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을 향하여!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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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3-27 12:52
*** 약속의 땅을 향하여 / 요한계시록 21:1-8
요한계시록 21:1-8,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의 마음을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세상은 모든 것이 너무 풍부하고 부족함이 없어서 마음을 설레게 하는 어떤 기대감들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수많은 범죄와 극도의 이기주의로 인하여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고 감동도 사라져서 아예 기대감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움츠러들고 자신을 개방하지 않습니다. 결국 사회는 ‘나홀로족’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나홀로족이란 1인가구를 말합니다. 그래서 가전업체들도 미니가전제품을 출시하는 등 1인가구를 위한 제품들이 속속 개발되어 그야말로 1인가구전성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추세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지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10-12절입니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이렇게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속 편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1:28절에서 말세의 징조들을 말씀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이 말씀대로 사람들은 세상의 환경에 정신이 팔려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웠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잊을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잃어버렸던 천국 본향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찾았기 때문에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멀리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듯이 다시 찾은 천국 본향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11:15-16절입니다.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이 말씀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 본향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부터 22:5절까지는 하나님께서 보이신 계시의 절정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 계시된 마지막 계시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수천 년 동안 그의 종들을 통해 말씀하셨던 모든 계시의 절정입니다. 결국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이 부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이 세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죄악으로 오염된 세상과 구별하기 위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는 에덴동산에서와 같이 하나님께서 친히 성도들과 함께 계십니다. 본문의 중심은 3절에 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 이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저주받고 버림받게 한 모든 더러움이 완전히 소멸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가장 안타까운 일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루어질 거룩한 성에 있지 못하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여러 죄악을 보게 됩니다. 8절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정말 무시무시한 말씀입니다. 본향을 생각하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 ‘불 못’입니다. 이곳에 들어가는 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서로 극과 극인 두 말씀 사이에 있습니다. 어느 쪽을 추구할 것인지는 우리 자신들의 각자의 몫입니다. 지혜로운 선택과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사순절에 주님이 받으신 고난과 죽음이 의미하는 약속의 땅을 생각해보려합니다.
※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거룩한 도성을 사모해야 합니다.
앞서 읽어드렸던 히브리서 11:15-16절을 봅시다.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거룩한 성을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거룩한 성에 대하여 본문에서부터 22:5절까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아름다운 곳을 상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상상력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조금씩 보여주시는 말씀들을 상고하며 사람들이 경험한 간증을 참고하기도 합니다.
환상 중에 천국과 지옥을 경험했다고 하는 간증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신빙성이 없는 것도 있지만 성경말씀과 일치되는 것도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천국과 지옥 즉 하나님의 나라와 불 못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려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사모해야 합니까? 사람이 어떤 것을 사모하게 되면 그것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지도 아니한 것을 열심히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거룩한 도성을 사모하라.’는 말은 ‘거룩한 성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가르치시면서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와 ‘값진 진주장사 비유’를 하셨습니다. 이 두 비유는 모두 ‘자신의 것을 다 팔아서 자신이 발견한 보배를 샀다.’는 내용입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가진 모든 것을 다 투자해서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얻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더러움도 없고, 해로운 것도 없고, 위험한 것도 없고, 저주도 없고, 수고로움도 염려도 아픔도 고통도 죽음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아름다움과 조화로움, 평화로움과 영원한 기쁨이 가득하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주님이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이 세상의 과학으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차원 높은 과학이 그곳에 있습니다. 순간이동, 공간이동, 강력한 텔레파시의 세계, 부족함이 없는 천국의 잔치를 보고 싶지 않습니까? 저는 하나님께서 보증하신 이 잔치에 너무너무 참석하고 싶습니다. 요한계시록 19:9절에서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네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이 잔치에는 하나님의 초대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혼인잔치 비유를 하시면서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온 사람을 ‘바깥 어두운 데로’ 쫓아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2:14절입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즉 천국잔치에 참여하려면 예복이 있어야 합니다. 예복이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19:8절에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라고 하십니다. 예복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옳은 행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세상의 것에는 관심두지 않기로 작정했고, 매일 주님을 간절하게 사모하며 그 약속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합시다.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가정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이사할 집은 과거에 살던 집과는 비교가 안 되도록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아직 초등학교에도 가지 못한 어린 막내는 너무나 좋아 온 집을 돌아다니면서 소리칩니다.
“아빠, 이거 우리 거예요?” “아빠, 이것도 우리 거예요?”
꼬마의 아빠는 그런 아들이 사랑스러워서 빙긋이 웃으면서 말합니다.
“그럼, 모두 우리 거란다. 이제 곧 이사하면 마음껏 사용하렴.”
이 아이는 아버지의 소유인 그 새 집이 곧 자신의 것이라는 데 조금의 의구심도 없습니다. 아이는 얼마나 새 집으로 가고 싶겠습니까? 아마도 꿈속에서도 새 집이 보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사모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얻도록 성실하고 열심 있게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약속하신 나라에 이를 때까지 말입니다. 베드로후서 3:10-14절을 봅시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따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 말씀을 더 풀어 설명하지 않아도 의미를 아실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준비하지 아니하면 두 번째 사망을 각오해야 합니다. 본문 8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이 말씀에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지옥’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 하나님의 심판 전에 가는 지옥은 ‘음부(Hades)’라고 했는데, 모든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곳입니다. 이 음부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보여주신 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대기하는 곳과 불신자들이 대기하는 곳이 다릅니다. 지옥(地獄, geenna)은 하나님의 심판 이후에 영원토록 하나님과 분리되는 두 번째 사망으로써 ‘불 못’(계 19:20, 20:10,14-15)입니다. 마태복음 25:30절입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이곳이 영원히 버림당하는 ‘불 못’ 곧 ‘지옥’입니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 특별히 할 일은 없습니다. 우상숭배를 하든지 살인을 하든지 본문 8절 말씀처럼 억지로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냥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면 저절로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로마서 8:12-13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요즘 많은 교인들이 천국이나 지옥의 이야기, 십자가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떤 목사(예전에 TV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한 말)는 ‘인류가 우주를 탐험하는 시대에 아직도 전 근대적으로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하는 극 보수주의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에서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를 빼면 할 말이 무엇이 있습니까? 기독교 핵심 진리인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의미하는 것은 ‘천국과 지옥’입니다. 우리가 사순절을 정해놓고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이유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며 예배하는 이유도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3:10-12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천국과 지옥, 서로 극과 극인 두 말씀 사이에 있습니다. 어느 쪽을 추구할 것인지는 우리 자신들의 각자의 몫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지혜로운 선택과 즉각적인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거룩한 도성을 매일 간절하게 사모하며 그 약속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시다. 그리고 이 거룩한 잔치에 참여하도록 매일 최선을 다하여 주님께 집중하며 따라갑시다. 우리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잔치에 참여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요한계시록 21:1-8,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의 마음을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세상은 모든 것이 너무 풍부하고 부족함이 없어서 마음을 설레게 하는 어떤 기대감들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수많은 범죄와 극도의 이기주의로 인하여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고 감동도 사라져서 아예 기대감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움츠러들고 자신을 개방하지 않습니다. 결국 사회는 ‘나홀로족’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나홀로족이란 1인가구를 말합니다. 그래서 가전업체들도 미니가전제품을 출시하는 등 1인가구를 위한 제품들이 속속 개발되어 그야말로 1인가구전성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추세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지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10-12절입니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이렇게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속 편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1:28절에서 말세의 징조들을 말씀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이 말씀대로 사람들은 세상의 환경에 정신이 팔려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웠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잊을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잃어버렸던 천국 본향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찾았기 때문에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멀리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듯이 다시 찾은 천국 본향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11:15-16절입니다.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이 말씀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 본향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부터 22:5절까지는 하나님께서 보이신 계시의 절정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 계시된 마지막 계시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수천 년 동안 그의 종들을 통해 말씀하셨던 모든 계시의 절정입니다. 결국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이 부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이 세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죄악으로 오염된 세상과 구별하기 위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는 에덴동산에서와 같이 하나님께서 친히 성도들과 함께 계십니다. 본문의 중심은 3절에 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 이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저주받고 버림받게 한 모든 더러움이 완전히 소멸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가장 안타까운 일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루어질 거룩한 성에 있지 못하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여러 죄악을 보게 됩니다. 8절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정말 무시무시한 말씀입니다. 본향을 생각하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 ‘불 못’입니다. 이곳에 들어가는 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서로 극과 극인 두 말씀 사이에 있습니다. 어느 쪽을 추구할 것인지는 우리 자신들의 각자의 몫입니다. 지혜로운 선택과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사순절에 주님이 받으신 고난과 죽음이 의미하는 약속의 땅을 생각해보려합니다.
※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거룩한 도성을 사모해야 합니다.
앞서 읽어드렸던 히브리서 11:15-16절을 봅시다.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거룩한 성을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거룩한 성에 대하여 본문에서부터 22:5절까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아름다운 곳을 상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상상력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조금씩 보여주시는 말씀들을 상고하며 사람들이 경험한 간증을 참고하기도 합니다.
환상 중에 천국과 지옥을 경험했다고 하는 간증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신빙성이 없는 것도 있지만 성경말씀과 일치되는 것도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천국과 지옥 즉 하나님의 나라와 불 못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려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사모해야 합니까? 사람이 어떤 것을 사모하게 되면 그것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지도 아니한 것을 열심히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거룩한 도성을 사모하라.’는 말은 ‘거룩한 성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가르치시면서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와 ‘값진 진주장사 비유’를 하셨습니다. 이 두 비유는 모두 ‘자신의 것을 다 팔아서 자신이 발견한 보배를 샀다.’는 내용입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가진 모든 것을 다 투자해서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얻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더러움도 없고, 해로운 것도 없고, 위험한 것도 없고, 저주도 없고, 수고로움도 염려도 아픔도 고통도 죽음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아름다움과 조화로움, 평화로움과 영원한 기쁨이 가득하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주님이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이 세상의 과학으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차원 높은 과학이 그곳에 있습니다. 순간이동, 공간이동, 강력한 텔레파시의 세계, 부족함이 없는 천국의 잔치를 보고 싶지 않습니까? 저는 하나님께서 보증하신 이 잔치에 너무너무 참석하고 싶습니다. 요한계시록 19:9절에서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네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이 잔치에는 하나님의 초대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혼인잔치 비유를 하시면서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온 사람을 ‘바깥 어두운 데로’ 쫓아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2:14절입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즉 천국잔치에 참여하려면 예복이 있어야 합니다. 예복이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19:8절에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라고 하십니다. 예복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옳은 행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세상의 것에는 관심두지 않기로 작정했고, 매일 주님을 간절하게 사모하며 그 약속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합시다.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가정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이사할 집은 과거에 살던 집과는 비교가 안 되도록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아직 초등학교에도 가지 못한 어린 막내는 너무나 좋아 온 집을 돌아다니면서 소리칩니다.
“아빠, 이거 우리 거예요?” “아빠, 이것도 우리 거예요?”
꼬마의 아빠는 그런 아들이 사랑스러워서 빙긋이 웃으면서 말합니다.
“그럼, 모두 우리 거란다. 이제 곧 이사하면 마음껏 사용하렴.”
이 아이는 아버지의 소유인 그 새 집이 곧 자신의 것이라는 데 조금의 의구심도 없습니다. 아이는 얼마나 새 집으로 가고 싶겠습니까? 아마도 꿈속에서도 새 집이 보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사모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얻도록 성실하고 열심 있게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약속하신 나라에 이를 때까지 말입니다. 베드로후서 3:10-14절을 봅시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따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 말씀을 더 풀어 설명하지 않아도 의미를 아실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준비하지 아니하면 두 번째 사망을 각오해야 합니다. 본문 8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이 말씀에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지옥’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 하나님의 심판 전에 가는 지옥은 ‘음부(Hades)’라고 했는데, 모든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곳입니다. 이 음부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보여주신 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대기하는 곳과 불신자들이 대기하는 곳이 다릅니다. 지옥(地獄, geenna)은 하나님의 심판 이후에 영원토록 하나님과 분리되는 두 번째 사망으로써 ‘불 못’(계 19:20, 20:10,14-15)입니다. 마태복음 25:30절입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이곳이 영원히 버림당하는 ‘불 못’ 곧 ‘지옥’입니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 특별히 할 일은 없습니다. 우상숭배를 하든지 살인을 하든지 본문 8절 말씀처럼 억지로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냥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면 저절로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로마서 8:12-13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요즘 많은 교인들이 천국이나 지옥의 이야기, 십자가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떤 목사(예전에 TV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한 말)는 ‘인류가 우주를 탐험하는 시대에 아직도 전 근대적으로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하는 극 보수주의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에서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를 빼면 할 말이 무엇이 있습니까? 기독교 핵심 진리인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의미하는 것은 ‘천국과 지옥’입니다. 우리가 사순절을 정해놓고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이유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며 예배하는 이유도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3:10-12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천국과 지옥, 서로 극과 극인 두 말씀 사이에 있습니다. 어느 쪽을 추구할 것인지는 우리 자신들의 각자의 몫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지혜로운 선택과 즉각적인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거룩한 도성을 매일 간절하게 사모하며 그 약속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시다. 그리고 이 거룩한 잔치에 참여하도록 매일 최선을 다하여 주님께 집중하며 따라갑시다. 우리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잔치에 참여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