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예수님의 오심4-가르침과 증인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026회 작성일 2013-12-22 22:06
*** 예수님의 오심4-가르침과 증인 / 마가복음 1:35-39, 디모데후서 4:1-5


 마가복음 1:35-39,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디모데후서 4:1-5,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 들어가는 말

세상의 모든 것에는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미물이나 혹은 흙이나 돌, 바람처럼 생명이 없는 무생물이거나 자연현상까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는 분명한 역할과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에게 목적이나 역할이 없겠습니까? 잠언 16:4절에서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어떤 역할을 하라고 만드셨고 이 시대에 이곳에 보내셨겠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분명히 알고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습니까? 존재할 목적과 역할이 있다는 것은 목적을 주신 분이 계시고 관리하시며 행한 일에 대하여 평가하고 판결하시는 분과 때가 있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오심을 생각하는 대강절 4번째 주일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목적과 역할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존재 목적이나 역할의 전 부분을 다 살필 수는 없고 이 시간에는 그 중에서 한 부분인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마가복음 본문 37절에서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하시며, 공생애에 행하신 일을 요약한 말씀인 마태복음 4:23절에서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복음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사도 바울을 통하여서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명령하신 사명이라고 하십니다. 디모데후서 본문 2절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여 순종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 내가 따르는 주님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지금 수요저녁예배에서 예수님의 비유와 이적에 대한 강해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강해하고 있는 말씀이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의 이적’에 대한 것입니다. 이 내용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조차 자신들이 따르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알지 못하여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을 봅니다. 마가복음 6:49-52절을 봅시다.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하시고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바로 몇 시간 전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들어 있는 작은 도시락 하나로 남자 장정만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신 것을 직접 경험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는 큰 바람과 파도까지도 잔잔하게 하신 사건을 경험했었습니다. 그때에도 제자들은 “이 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라며 예수님께 대한 무지를 나타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알지 못하니 귀신조차 쫓아낼 믿음도 능력도 없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새에게는 아직 날개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새가 하나님께 와서 자신은 작고 약하여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뱀은 독이 있고, 사자에게는 힘과 무서운 이빨이 있고, 말에게는 빠른 발과 발굽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좋으신 하나님은 새의 호소를 들어주셔서 새에게 깃털달린 날개를 달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새가 다시 찾아와서 호소했습니다.
“하나님, 날개란 오히려 짐이 될 뿐입니다. 날개를 달고 있으니 그전처럼 빨리 달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새야, 그 날개를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아라. 너에게 날개를 준 것은 결코 무겁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란다. 그 날개로 바람을 가르고 하늘 높이 날아서 적으로부터 피하라고 달아준 것이다.”

이 이야기로 웃게 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이보다 더 어리석게 행하는 일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지 못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도 능력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제자들이 아이에게 들린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을 때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7:20절입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니 믿음조차 제대로 가지질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도 신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하여 중요하게 가르치십니다. 호세아 6:6절에서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하시며, 요한복음 17:3절에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3년 공생애가 끝나갈 때 쯤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고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요한복음 16:30-31절입니다.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그리고 17:7-8절에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고, 성령 충만함을 받고서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담대함과 능력을 가질 수 있었고 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 주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분명히 알고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신 사명은 크게 두 부류입니다. 하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공통 과제이며, 다른 하나는 각 사람에게 주신 개별적인 사명입니다. 개별적인 사명은 자신의 재능과 은사들을 따라서 자신이 주님과의 관계에서 찾아야 하고 반드시 실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명은 반드시 결산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비유나 누가복음 19장에 있는 므나 비유에서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지금 말씀드리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신 과제에 대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심은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드려서 이 복음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이어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이 사명을 감당했으며 그의 제자들인 교부들에게 전수했습니다. 디모데후서 본문 전체를 함께 읽어봅시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선택적인 과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명령입니다. 그로부터 20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사명은 대를 이어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순종하고 행하여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이 과제를 후손들에게 가르쳐서 주님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지켜가도록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부득불 해야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16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부득불 할 일’이라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사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17-19절에서 복음 전하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직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우리 모두는 이 직분을 받았습니다. 성탄, 예수님의 오심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았던 인생이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하신 기회입니다. 아직 이 기회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기회도 끝이 날 것입니다. 아직 우리에게 이 기회가 있을 때 우리는 이 일을 해야 합니다.

✦ 전해져 오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 문 입구에 도착했는데 안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혼자 오셨습니까?” 이 사람이 ‘그렇다.’고 하자 다시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떻게 혼자 올 수가 있었습니까?”
✦ 부산 해운대의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을 때였습니다. 부흥회에 참석했던 어느 집사님이 부흥사 목사님과 그 교회 교역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그 집사님은 자신이 인생의 실패를 겪었고 그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것과 하나님의 은혜로 크게 성공하여 해운대에서는 내로라 할 정도로 잘 살게 되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명함을 한 장씩 주면서 부산 오는 길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 명함에는 ❍❍건설회사 전무라는 직함과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명함의 뒷면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 사장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저희 사장님과 만나기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몇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증인은 생활 속에서 열매로 나타내야합니다. 예전에는 복음을 말로 전해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지만, 지금은 복음을 생활로 보여야 할 때입니다. 지금의 사람들은 세상의 너무 많은 정보와 언어의 홍수 속에서 지쳐있습니다. 자신도 말을 하고 싶고 하소연하고 싶고 소리치고 싶어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좋은 말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실한 삶과 거짓 없는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3:18절에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하십니다.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오신 이 행복한 계절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쓰며,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신 복음을 전하여 빛나는 보석 같은 하늘의 상급을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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