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주님 따라가기5-고난도 각오해야 합니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5,915회 작성일 2014-06-30 21:38

*** 주님 따라가기5-고난도 각오해야 합니다. / 눅 9:23, 벧전 2:18-25

누가복음 9:23,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2:18-25,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들어가는 말

‘고난’ 이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결코 맞닥뜨리고 싶지 않는 상황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고난’을 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고대하는 ‘영광의 순간’이 있기 까지 ‘고난’, 즉 ‘십자가의 길’을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지나지 않는 부활의 영광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삶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려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면, 이 고난의 길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이집트는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교도인 이슬람 국가입니다. 성경에도 ‘애굽’으로 수없이 많이 언급되고 있으며, 예전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고, 지금도 소수의 남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떤 고난도 감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좋은 직장에 다닐 수 없고, 공무원이나 공공 기관에 입사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불이익과 수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이집트의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오래 전에, 이슬람 정부가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을 불러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겠다. 그 대신에 너희는 모카탐에서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면서 살아라. 그곳에서만은 예배를 하게 해 주겠다.”
모카탐 지역은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에서 버리는 모든 쓰레기가 모이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믿음의 후손들이 손으로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동네에서는 곳곳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배할 때마다 깨끗이 몸을 씻고 깨끗한 옷을 입고 2만 명가량 수용할 수 있는 동굴 교회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만일 국가에서 지금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명령한다면 그래도 신앙을 지키겠습니까? 지금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보다 더한, 짐승 취급을 받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북한의 지하교회에서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음식도 아니고, 고난을 피하는 것도 아니고, 성경을 보내 달라는 것과 기도 요청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너무도 좋은 환경에서 너무도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복을 원하며, 예배를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보다 자신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말세의 현상의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3:1절 이하에서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하시며, 4:4-5절에서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환경에도 굴복하지 않는 ‘믿음의 줏대’는 자신의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기 위하여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누가복음 본문말씀은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기 때문에 간단하게만 설명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셨던 제자들과 따르던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도’에 대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생명까지도 내놓아야 하는 길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는 크게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지난 주일에 드렸던 말씀인 ‘자기를 비우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오늘 주제인 ‘고난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본문말씀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의 자세’에 대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직장인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 아래서 일하는 사람들을 비유하여 ‘어떤 환경에서도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특히 부당하게 즉 특별한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해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참고 인내하라고 하십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고난을 당하지만 참고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고난의 길을 이미 예수님께서 앞서 가셨다고 강조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당연히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 우리가 각오해야 할 고난은 어떤 것입니까?

앞에서 이집트의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고난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집트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좋은 직장에 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좋은 집과 좋은 환경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들도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버리면 됩니다.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나 돼지보다 더 못한 취급을 당하면서, 순간순간 생명을 담보로 하는 신앙생활이 뭐가 좋다고 하겠습니까? 이들이 당하는 고난을 지금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 각오해야 할 고난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삶은 어떤 고난이겠습니까? 첫 번째 고난은 ‘자기를 부인하는 고난’ 즉 ‘자기를 버리는 고난’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던 내용입니다. 자기 생각과 계획, 자존심을 버리는 일은 자신의 정체성을 흔드는 고난입니다.

두 번째 고난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고난’입니다. 그러면 ‘십자가를 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처형도구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으로 가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지금 우리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죽음입니다. 죽지 않으면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리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죽여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창으로 찔렀었고, 두 강도의 다리를 부러뜨렸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부귀영화를 꿈꾸며, 장래 일을 계획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지금 십자가를 지고 간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합니까? 그런 뜻은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에게는 유일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의 영광’입니다. 로마서 8:17절을 봅시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부활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영광입니다. 이 소망을 위하여 이 세상의 불이익이나 고난, 생명까지도 버릴 각오를 하고 사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29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때때로 다가오는 불이익과 고난도 기쁘게 받아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본문 21-24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이 말씀대로 우리는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간단하게 말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는 대로 갚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네가 나에게 이렇게 했으니 나도 그렇게 하겠다.’라는 식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38-44절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참으로 힘든 요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좁은 문을 통하여 좁은 길로 가는 힘들고 험난한 길입니다.

여기서 고난의 길을 다 열거할 수는 없습니다. 신약성경을 많이 읽으십시오. 그 속에 우리가 가야 할 고난의 길도 있지만, 그 고난의 길을 잘 이겨낼 수 있는 은혜의 길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 고난의 길을 피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 이 고난의 길을 어떻게 갈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답이 되는 가장 간단하고 명확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8-30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위대한 초청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고난의 길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찬송가 337장에서 고백하는 내용과 같습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뇌성마비 시인인 ‘송명희’ 자매를 아시지요? 하늘의 시인이라고도 불리는 송명희 자매는 자신이 예수님을 알고 난 이후부터의 삶을 편지형태로 쓴 시가 있습니다. 그 편지는 “고난의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라고 했습니다. 그 편지 중의 한 부분입니다.
“선생님을 따른 후에도 고난은 저를 떠나주지 않았고 오히려 고난이 많아져 고통스러움은 더해만 갔었는데, 선생님이 제 옆에 계셔서 육신은 고달픔이 있으나 마음은 편안했고 감사함으로 고난의 길을 잘 밟을 수 있었지요. 의심과 두려움이 있을 때는‘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슬프고 괴로울 때는 ‘얘야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제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했을 땐‘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선생님은 그렇게 수없이 말씀하시며 그 부드러운 손으로 안아주셨지요. 제가 선생님을 만난 후, 건강이 없어도, 지식이 없어도, 많은 재물이 없어도, 선생님이 계시기에 감사 할 수 있었지요. 선생님, 감사의 성숙과 이해의 성숙은 고난이 아니면 얻어지는 게 아닌가 봅니다.”

주님을 따르는 고난의 길을 성공적으로 가려면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다른 사람 탓을 해 봐야 죄만 더할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난을 피하고, 어려운 길을 피해 간다고 결코 하나님의 뜻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위대한 전도자이며 신앙인인 사도 바울도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 위하여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오직 예수 안에서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3:10-14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도 이렇게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세상에 매이지 마십시오. 피곤하고 지친 삶이라도 말씀과 기도의 삶, 섬김과 봉사의 삶을 멈추지 마십시오. 예배를 즐거워하며 항상 예배하기를 힘쓰십시오. 이것도 역시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의 삶입니다. 이처럼 주님과 동행하며 지혜롭게 고난을 이겨내고 주님이 주시는 영광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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