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영을 거부하십시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253회
작성일
2014-03-10 12:18
*** 악한 영을 거부하십시오. / 로마서 7:14-25
로마서 7:14-25,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 이 우주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시지요? 그런데 사람이 사는 이 땅의 권세를 가지고 주관하는 존재가 악한 영들이라는 사실은 아십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시적으로 사람이 사는 땅과 공중의 권세를 사탄의 세력들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던 마귀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 4:5-7절입니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그리고 에베소서 2:2절에서는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하시며, 6:12절에서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한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탄과 악한 영들이 가장 강력하게 행사하는 무기는 이 세상의 영광과 쾌락과 부귀영화입니다.
악한 영들은 이렇게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는 욕망과 더러운 생각과 감정을 일으키며 그것을 믿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두려움과 분노와 염려와 슬픈 감정들을 집어넣습니다. 사람이 악한 영들이 주는 감정에 사로잡히면 분노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다투고 염려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속에 침투한 악한 영들에 의한 죄가 그 원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 17-18절에서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고 고백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자기 스스로가 혹은 자신의 감정이 이렇게 하는 줄로 여깁니다. 하지만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는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도록 깨끗한 영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속임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범했으며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창세기 3:7-8절입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이것이 죄의 시작이며 사탄의 속임으로 인한 더럽고 악한 감정들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는 이러한 악한 감정들을 부르는 악한 영들을 거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밝히려고 합니다. 즉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실질적으로 악한 영들을 대적하여 물리칠 수 있는 길을 살펴보려합니다. 말씀들을 잘 듣고 깨닫고 담대하게 행하셔서 내 자신이 하나님께 속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본문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선과 악 사이의 갈등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갈등은 크게 두 가지의 경우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직 거듭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로 인하여 일어나는 삶의 갈등입니다. 다른 하나는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성화되는 과정에서 아직 불완전한 삶으로 인한 갈등입니다. 본문말씀의 내용을 살펴보면 후자가 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삶으로 인하여 영적인 갈등을 겪는 것입니다. 본문 22-23절입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이 말씀에서 “속사람”이라는 표현은 거듭난 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8장에서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본문에서 불완전한 인간의 삶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25절에서 갈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등을 종식시키시는 분임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말씀이 8장에서 전개됩니다. 8:1-2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렇다면 이렇게 죄에서 해방되어 영적인 자유를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 해답은 8장에서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8:13-14절을 봅시다. “너희가 육체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 말씀에서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하나님을 닮은 영의 삶으로 육체의 욕망을 따르는 행실을 분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자신에게서 성령님의 역사와 악한 영들을 분리해야 합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은 우리 육신의 감각으로는 느낄 수가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사람의 영혼뿐만 아니라 짐승들에게도 마음대로 들락거리면서 유혹을 뿌리며 정신을 조종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변장술에 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변장술은 악한 영들뿐만 아니라 악한 영들에 사로잡힌 추종자들도 능하다는 사실입니다. 고린도후서 11:13-15절을 봅시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그래서 악한 영들은 자신의 정체를 은밀하게 숨긴 채로 사람들에게 악하고 더러운 생각들과 조급하고 난폭한 마음과 미움, 분노, 시기, 염려, 두려움, 절망 등의 감정들을 조장합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마음이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믿고는 갈등하고, 자포자기 하고, 스스로를 두렵게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말씀에서는 이런 육신적인 죄를 조장하는 것은 죄 즉 악한 영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은 육신의 일과 영의 일, 성령님의 역사와 악한 영들의 일을 분리해야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분리해야 합니까?
전설처럼 내려오는 옛날이야기입니다. 어느 왕이 백성들의 마음을 시험해보려고 한 가지 일을 계획했습니다. 도성에 사는 모든 백성들에게 꽃씨를 나누어주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사람에게 후한 상을 주겠다.’고 방을 붙였습니다. 사람들은 정성껏 화분에 씨를 심고 가꾸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싹조차 나지를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똑 같은 꽃씨를 구해서 키우기도 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아름다운 꽃씨를 찾아서 심고 가꾸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 꽃이 필 무렵 왕은 ‘가꾼 꽃을 각자의 집 앞에 두어서 왕이 지나갈 때에 볼 수 있도록 하라.’고 방을 붙였습니다. 드디어 왕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날, 거리는 집집마다 내놓은 아름다운 꽃들로 아름답게 물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집 앞에는 흙만 가득 들어 있는 빈 화분이 있었습니다. 그 곁에는 아이가 훌쩍이고 있었습니다. 왕은 그 집 앞에 멈추어서 아이에게 ‘왜 꽃이 없으며,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다른 집은 모두 아름답게 꽃이 피었는데, 내 꽃씨는 싹이 나질 않아요! 그래서 울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왕은 그 아이에게 상금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왕은 백성들의 정직한 마음을 시험해 보려고 삶은 꽃씨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꽃을 ‘요화(妖花)’라고 합니다. 도깨비 꽃 즉 거짓된 꽃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환경을 만나면 거의 대부분은 ‘다른 것을 심어서라도 꽃을 피우겠다.’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이런 거짓된 유혹 뿐만 아니라 시기심, 더러운 말이나 생각, 난폭성 등. 자신이 당면한 상황을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려고 생각하는 순간에 악한 영들이 침투하게 됩니다. 이러한 순간에 악한 영들을 분리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즉 주님의 자녀로서 정직하고 진실한 삶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거짓과 폭력, 음란함과 더럽고 추한 것을 좋아하며, 진실한 사랑과 성실함과 부드러움을 싫어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44절에서 악한 영들의 습성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그래서 에베소서 4:25-32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새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삶의 자세를 가르칩니다. 25-27절을 봅시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그리고 31-32절입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서도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처럼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과 악한 영들의 일을 분리시키고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을 따라가야 합니다.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을 따라가는 것이 악한 영들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전파들이 끊임없이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지만 라디오, 텔레비전, 각종 무선기기들의 전파들이 각자의 주파수로 이 공중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든지 그 주파수에 맞추기만 하면 그 전파를 수신할 수가 있습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의 역사도 이 전파와 같습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은 우리의 생각을 통하여 역사합니다. 사탄과 그 악한 영들이 이 공중을 장악하고 온갖 악하고 더러운 것들을 전파처럼 퍼뜨리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악한 영들의 생각과 일치되면 즉시 그 사람의 마음에 침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29절에서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했고, 5:3절에서는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고 했고 골로새서 2:20-21절에서는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만일 악한 영들의 역사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되면 지옥의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16절입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악한 영을 거부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20절을 봅시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왜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지 않고 밖에서 두드리고 계십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만드셨지만 사람들에게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마음을 열지 않으면 들어가실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탄과 그의 악한 영들도 내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결단코 내 안에 들어 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변을 맴돌면서 틈이 생기기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앞서 보았던 에베소서 4:27절에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그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생각들이 일어날 때에는 단호하게 거부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9:1절에서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라는 말씀을 의지하여 분리하고 거부하십시오. 그리하여 성령님의 안정적인 인도하심을 받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로마서 7:14-25,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 이 우주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시지요? 그런데 사람이 사는 이 땅의 권세를 가지고 주관하는 존재가 악한 영들이라는 사실은 아십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시적으로 사람이 사는 땅과 공중의 권세를 사탄의 세력들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던 마귀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 4:5-7절입니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그리고 에베소서 2:2절에서는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하시며, 6:12절에서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한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탄과 악한 영들이 가장 강력하게 행사하는 무기는 이 세상의 영광과 쾌락과 부귀영화입니다.
악한 영들은 이렇게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는 욕망과 더러운 생각과 감정을 일으키며 그것을 믿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두려움과 분노와 염려와 슬픈 감정들을 집어넣습니다. 사람이 악한 영들이 주는 감정에 사로잡히면 분노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다투고 염려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속에 침투한 악한 영들에 의한 죄가 그 원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 17-18절에서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고 고백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자기 스스로가 혹은 자신의 감정이 이렇게 하는 줄로 여깁니다. 하지만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는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도록 깨끗한 영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속임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범했으며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창세기 3:7-8절입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이것이 죄의 시작이며 사탄의 속임으로 인한 더럽고 악한 감정들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는 이러한 악한 감정들을 부르는 악한 영들을 거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밝히려고 합니다. 즉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실질적으로 악한 영들을 대적하여 물리칠 수 있는 길을 살펴보려합니다. 말씀들을 잘 듣고 깨닫고 담대하게 행하셔서 내 자신이 하나님께 속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본문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선과 악 사이의 갈등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갈등은 크게 두 가지의 경우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직 거듭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로 인하여 일어나는 삶의 갈등입니다. 다른 하나는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성화되는 과정에서 아직 불완전한 삶으로 인한 갈등입니다. 본문말씀의 내용을 살펴보면 후자가 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삶으로 인하여 영적인 갈등을 겪는 것입니다. 본문 22-23절입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이 말씀에서 “속사람”이라는 표현은 거듭난 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8장에서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본문에서 불완전한 인간의 삶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25절에서 갈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등을 종식시키시는 분임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말씀이 8장에서 전개됩니다. 8:1-2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렇다면 이렇게 죄에서 해방되어 영적인 자유를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 해답은 8장에서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8:13-14절을 봅시다. “너희가 육체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 말씀에서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하나님을 닮은 영의 삶으로 육체의 욕망을 따르는 행실을 분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자신에게서 성령님의 역사와 악한 영들을 분리해야 합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은 우리 육신의 감각으로는 느낄 수가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사람의 영혼뿐만 아니라 짐승들에게도 마음대로 들락거리면서 유혹을 뿌리며 정신을 조종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변장술에 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변장술은 악한 영들뿐만 아니라 악한 영들에 사로잡힌 추종자들도 능하다는 사실입니다. 고린도후서 11:13-15절을 봅시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그래서 악한 영들은 자신의 정체를 은밀하게 숨긴 채로 사람들에게 악하고 더러운 생각들과 조급하고 난폭한 마음과 미움, 분노, 시기, 염려, 두려움, 절망 등의 감정들을 조장합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마음이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믿고는 갈등하고, 자포자기 하고, 스스로를 두렵게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말씀에서는 이런 육신적인 죄를 조장하는 것은 죄 즉 악한 영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은 육신의 일과 영의 일, 성령님의 역사와 악한 영들의 일을 분리해야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분리해야 합니까?
전설처럼 내려오는 옛날이야기입니다. 어느 왕이 백성들의 마음을 시험해보려고 한 가지 일을 계획했습니다. 도성에 사는 모든 백성들에게 꽃씨를 나누어주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사람에게 후한 상을 주겠다.’고 방을 붙였습니다. 사람들은 정성껏 화분에 씨를 심고 가꾸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싹조차 나지를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똑 같은 꽃씨를 구해서 키우기도 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아름다운 꽃씨를 찾아서 심고 가꾸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 꽃이 필 무렵 왕은 ‘가꾼 꽃을 각자의 집 앞에 두어서 왕이 지나갈 때에 볼 수 있도록 하라.’고 방을 붙였습니다. 드디어 왕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날, 거리는 집집마다 내놓은 아름다운 꽃들로 아름답게 물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집 앞에는 흙만 가득 들어 있는 빈 화분이 있었습니다. 그 곁에는 아이가 훌쩍이고 있었습니다. 왕은 그 집 앞에 멈추어서 아이에게 ‘왜 꽃이 없으며,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다른 집은 모두 아름답게 꽃이 피었는데, 내 꽃씨는 싹이 나질 않아요! 그래서 울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왕은 그 아이에게 상금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왕은 백성들의 정직한 마음을 시험해 보려고 삶은 꽃씨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꽃을 ‘요화(妖花)’라고 합니다. 도깨비 꽃 즉 거짓된 꽃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환경을 만나면 거의 대부분은 ‘다른 것을 심어서라도 꽃을 피우겠다.’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이런 거짓된 유혹 뿐만 아니라 시기심, 더러운 말이나 생각, 난폭성 등. 자신이 당면한 상황을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려고 생각하는 순간에 악한 영들이 침투하게 됩니다. 이러한 순간에 악한 영들을 분리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즉 주님의 자녀로서 정직하고 진실한 삶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거짓과 폭력, 음란함과 더럽고 추한 것을 좋아하며, 진실한 사랑과 성실함과 부드러움을 싫어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44절에서 악한 영들의 습성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그래서 에베소서 4:25-32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새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삶의 자세를 가르칩니다. 25-27절을 봅시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그리고 31-32절입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서도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처럼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과 악한 영들의 일을 분리시키고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을 따라가야 합니다.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을 따라가는 것이 악한 영들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전파들이 끊임없이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지만 라디오, 텔레비전, 각종 무선기기들의 전파들이 각자의 주파수로 이 공중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든지 그 주파수에 맞추기만 하면 그 전파를 수신할 수가 있습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의 역사도 이 전파와 같습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은 우리의 생각을 통하여 역사합니다. 사탄과 그 악한 영들이 이 공중을 장악하고 온갖 악하고 더러운 것들을 전파처럼 퍼뜨리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악한 영들의 생각과 일치되면 즉시 그 사람의 마음에 침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29절에서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했고, 5:3절에서는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고 했고 골로새서 2:20-21절에서는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만일 악한 영들의 역사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되면 지옥의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16절입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악한 영을 거부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20절을 봅시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왜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지 않고 밖에서 두드리고 계십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만드셨지만 사람들에게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마음을 열지 않으면 들어가실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탄과 그의 악한 영들도 내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결단코 내 안에 들어 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변을 맴돌면서 틈이 생기기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앞서 보았던 에베소서 4:27절에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그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생각들이 일어날 때에는 단호하게 거부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9:1절에서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라는 말씀을 의지하여 분리하고 거부하십시오. 그리하여 성령님의 안정적인 인도하심을 받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