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는 길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088회 작성일 2013-09-08 20:46
***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는 길 / 시편 43:1-5, 딤후 2:20-22

시편 43:1-5, “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디모데후서 2;20-22,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 들어가는 말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소망은 ‘하나님께 이르는 것’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고, 이 땅에서 아무리 잘 살고,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의 즐거움은 잠깐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삶을 ‘소풍’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들뜬 즐거움은 잠깐뿐이며, 곧 해가 저물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9-12) 인생의 짧은 날을 살 때에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며 사는 지혜를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며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겠습니까? 이 시간에는 이 길에 대하여 살펴보려 합니다. 말씀 속에서 여러분 자신이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시편 본문말씀은 레위 지파인 고라자손의 찬송 시입니다. 본문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는 간절함이 배어 있습니다. 시인이 당면한 현실이 대단히 힘들고 암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시인은 이러한 어려운 현실을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탄원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시인이 당면한 위기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을 봅시다.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시인은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 이 표현이 자신이 믿고 바라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자신이 신뢰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셔서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던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는 내용입니다. 아마도 시인은 조상들을 광야에서 인도하시던 하나님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자꾸만 두렵고 떨려서 낙심되는 자신에게 이 하나님을 소망하라고 스스로 격려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처럼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하나님께 아뢰며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암울한 현실에서도 시인은 하나님을 소망하면서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것이 삶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확신하는 마음입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께 이르는 길입니다.

디모데후서 본문말씀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군’에 대한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큰 집”으로 표현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릇”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릇의 종류와 사용 용도를 설명하면서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귀하게 쓰이든지 천하게 쓰이든지 주인에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릇이 쓰임 받기 위해서는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릇이 된 그리스도인은 주인에게 쓰임받기 위해서는 정욕을 피하고 주님의 자녀로써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께 이르려면 하나님께 대한 고백과 신뢰가 확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이르려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하며 기도의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도록 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4:4-5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이렇게 그릇이 깨끗하여 지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위한 길입니다. 요한복음 15:2-4절을 봅시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주님께 붙어 있도록 하기 위하여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사는 비결입니다.

미국의 기독교 간증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명한 부흥사 중에 신유의 은사를 가진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청을 받고 그 교회에 일찍 도착했더니 예배당 현관에 어떤 부인이 앉아있었습니다. 부흥사가 말을 건넸습니다. “부인, 여기 앉아서 누구를 기다리십니까?” 그러자 그 부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앉은뱅이예요. 오늘 이 교회에 신유의 은사가 있는 목사님이 오신다기에 그 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목사님이 오시면 제일 먼저 병 고침을 받으려고 이렇게 문 앞에 앉아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꼭 병 고침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주위에는 동행자도, 휠체어도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그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예, 아들의 차를 타고 왔지요. 그리고 제 아들이 그 차 속에 휠체어도 넣어 왔답니다. 그런데 오는 도중에 저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도착한 즉시 그것들을 모두 보내버렸습니다.” “아니, 왜 보내셨습니까? 가실 때 어떻게 하시려고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이제 목사님만 만나면 걸어서 혼자 집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휠체어가 필요합니까?”
목사님은 부인의 믿음에 놀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내가 바로 그 목사입니다. 꼭 나을 줄 믿습니다.”하고는 부인의 손을 잡아끌면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하니, 그 즉시 그 여인이 일어나 걸어 다니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앉은뱅이 부인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확실했습니다. 부인은 하나님을 신뢰했고 기도를 통하여 생활 속에서 주님과의 교통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복음서에는 이방인으로서 예수님께 칭찬받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 ‘백부장 고넬료’, ‘사마리아인 문둥병자’등등. 그들은 한결같이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 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아.”라고 고백했고, 백부장은 “주여, 수고하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기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이성으로 조목조목 따져서 믿은 것이 아니라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고백했습니다. 앉은뱅이 부인도 역시 주님께로 향하는 전적인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나 어떤 수단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삶의 현실 속에서의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은 계산이 아니라 절대 신뢰입니다. 계산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이 그러합니다. 삶의 상황이 힘들고 고통스럽고 주저앉을 만하지만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 그 힘든 상황을 주님께 맡기고 있습니다. 인생의 힘든 날에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십시오. 실망스럽고 고통스러울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 되심과 힘과 능력의 근원이심과 나의 피난처가 되심을 확신하고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이 모든 삶의 자리에서 인도해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주님이 보실 때에 우리의 삶이 깨끗하면 주님이 함께 하실 것이며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르려면 하나님 만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시편본문 3-4절을 봅시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시인은 ‘주의 거룩한 산과 주님이 계시는 곳에 이르는 것과 하나님의 집에서 기쁨으로 찬양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빛과 진리”는 성도를 인도하는 주체입니다. 즉 시인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하나님의 사자’를 의미합니다. 오늘의 성도의 입장에서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말씀의 충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교회’를 의미하며, “하나님의 제단”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처소’를 의미합니다. 시인의 이 고백은 성전이 단순한 의식을 행하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고 체험하는 곳으로 믿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시인은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많은 갈등과 고민을 겪은 끝에, 영혼의 목마름을 영원히 해결할 수 있는 생수를 찾았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하나님을 만나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을 했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일을 했던 것입니다. 풍랑이는 갈릴리 호수에서 괴롭게 노를 젓던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셨지만 죽음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깨우기 전까지 제자들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며, 섬기고 봉사하는 것으로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오직 나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야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을 체험한다는 말입니다. 듣고서 아는 믿음과 직접 체험한 믿음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시인이 살았던 구약 시대에는 모든 생활이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에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성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은혜 시대인 오늘에는 성전 중심으로 생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요한복음 2:21절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하시며, 고린도전서 3:16절에서는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십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곧 성전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사람이 곧 성전입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성전이란 말이 아니라, 사람 속에 하나님이 계시므로 성전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성전 중심 신앙이란 곧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예배도 중요하고, 봉사의 일도 중요하고, 헌신도 중요하고, 말씀 읽기, 기도하기 등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 세상적인 생활일 뿐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본문 21-2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주님이 내 안에 계시도록 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도 자신을 스스로 독려하면서 하나님을 소망하고 신뢰하도록 결단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고 내 안에 계시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고 함께 하시는 삶은 큰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평안입니다. 이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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