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을 위하여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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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1-19 22:28
*** 행복한 삶을 위하여 / 신명기 10:12-16, 마태복음 22:37-40
신명기 10:12-16,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마태복음 22:37-40,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 들어가는 말
2014년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영과 육신의 성공적인 삶을 이루기 위한 말씀을 계속 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어떻게 살아야 할꼬!’ 두 번째는 ‘소통하는 신앙’이라고 했고, 오늘 세 번째는 ‘행복한 삶을 위하여’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행복’ 말만 들어도 기분 좋은 단어입니다. 아마도 행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에 대한 척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세계의 행복지수를 조사하는 단체들이 여럿이 있습니다. 각 단체마다 기준과 순위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은 비슷합니다.
미국 콜롬비아대학 지구연구소가 세계 157개국을 대상으로 2010~2012년 행복지수를 조사하여 그 결과를 '2013 세계 행복 보고서' 라고 발표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행복지수 1위가 덴마크, 2위 노르웨이, 3위 스위스, 4위 네덜란드, 5위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가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 1~5위를 기록했습니다. 반면에 르완다, 브룬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베냉, 토고 등 사하라 사막 남부 아프리카 국가들은 불행한 국가로 조사됐습니다. 일본은 43위, 한국은 55위, 중국은 93위였습니다.
세계 행복지수 1위를 차지한 덴마크는 국민의 41%가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무신론자는 15%에 그쳤습니다. 2013년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79.1%가 복음루터교를 믿고 있지만,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비율은 3%였습니다. 덴마크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로는 경쟁과 대결보다는 협동하며 공유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과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꼽혔습니다.
덴마크 국민의 사상이 상당히 성경적입니다. 빌립보서 2:1-4절을 봅시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비슷하지요?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국민성은 조급할 뿐 아니라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 하나로도 알 수 있듯이 남이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성격입니다. 서로 화합하는 것, 즉 인간관계에 익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인간관계는 행복한 삶의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직장과 사업장등의 사회생활이 행복하고 학교생활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인간관계 정립을 바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정립입니다. 마태복음 본문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말씀은 성경말씀의 두 초점인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를 말씀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해야 합니다.
※ 행복하려면 먼저 사람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왜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사람과의 관계를 먼저 정립해야 하겠습니까? 마태복음 5:23-24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리고 마태복음 16:19절을 봅시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먼저 인간관계 정립이 필요한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인간관계가 화목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매어 있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하나님나라에서도 풀리지 않습니다. 하나 더 봅시다. 베드로전서 3:7절입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여자를 천대하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부부사이에도 화목하지 않으면 기도가 막히게 되기 때문에 화목을 유지해야 합니다.
※ 미국의 카네기재단이 사람들의 직무수행 능력에 대하여 통계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는 “직무수행상의 성공에 기여하는 공헌정도가 기술적인 지식은 15%정도이며, 인간관계 기능이 85%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통계를 보듯이 보통 사람들이 직장생활이 실패하는 이유는 기술적인 원인이 아니라 인간관계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IBM 회사는 40시간의 종업원 교육훈련 중에 32시간을 인간관계 훈련에 투자한다고 합니다.
※ 하버드 대학의 직업지도부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조사 내용은 “지금 현재 당신의 행복을 결정하는 행복의 조건을 한 가지만 든다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습니까?” 라는 것입니다. 설문조사결과 가장 많은 대답은 '인간관계가 행복을 결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사회생활 중에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도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인간관계 훈련에 집중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5장의 팔복 중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이 어떤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했습니까? ‘화평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즉 peacemaker,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는 화를 내는 일에 대하여 심각하게 경고하십니다. 마태복음 5:22절(공동번역)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또 자기 형제더러 미친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무섭지요? 더 무서운 말씀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8절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공동번역/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친척,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는 벌써 믿음을 버린 사람이고 비신자보다도 못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인간관계를 먼저 정립하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이유가 요한일서 4:20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눈에 보이는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옛 말에도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느 곳에서든지 분열과 다툼을 막고 하나 되는 것과 화평하게 하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 행복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정립은 세상 사람들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망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나의 하나님을 사랑해야’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본문 12-13절을 봅시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실천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이유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섬김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인간들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행복을 준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1-3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 29:11절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희망입니다.
중국을 여행하던 어느 그리스도인이 지나는 길에 만난 중국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신은 성경말씀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에 대하여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어 본 적도 없고 예수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것을 본 적은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 마을에 무서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웃들에게 두려움을 줄 정도로 지독한 욕쟁이에다가 난폭했으며, 아편 중독에다가 범죄자요, 맹수만큼이나 위험스러운 사람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수의 가르침을 받은 후에 온순하고 선량한 사람이 되었지 뭡니까! 진정 나는 성경을 읽어 본 일은 없지만 그 사람을 통하여 그것을 보았다오. 그것은 참으로 훌륭한 것이오”
참된 희망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람은 자신의 소망이 너무나 강렬하면 모든 것을 그 소망에 투자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투자하고 버려서라도 반드시 얻어야만 하는 우리의 영원한 행복이며 소망이며 보배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정립이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본문 16절에서는 경고도 잊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마음에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옛 사람을 베어내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을 뜻합니다. 즉 세상에 속하여 세상의 것을 사랑했던 옛 사람을 버리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목을 곧게 한다.’는 것은 거역하고 대항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원활한 관계정립을 위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데 반드시 회복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관계정립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수단인 대화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로 아뢰는 양방향의 소통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의도하는 것이 양방향 소통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뜻합니다. 이렇게 내가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고 기도로 아뢰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소통하는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2014년에는 우리 모두의 삶이 이처럼 사람과의 관계가 정립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립되어 진정한 행복의 삶을 이룰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명기 10:12-16,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마태복음 22:37-40,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 들어가는 말
2014년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영과 육신의 성공적인 삶을 이루기 위한 말씀을 계속 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어떻게 살아야 할꼬!’ 두 번째는 ‘소통하는 신앙’이라고 했고, 오늘 세 번째는 ‘행복한 삶을 위하여’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행복’ 말만 들어도 기분 좋은 단어입니다. 아마도 행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에 대한 척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세계의 행복지수를 조사하는 단체들이 여럿이 있습니다. 각 단체마다 기준과 순위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은 비슷합니다.
미국 콜롬비아대학 지구연구소가 세계 157개국을 대상으로 2010~2012년 행복지수를 조사하여 그 결과를 '2013 세계 행복 보고서' 라고 발표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행복지수 1위가 덴마크, 2위 노르웨이, 3위 스위스, 4위 네덜란드, 5위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가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 1~5위를 기록했습니다. 반면에 르완다, 브룬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베냉, 토고 등 사하라 사막 남부 아프리카 국가들은 불행한 국가로 조사됐습니다. 일본은 43위, 한국은 55위, 중국은 93위였습니다.
세계 행복지수 1위를 차지한 덴마크는 국민의 41%가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무신론자는 15%에 그쳤습니다. 2013년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79.1%가 복음루터교를 믿고 있지만,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비율은 3%였습니다. 덴마크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로는 경쟁과 대결보다는 협동하며 공유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과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꼽혔습니다.
덴마크 국민의 사상이 상당히 성경적입니다. 빌립보서 2:1-4절을 봅시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비슷하지요?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국민성은 조급할 뿐 아니라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 하나로도 알 수 있듯이 남이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성격입니다. 서로 화합하는 것, 즉 인간관계에 익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인간관계는 행복한 삶의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직장과 사업장등의 사회생활이 행복하고 학교생활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인간관계 정립을 바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정립입니다. 마태복음 본문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말씀은 성경말씀의 두 초점인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를 말씀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해야 합니다.
※ 행복하려면 먼저 사람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왜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사람과의 관계를 먼저 정립해야 하겠습니까? 마태복음 5:23-24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리고 마태복음 16:19절을 봅시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먼저 인간관계 정립이 필요한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인간관계가 화목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매어 있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하나님나라에서도 풀리지 않습니다. 하나 더 봅시다. 베드로전서 3:7절입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여자를 천대하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부부사이에도 화목하지 않으면 기도가 막히게 되기 때문에 화목을 유지해야 합니다.
※ 미국의 카네기재단이 사람들의 직무수행 능력에 대하여 통계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는 “직무수행상의 성공에 기여하는 공헌정도가 기술적인 지식은 15%정도이며, 인간관계 기능이 85%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통계를 보듯이 보통 사람들이 직장생활이 실패하는 이유는 기술적인 원인이 아니라 인간관계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IBM 회사는 40시간의 종업원 교육훈련 중에 32시간을 인간관계 훈련에 투자한다고 합니다.
※ 하버드 대학의 직업지도부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조사 내용은 “지금 현재 당신의 행복을 결정하는 행복의 조건을 한 가지만 든다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습니까?” 라는 것입니다. 설문조사결과 가장 많은 대답은 '인간관계가 행복을 결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사회생활 중에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도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인간관계 훈련에 집중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5장의 팔복 중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이 어떤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했습니까? ‘화평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즉 peacemaker,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는 화를 내는 일에 대하여 심각하게 경고하십니다. 마태복음 5:22절(공동번역)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또 자기 형제더러 미친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무섭지요? 더 무서운 말씀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8절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공동번역/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친척,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는 벌써 믿음을 버린 사람이고 비신자보다도 못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인간관계를 먼저 정립하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이유가 요한일서 4:20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눈에 보이는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옛 말에도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느 곳에서든지 분열과 다툼을 막고 하나 되는 것과 화평하게 하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 행복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정립은 세상 사람들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망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나의 하나님을 사랑해야’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본문 12-13절을 봅시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실천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이유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섬김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인간들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행복을 준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1-3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 29:11절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희망입니다.
중국을 여행하던 어느 그리스도인이 지나는 길에 만난 중국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신은 성경말씀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에 대하여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어 본 적도 없고 예수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것을 본 적은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 마을에 무서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웃들에게 두려움을 줄 정도로 지독한 욕쟁이에다가 난폭했으며, 아편 중독에다가 범죄자요, 맹수만큼이나 위험스러운 사람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수의 가르침을 받은 후에 온순하고 선량한 사람이 되었지 뭡니까! 진정 나는 성경을 읽어 본 일은 없지만 그 사람을 통하여 그것을 보았다오. 그것은 참으로 훌륭한 것이오”
참된 희망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람은 자신의 소망이 너무나 강렬하면 모든 것을 그 소망에 투자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투자하고 버려서라도 반드시 얻어야만 하는 우리의 영원한 행복이며 소망이며 보배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정립이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본문 16절에서는 경고도 잊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마음에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옛 사람을 베어내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을 뜻합니다. 즉 세상에 속하여 세상의 것을 사랑했던 옛 사람을 버리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목을 곧게 한다.’는 것은 거역하고 대항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원활한 관계정립을 위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데 반드시 회복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관계정립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수단인 대화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로 아뢰는 양방향의 소통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의도하는 것이 양방향 소통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뜻합니다. 이렇게 내가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고 기도로 아뢰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소통하는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2014년에는 우리 모두의 삶이 이처럼 사람과의 관계가 정립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립되어 진정한 행복의 삶을 이룰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