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281회 작성일 2013-09-25 15:06
***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 창세기 39:1-3,19-23, 빌립보서 4:11-13

창세기 39:1-3, 19-23,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빌립보서 4:11-13,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사람을 평가할 때 어떤 것을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고려합니까? 지금은 조금씩 바뀌는 것 같지만 우리 민족이 아직도 많은 경우에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출신배경’이지 않나 싶습니다. 어떤 가문, 어떤 학교, 어떤 지방 등. 아마도 유교 사상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요즘은 출신 보다는 실력 혹은 능력을 우선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은 어떤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 하시겠습니까?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청종’입니다. 신명기 5:29절에서 “다만 그들이 항상 이 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하시며, 사무엘상 15:22절에서는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7:2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시며, 요한계시록 22:7절에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대표적으로 두 구절씩 보았는데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지키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출신 배경이나 능력을 묻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은 하나님께서 모두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명을 받았을 때 ‘자신은 말주변이 없어서 못 한다.’고 몇 번이나 거부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잘 지키어 순종하는 사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선포할 말씀이 바로 이 내용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내용을 살펴봅시다.

창세기 본문말씀은 요셉이 형제들에 의하여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린 것과 누명을 쓰고 죄수 생활을 하는 내용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한 것과 꿈 이야기로 인하여 형들의 미움을 샀습니다. 형들은 양을 치고 있을 때 아버지의 심부름을 온 요셉을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버립니다. 미디안 상인은 애굽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에게 요셉을 팔았습니다. 요셉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삭이면서 그래도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여 종의 삶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창세기 본문 3절에서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요셉은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고 순종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요셉에게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고, 거절하는 요셉에게 누명을 씌워 결국 보디발의 노여움을 싸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억울한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감옥에서도 여전히 성실한 섬김을 다했습니다. 창세기 본문 23절입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셉은 자신이 처한 환경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고 절망하지도 않았습니다. 후일에 애굽의 총리가 된 후에 자신을 판 형제들을 만났을 때의 고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44:7-8절입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가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최선을 다할 때 최선의 결과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본문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역 중의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여행을 통하여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 심지어는 여러 번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환경에서 얻은 것은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것을 배웠고, 그 환경에 적응하는 비결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보면 ‘모든 환경에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최악의 상황이지만 주님의 인도하심에 최선의 순종을 할 때에 어떤 환경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여러분은 자신 속에 성령님께서 계심을 믿습니까? 아마 아이들에게 “예수님이 어디 계셔요?”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이 “내 마음 속에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내 마음에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이라고 수도 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해 온 사람이라면 거의 기계적으로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는 듯하다.'는 감정과 혼동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배가 아주 은혜롭다고 느꼈을 때,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예배였다'고 감격스러워 합니다. 그렇다면 예배가 은혜롭지 않다고 느꼈을 때 하나님은 그 예배 중에 함께 하지 않으셨다는 것인데, 과연 그렇습니까? 또는 '이 교회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꼈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평상시에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셨습니까? 하나님은 은혜롭게 예배하는 곳에만 계십니까? 아니면 부르짖어 기도하시는 곳에만 계십니까? 그렇다면 초라하고 가난한 집에서 드리는 가정 예배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나 혼자 있을 때나, 많은 사람이 있을 때나, 은혜로운 예배 처소에나, 은혜롭게 느끼지 못하는 예배 처소에나, 누구를 만날 때에나, 슬픔으로 가슴이 무너지는 때에나,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은 성도들과 함께 계십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는 실제 상황을 확실하지 않은 자신의 느낌에 의존하려 합니다.

이처럼 내 마음의 불확실한 믿음은 최선의 삶을 저해하는 최악의 요소입니다. 내가 확실하게 믿지도 못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최선을 다하겠습니까? 어떤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의심 없는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본문말씀에서 사도 바울의 말을 되새겨봅시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이 고백의 배경이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하고 자족하는 비결’이었습니다. 즉 ‘자신이 당면한 모든 환경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확실한 믿음의 배경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억 원을 투자하면 한 달 만에 2억 원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다면 투자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팔고, 빌려서라도 투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하신 마태복음 13:44-46절을 봅시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이것이 최선입니다.

말을 바꾸어봅시다.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최고의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에 대하여 소극적이라면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옛말에 ‘평안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다.’고 했습니다. 즉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자신이 싫으면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아무리 좋고 영원한 행복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에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의 가치관에서 최고의 것에 마음을 두고 따라갑니다. 서울이 좋아서 서울로 가야겠다고 한다면 서울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그런데 말은 서울이 좋다고 하면서 부산 쪽으로 간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태복음 6:21절에서 “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란 하나님께서 모든 환경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주어진 삶에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형제들에 의하여 인신매매 당한 요셉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할 만도 하지만 요셉은 그런데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주어진 환경에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했습니다. 노예로 또는 노예 죄수로, 최악의 상황이 주어졌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하셨고 가는 곳마다 성실함을 인정받아 형통했습니다. 창세기 본문 3절에서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셉이 잘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다.’고 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요셉의 믿음과 성실성은 곳곳에 나타납니다.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할 때에도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바로 왕이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라고 할 만큼 주님을 신뢰했습니다. 총리가 된 후에 형제들을 만났을 때에도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역사하심을 믿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다고 불평하거나 누구를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어떤 성도는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하라.’는 말을 거부하면서 ‘이 자리에 만족하고 주저앉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항변합니다. 옳은 말 같지만 이 말은 세상적인 사상입니다. 비전을 가지고 구하는 것이 잘 못된 것이 아닙니다. 현실의 모든 환경과 일들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며 내게 주어진 환경도 역시 주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 만족한다는 것은 주저앉아 있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현실에 만족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감사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하여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가는 것입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섬기던 바로의 두 신하가 꿈을 꾸었을 때에 그 기회를 적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더 큰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왕의 꿈을 해석하면서 재난에 대처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적극성을 보였습니다. 그 결과 즉석에서 대국의 총리로 기용되는 또 다른 기회를 잡았습니다. 요셉은 이 기회를 자신의 민족을 일으키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요셉은 하나님의 역사하심 속에서 민족의 비전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보상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의 자리에서 주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과 생명까지 모든 것을 투자하는 최선의 삶으로 실천합시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비전을 찾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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