받았습니다. 여인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남편과 상의하여 가끔 지나는 선지자를 위하여 머물 수 있는 방을 마련했습니다. 엘리사는 그 곳을 지날 때마다 그 집에 들러 음식을 먹고 쉴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그 방에 누웠다가 그 여인의 후대와 호의에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환에게 여인을 불러오라고 했고 여인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모든 것이 족하다고 했습니다. 사환이 그 집에는 자식이 없다고 알렸고, 엘리사는 다시 그 여인을 불러서 일 년 후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축복했고 과연 일 년 후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그 아이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여인은 엘리사를 찾아 갔고 엘리사는 죽은 아이를 살려주었습니다. 수넴 여인이 이렇게 놀라운 결실을 경험한 이유는 그녀의 성실한 삶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8절에서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진심어린 대접의 결과였음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상을 받을 사람’에 대한 말씀입니다. 즉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상급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약하면 ‘자신이 영접하고 섬긴 대로 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크고 위대한 일에만 상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일, 즉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 하여 냉수 한 그릇을 주는 것까지 반드시 상급이 있다고 하십니다. 마가복음 9:4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이 말씀에서도 우리가 무엇이라도 심고 뿌려야 그 결과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이 두 본문말씀에서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은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라 ‘성실과 진심어린 영접과 섬김과 대접이 놀라운 결과를 이루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이 삶을 돌아보면서 앞으로의 삶에는 놀라운 결실을 얻을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설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결실을 원한다면 정성스럽게 심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천국에 대한 일곱 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31-33절에 나오는 겨자씨와 누룩에 대한 비유는 ‘천국의 확장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겨자씨와 누룩은 작고 미미한 것을 의미합니다. 즉 처음에는 아주 미미하게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엄청나게 성장하고 확장되어 온 세상 사람들에게 참 생명력을 주게 될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겨자씨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외적 성장을 의미하며, 누룩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내적인 성장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요약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것까지도 소중하게 여기며 심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과도 꼭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도 별로 없고, 심고 뿌리고 가꾸고 기다리는 삶도 별로 없습니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는 옛말처럼 금방 결실을 얻기를 바라는가 하면 아예 심지도 않고 얻을 생각만 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무작정 크고 좋은 것을 선호하는 풍속까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런 사상이 교회에도 깊숙이 퍼져 있습니다. 이는 또 다른 교회의 세속화입니다. 하지만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정성어린 마음으로 작은 것부터 심어가야 합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돌보는 것도 심는 것이지만 이는 초보적인 신앙의 삶입니다. 성숙한 신앙의 삶은 주변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하지 않습니까! 주님을 닮아갈수록 영적인 시각은 넓어지고 멀리까지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서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2절입니다.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변을 돌아보며 작은 것이라도 정성어린 마음으로 심어가야 합니다. 심어 놓은 것이 있을 때는 기대하지 않을지라도 때가 되면 좋은 결실로 얻게 됩니다. 시편 126:5-6절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하십니다.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라도, 암담한 현실 속에서라도 주님을 생각하며 나누고 베풀고 대접하고 섬기기를 계속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결실을 맺게 하시고 거두게 하십니다. 갈라디아서 6:9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씨를 뿌리는 기회는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번에 처음으로 겨울철 농사를 시작 했습니다.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지나서 봄에 수확하는 것입니다. 지난주간에 시금치 씨를 뿌리고 양파 모종을 심었습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시금치는 겨울에도 수확을 할 수 있고 양파는 내년 오월 경에 수확할 것입니다. 작은 텃밭이지만 이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웁니다. 열왕기하 본문에서 수넴 여인은 의도적으로 섬김의 씨를 뿌렸습니다. 물론 어떤 이익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고 섬김의 사랑을 심었습니다. 9-10절의 여인의 말을 봅시다.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여인은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았고, 주도면밀하게 계획하여 섬김의 사랑을 심었습니다. 엘리사가 자신이 사는 마을에 온 것은 하나님의 사람을 섬길 수 있는 기회였고 여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손님을 대접한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도 아브라함은 자신의 집 앞을 지나는 하나님과 그 사자들을 그냥 지나가게 하지 않았습니다. 섬김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님을 영접하여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그것이 조카 롯의 가정을 살리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수넴 여인에게도 섬김의 결실이 의외로 빨리 이루어졌습니다. 자식도 없이 쓸쓸한 노부부에게 아들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생산할 수 없는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 여인의 가정에 상급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갑자기 죽었을 때에, 다시 한 번 아들을 살려주시는 상급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본문말씀처럼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것에도 상급을 주겠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수넴 여인에게 하나님의 사람을 섬긴 보상을 기적으로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원리입니다. 고린도후서 9:6절에서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적게 심은 자는 적게,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그리고 아무 것도 심지 않은 자는 분명히 아무 것도 거두지 못합니다. 또한 육신을 심으면 육신에서 악을 거두고, 영을 심으면 영으로부터 영생을 거둡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결실을 원한다면 그것이 비록 보잘것없이 작은 것, 미미한 것이라 할지라도 성실하게 정성으로 심어야 합니다. 심은 것을 자라게 하시고 결과를 내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께 맡기고, 부지런히 심으십시오.
심는 일에는 수고로움이 따릅니다. 앞서 읽었던 시편126:5-6절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하십니다. 비록 눈물이 흐르는 아픔과 수고로움이 있다 할지라도 인내하며 충성을 다할 때, 기쁨으로 거둘 수확의 때를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하나님 나라가 하루아침에 전 세계에 확장된다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위대한 성장을 위해서는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보잘 것 없고 무식한 어부와 죄인의 대명사인 세리, 혈기 많은 다혈질의 사람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뿌리신 하나님 나라의 최초의 씨앗이었습니다. 이처럼 겨자씨 한 알 그리고 보이지 않는 누룩처럼, 그 시작은 작고 미미해서 눈에 띄지 않을 정도지만 온 땅에 복음이 전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게 될 것입니다.
Giving is the best communication! ‘베푸는 것이 최고의 소통이다.’라는 의미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은 더 큰 사랑으로 돌아옵니다. 성도인 우리는 사람 앞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입니다. 그리고 결과를 내시며 사람을 높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의 약속과 인도하심을 믿고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심고 뿌립시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에 많은 상급을 쌓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