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힘 큰역사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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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10-08 17:47
*** 작은 힘 큰 역사 / 사사기 7:4-8, 마태복음 14:15-21
사사기 7:4-8,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8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
마태복음 14:15-21,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 들어가는 말
사람들은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지도자들이나 나다나엘까지도 ‘보잘 것 없는 작은 마을인 갈릴리 나사렛에서 무슨 선지자가 나겠느냐?’고 무시했습니다. 우리 국민성도 유교사상 사대주의 사상에 물들어 양반 상놈 따지면서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찬 물을 마시고도 이빨을 쑤시는’웃지 못 할 형식주의가 있어 왔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아직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기독교계 안에서도 그 내용이야 어떻든지 교회당 건물이 웅장하고 교인의 숫자가 많으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교세가 작으면 내용에 상관없이 무시를 당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영적이지도 않습니다. 주님은 결코 그렇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천국은 아주 미미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13:31-32절에서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고 하십니다. 성경 전체에서 강조하시는 것은 ‘사람의 힘과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지 않는지가 문제’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이 시간에 살펴볼 말씀의 주제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내용을 살펴봅시다.
사사기 본문말씀은 사사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미디안이 싸움을 걸어오자 기드온이 군사를 소집했는데 삼만 이천 여명의 군사가 모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군사가 많아서 미디안을 넘겨주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전쟁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이만 이천 명이 돌아갔습니다. 만 명이 남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많다고 하시면서 남은 군사를 시냇가로 데려가서 선별하라고 하셨습니다. 군사들이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손으로 물을 움켜 마시는 사람이 삼백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무릎을 꿇고 물에 입을 대로 마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손으로 물을 움켜 마신 삼백 명으로 미디안을 물리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미디안 연합군을 대항하여 싸워야 하는데 겨우 삼백 명만 남기도록 하셨겠습니까? 그 이유는 본문 2절에서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할까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군사력으로 이겼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기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기게 될 때에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 때문입니다. 즉 작은 능력으로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룬 기적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마태복음 본문말씀은 너무도 잘 아는 ‘오병이어의 기적’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말씀을 듣느라 종일 굶은 군중들에게 음식을 사먹도록 마을로 보내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구할 수 있었던 음식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든 작은 도시락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주님은 그 도시락을 가져오라고 하시면서 무리들을 50명 100 명씩 둘러앉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시고 떡과 물고기를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무리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셨습니다. 작은 도시락 하나가 주님의 손에 드려졌을 때 남자 장정만 오천 명이나 되는, 남녀노소를 모두 합하면 만 명은 족히 넘을 무리가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을 열 바구니나 모았습니다. 작은 도시락 하나로 만 명이 넘는 사람을 배불리 먹게 하신 큰 역사를 이루신 이 이적의 이야기도 역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 주님을 의뢰하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을 이루는 길입니다.
세상의 생존법칙은 ‘약육강식(弱肉强食)’입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훈련이 잘 되고 수적으로도 우세한 군사력과 상대방을 능가하는 무기와 장비들, 상대방보다 앞서는 정보능력 등. 이런 조건이 잘 갖춰져야 합니다. 시장을 장악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든든한 경제력, 우수한 인재, 뛰어난 리더십 등 남보다 앞서는 사업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공부, 결혼, 직장 등 어떤 일이든지 세상의 일에는 성공하기 위하여, 남들보다 앞서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뛰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며 나타내기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피땀 흘려 수고하고,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착각이고 교만이며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7절에서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하시며, 고린도전서 4:7절에서는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냐?”고 기막혀하십니다. 즉 우리 인생들이 이 땅에서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잠시 인생들이 사용하도록 맡기셨을 뿐입니다.
남의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우기면 도둑놈 심보지요? 말라기 3:8-9절을 봅시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하십니다. 이 말씀은 헌금에 관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의미는 ‘사람에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과 모든 물질을 주셨는데 그 중의 일부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십일조와 헌물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명령하신 십일조나 헌금, 헌물을 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는 도둑심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만 아니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 ‘자신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진정한 표징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 즉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제자의 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8:34절을 봅시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포기하거나 내려놓고 따르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만일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포기하거나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영생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 청년 관원처럼 자신의 것을 결코 포기하지 못합니다. 마가복음 10:21-22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이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만일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면 그래도 예수님을 따르겠습니까? 만일 망설여진다면 주님께서도 여러분의 요청에 이렇게 망설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를 경험하고 싶다면 나를 주님께 맡기고 드려야합니다.
기드온의 삼백 용사가 선발된 것은 그들이 두려움 없이 자신을 주님께 헌신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을힘을 다하여 끝까지 따랐습니다. 사사기 8:4절에서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자 삼백 명이 요단 강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라고 했습니다. 삼백 명이 수십만 명의 적군을 이기는 위대한 역사는 그들이 하나님께 헌신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작은 도시락 하나가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았던 이해 불가능한 역사도 도시락이 하나님께 바쳐졌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작은 힘으로 위대하고 큰 역사를 이루게 하심은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시기 위함입니다. 고린도전서 1:26-29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쁨의 도시’라는 책을 저술한 ‘도미니끄 라 피에르(Dominic la Pierre)’는 인도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서구의 부유한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용기와 사랑, 공유 그리고 무한한 행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무명의 많은 위인들을 배출한 마력을 발견하고는 ‘기쁨의 도시(City of Joy)’라는 책을 썼습니다.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던 이 내용은 삶에 환멸을 느낀 한 젊은 의사 맥스가 보다 넓은 세계로 나가서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을 찾고자’하는 내용입니다.
맥스는 어린 환자의 생명을 끝내 구하지 못하여 의사를 포기하고 찾아온 곳이 캘커타였습니다. 그곳에서 폭력배 일당에게 매를 맞고 여권과 돈을 빼앗기는 등 어려움을 당합니다. 하사리라는 사람의 도움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진료하는 ‘아난드 니가르(City of Joy)’라는 진료소에 머물게 됩니다. 진료소 경영자는 선교 사업을 하는 그리스도인인 ‘조안 바실’이었으며, 맥스가 의사인 것을 알고 도움을 구했지만 맥스는 거절합니다. 다시 짐을 싸고 떠날 준비를 하는 맥스에게 조안은 자기가 발견했던 것을 맥스와 나누게 되고 맥스에게 세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당신은 달아날 수도 있고, 방관자가 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전적으로 헌신할 수도 있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택함 받고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종과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시며 우리들에게는 영원한 행복인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순종과 헌신을 요구하신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헌신과 순종을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순종하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신 역사를 이루십니다. 사무엘상 15:22절에서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하시며, 미가 6:8절에서는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십니다.
어떤 선교사가 간증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캠벨 모건 목사의 설교를 들은 후 40년 동안의 내 신앙생활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전 40년 동안 할 수 있는 만큼 절약하여서 그 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모건 목사의 설교를 들은 후 하나님께서는 물질을 드리는 것보다 몸을 드려 헌신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소유 전부를 바친다 해도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지만, 하나님의 큰 역사를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고 순종하여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사사기 7:4-8,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8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
마태복음 14:15-21,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 들어가는 말
사람들은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지도자들이나 나다나엘까지도 ‘보잘 것 없는 작은 마을인 갈릴리 나사렛에서 무슨 선지자가 나겠느냐?’고 무시했습니다. 우리 국민성도 유교사상 사대주의 사상에 물들어 양반 상놈 따지면서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찬 물을 마시고도 이빨을 쑤시는’웃지 못 할 형식주의가 있어 왔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아직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기독교계 안에서도 그 내용이야 어떻든지 교회당 건물이 웅장하고 교인의 숫자가 많으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교세가 작으면 내용에 상관없이 무시를 당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영적이지도 않습니다. 주님은 결코 그렇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천국은 아주 미미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13:31-32절에서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고 하십니다. 성경 전체에서 강조하시는 것은 ‘사람의 힘과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지 않는지가 문제’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이 시간에 살펴볼 말씀의 주제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내용을 살펴봅시다.
사사기 본문말씀은 사사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미디안이 싸움을 걸어오자 기드온이 군사를 소집했는데 삼만 이천 여명의 군사가 모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군사가 많아서 미디안을 넘겨주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전쟁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이만 이천 명이 돌아갔습니다. 만 명이 남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많다고 하시면서 남은 군사를 시냇가로 데려가서 선별하라고 하셨습니다. 군사들이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손으로 물을 움켜 마시는 사람이 삼백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무릎을 꿇고 물에 입을 대로 마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손으로 물을 움켜 마신 삼백 명으로 미디안을 물리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미디안 연합군을 대항하여 싸워야 하는데 겨우 삼백 명만 남기도록 하셨겠습니까? 그 이유는 본문 2절에서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할까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군사력으로 이겼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기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기게 될 때에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 때문입니다. 즉 작은 능력으로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룬 기적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마태복음 본문말씀은 너무도 잘 아는 ‘오병이어의 기적’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말씀을 듣느라 종일 굶은 군중들에게 음식을 사먹도록 마을로 보내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구할 수 있었던 음식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든 작은 도시락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주님은 그 도시락을 가져오라고 하시면서 무리들을 50명 100 명씩 둘러앉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시고 떡과 물고기를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무리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셨습니다. 작은 도시락 하나가 주님의 손에 드려졌을 때 남자 장정만 오천 명이나 되는, 남녀노소를 모두 합하면 만 명은 족히 넘을 무리가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을 열 바구니나 모았습니다. 작은 도시락 하나로 만 명이 넘는 사람을 배불리 먹게 하신 큰 역사를 이루신 이 이적의 이야기도 역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 주님을 의뢰하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을 이루는 길입니다.
세상의 생존법칙은 ‘약육강식(弱肉强食)’입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훈련이 잘 되고 수적으로도 우세한 군사력과 상대방을 능가하는 무기와 장비들, 상대방보다 앞서는 정보능력 등. 이런 조건이 잘 갖춰져야 합니다. 시장을 장악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든든한 경제력, 우수한 인재, 뛰어난 리더십 등 남보다 앞서는 사업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공부, 결혼, 직장 등 어떤 일이든지 세상의 일에는 성공하기 위하여, 남들보다 앞서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뛰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며 나타내기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피땀 흘려 수고하고,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착각이고 교만이며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7절에서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하시며, 고린도전서 4:7절에서는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냐?”고 기막혀하십니다. 즉 우리 인생들이 이 땅에서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잠시 인생들이 사용하도록 맡기셨을 뿐입니다.
남의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우기면 도둑놈 심보지요? 말라기 3:8-9절을 봅시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하십니다. 이 말씀은 헌금에 관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의미는 ‘사람에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과 모든 물질을 주셨는데 그 중의 일부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십일조와 헌물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명령하신 십일조나 헌금, 헌물을 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는 도둑심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만 아니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 ‘자신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진정한 표징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 즉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제자의 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8:34절을 봅시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포기하거나 내려놓고 따르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만일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포기하거나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영생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 청년 관원처럼 자신의 것을 결코 포기하지 못합니다. 마가복음 10:21-22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이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만일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면 그래도 예수님을 따르겠습니까? 만일 망설여진다면 주님께서도 여러분의 요청에 이렇게 망설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를 경험하고 싶다면 나를 주님께 맡기고 드려야합니다.
기드온의 삼백 용사가 선발된 것은 그들이 두려움 없이 자신을 주님께 헌신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을힘을 다하여 끝까지 따랐습니다. 사사기 8:4절에서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자 삼백 명이 요단 강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라고 했습니다. 삼백 명이 수십만 명의 적군을 이기는 위대한 역사는 그들이 하나님께 헌신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작은 도시락 하나가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았던 이해 불가능한 역사도 도시락이 하나님께 바쳐졌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작은 힘으로 위대하고 큰 역사를 이루게 하심은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시기 위함입니다. 고린도전서 1:26-29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쁨의 도시’라는 책을 저술한 ‘도미니끄 라 피에르(Dominic la Pierre)’는 인도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서구의 부유한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용기와 사랑, 공유 그리고 무한한 행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무명의 많은 위인들을 배출한 마력을 발견하고는 ‘기쁨의 도시(City of Joy)’라는 책을 썼습니다.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던 이 내용은 삶에 환멸을 느낀 한 젊은 의사 맥스가 보다 넓은 세계로 나가서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을 찾고자’하는 내용입니다.
맥스는 어린 환자의 생명을 끝내 구하지 못하여 의사를 포기하고 찾아온 곳이 캘커타였습니다. 그곳에서 폭력배 일당에게 매를 맞고 여권과 돈을 빼앗기는 등 어려움을 당합니다. 하사리라는 사람의 도움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진료하는 ‘아난드 니가르(City of Joy)’라는 진료소에 머물게 됩니다. 진료소 경영자는 선교 사업을 하는 그리스도인인 ‘조안 바실’이었으며, 맥스가 의사인 것을 알고 도움을 구했지만 맥스는 거절합니다. 다시 짐을 싸고 떠날 준비를 하는 맥스에게 조안은 자기가 발견했던 것을 맥스와 나누게 되고 맥스에게 세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당신은 달아날 수도 있고, 방관자가 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전적으로 헌신할 수도 있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택함 받고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종과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시며 우리들에게는 영원한 행복인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순종과 헌신을 요구하신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헌신과 순종을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순종하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신 역사를 이루십니다. 사무엘상 15:22절에서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하시며, 미가 6:8절에서는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십니다.
어떤 선교사가 간증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캠벨 모건 목사의 설교를 들은 후 40년 동안의 내 신앙생활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전 40년 동안 할 수 있는 만큼 절약하여서 그 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모건 목사의 설교를 들은 후 하나님께서는 물질을 드리는 것보다 몸을 드려 헌신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소유 전부를 바친다 해도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지만, 하나님의 큰 역사를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고 순종하여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