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하나님께서 명하신 우리가 행할 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718회 작성일 2014-02-19 22:11
*** 하나님께서 명하신 우리가 행할 일 / 스가랴 8:14-17, 야고보서 3:13-18

 스가랴 8:14-17, “14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나를 격노하게 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었으나 15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16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17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야고보서 3:13-18,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어떤 성품의 사람을 좋아합니까? 아니면 어떤 삶의 방식을 좋아하십니까?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찾아보라고 하면 대단히 많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의 성품이기도 하면서 사람들에게도 요구하신 성품이자 삶의 방식인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돋보이는 것이 있는데 이사야 선지자가 오실 메시아에 대하여 예언한 말씀인 이사야 9: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여기서 메시아를 “평강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5:9절에서 팔복 중의 일곱 번째 복이 나오는데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화평하게 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후서 5:18절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에서 공통적인 성품이자 삶의 방식이 나오는데  ‘평화’ 혹은 ‘평강’, ‘화목’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성품이자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이것은 굳이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표현하시면서 요한복음 14: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7:19절입니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진리’ 혹은 ‘진실’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된 성품이자 삶의 방식입니다. 히브리서 12:14절에서는 대단히 엄격하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거룩함’이란 ‘진리로 사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화평’과 ‘진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절대적인 요소입니다. 두 본문말씀에도 들어 있는 이 내용이 지금 살펴볼 말씀입니다.

※ 본문말씀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스가랴서는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메시아를 통한 구원을 선포하시면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소수만 남았고, 그동안 예루살렘은 황폐한 채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기댈 곳이 없었습니다. 실망과 좌절감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께서 구원계획을 말씀하시면서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본문 14-15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나의 격노하게 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었으나,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이스라엘이 패망하고 70년 동안이나 노예의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격노하게 한 것’입니다. 이제는 그 죄의 대가를 치렀으니 은혜를 베풀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요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것을 버리고 기뻐하시는 뜻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본문 16-17절에 있습니다.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이 말씀의 핵심이 ‘화평하고 진실한 삶’입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믿음도 행함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속한 삶의 방식인 진리를 거스르는 거짓과 분열을 일으키는 시기와 다툼을 버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화평과 진실한 삶을 이루라고 하십니다. 본문 17-18절에서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핵심도 ‘화평하고 진실한 삶’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삶은 화평하고 진실한 삶입니다.

옛날에 한 선비가 친구의 부모가 돌아가시자 조문을 갔습니다. 선비가 도착하자 마침 친구는 밥을 먹고 있었는데 팥밥이어서 색깔이 붉었습니다. 고지식한 선비는 이를 두고 나무랐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자네는 어찌 팥밥을 먹는단 말인가?” 황망한 표정으로 밥을 먹고 있던 친구가 고개를 들면서 물었습니다. “무슨 뜻인가?” 그러자 선비가 말했습니다. “붉은 색은 기쁨을 의미하지 않은가? 자네는 부모가 돌아가셔서 기쁘다는 뜻인가?” 그러자 친구가 불쾌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흰 밥을 먹는 사람들은 모두 상중에 있어서 슬프다는 뜻이라는 말인가?”

이 이야기는 마치 욥기에서 욥을 위로하러 왔던 세 친구들이 위로는 고사하고 욥을 책망하다 못해 몰지각한 죄인으로 몰아세우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은 진리를 지키는 진실한 사람인척하면서 상대방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이기주의적인 형식주의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러합니다. 진실은 없고 외모와 외식과 형식에 빠져있습니다. 어느 인터넷 뉴스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사회를 보도한 내용’을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외국 뉴스에서는 우리나라의 ‘성형수술에 대한 수많은 광고’와 ‘성형외과병원’들을 보도하면서 ‘외모를 중시하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연예인들 중에는 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고, 이제는 일반인들까지도 성형수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형수술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적인 아름다움인 진실에는 관심도 없고 외모만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꽃미남’ ‘여신급 외모’ ‘꽃 중년’ 등. 지금 이 세대는 외모 가꾸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 세대에 대하여 디모데후서 4:3-4절에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도 신앙의 질을 높이고 사회에서 본이 되는 진실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런 영적인 삶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예배당을 더 크고 웅장하게 건축하고, 수많은 프로그램들과 다양한 문화사역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사이에 기도하는 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는 편의주의와 세상적인 행사들은 날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기독교 윤리실천운동’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교회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했습니다. 이 조사에서 국민들은 ‘사회에 대한 봉사를 가장 많이 하는 종교’로 ‘기독교’를 꼽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믿을 수 있는 종교’를 묻는 질문에서는 가톨릭과 불교에 이어 세 번째였습니다. 더 많이 봉사하고도 신뢰 받지 못하는 이유는 ‘진실하지 못한 삶’때문입니다. 물론 일을 많이 하다보면 안 좋은 모습도 보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생활 속에서 화평을 이루고 진실한 삶을 산다면 결코 이런 외면을 받지도 않을 것이고, 오히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게 될 것입니다. 스가랴 본문 16-17절에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외모나 외적인 성장보다는 영적인 아름다운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무엘상 16: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7:24절에서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의 생활에서부터 이런 화평과 진실한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어느 부부가 맹렬한 싸움 끝에 서로 말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말만 하면 싸우게 되니까 꼭 해야 할 말이 있으면 글로 쓰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날 출장을 가게 된 남편은 새벽차를 놓칠까 봐 어쩔 수 없이 부인에게 '내일 아침 4시에 깨워 줘요.' 라고 적은 쪽지를 주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남편은 창문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서는 시계를 보니 벌써 7시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화가 잔뜩 난 남편이 부인을 깨우려고 하는데 머리맡에 종이쪽지가 보였습니다.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여보, 벌써 4시예요.\"

잠언 17:1절입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세상에서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습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본문 17-18절에서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하십니다. 화평, 평화, 하나 됨, 행복한 등의 뜻이 있는 단어가 히브리어로는‘샬롬(shalowm, !/lv;)’, 헬라어로는 ‘에이레네(eirene, eijrhvnh)’입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대로 ‘화평’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성품입니다. 히브리서 12:14절을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바꾸어 말해서 화평을 깨뜨리는 사람, 다툼을 일으키며, 분열을 일으키며, 이간질을 하며, 세상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뵙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옛말에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도 싸움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안에서 누리는 행복’입니다. 신명기 10:12-1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복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의 팔복이나 요한계시록의 칠복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이 있나니”라고 번역된 말은 “마카리오스(makarios), makavrio\"”인데, ‘행복한’ ‘복된’이라는 의미로 ‘최고의 복’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은 세상의 것으로 인한 행복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화평하고 진실한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스가랴 본문 다음에 나오는 19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달의 금식과 다섯째달의 금식과 일곱째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화평과 진실한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슬픔을 바꾸어 기쁨이 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말하지 않아도 삶의 모습에서 주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삶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며 우리들의 삶에는 주님이 이루시는 행복으로 가득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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