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따라가기4-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 주님 따라가기4-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 마태복음 19:27-29, 마가복음 8:34-35
마태복음 19:27-29,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가복음 8:34-35,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들어가는 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들 중에 ‘나는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는다.’라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요즘은 종교생활을 ‘마음의 평안 혹은 위안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지요. 하지만 우리는 본향(本鄕)인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삶의 자세를 알고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계속 ‘주님 따라가기’라는 주제로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세 번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첫 번째는 ‘말이 변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세 번째는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은 네 번째 시간으로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이시간의 내용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있는 것을 비워내지 않고는 새것으로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22-24절에서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육신의 욕망으로 세상을 따라가던 옛 삶을 비우고 영의 소망을 품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옛 것을 비우고 벗어버려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마태복음 본문말씀은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제자들이 받을 보상’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재물이 많은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셨고, 그 청년은 ‘이 모든 것을 지켰는데 아직 무엇이 부족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의기양양하던 그 청년은 이 말씀은 듣고는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청년은 소유를 버릴 수 없었습니다. 청년이 돌아가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때에 베드로가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고,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본문말씀입니다.
마가복음 본문말씀은 공관복음에 모두 나오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신의 소유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뜻, 생명까지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성경에서 예수님을 따르는데 필요한 자격이나 조건을 찾으신다면 그 대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살펴봅시다.
※ 왜 자신을 비우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까?
앞서 서론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무엇인가로 가득 채워져 있는 그릇에는 다른 것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상식적으로 아는 물리적인 이치입니다. 영적인 이치로 본다면, 세상의 물질적인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마음에는 영의 새로운 생명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2:22절에서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느니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앞서 보았던 에베소서 4:22-24절에서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것을 비워야 하는 이유를 로마서 8:5-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예수님께서 명하신 말씀에 굴복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2:26절입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하나님의 나라에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을 위하여 준비하신 곳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세상의 것들을 비우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영의 삶으로 채워야 합니다. 이 일에도 예수님께서 먼저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빌립보서 2:5-8절을 봅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춰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렇게 행하신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본문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외에 자신을 비워야할 다른 이유가 필요합니까?
※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무엇을 비워야 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육신적인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인기 절정의 가수였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는 참된 기쁨도, 평안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성경을 뒤적이다가 어릴 때의 교회생활이 가슴 뭉클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는 즉시 가까운 교회로 갔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는 감동에 젖어 자신의 지나온 날들을 회개하면서 남은 생애를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에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면서 전속계약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는 정중하게 거절하면서 말했습니다.
“너무 늦게 전화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제 목소리와 모든 재능을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만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 사람이 유명한 복음성가 가수이자 작곡가인 쉐아(G. B. Shea)입니다. 그가 작곡한 찬송가가 94장인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찬송입니다. 한번은 전도 집회에서 영감 있는 그의 찬송에 모두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는 박수에 답례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서 이렇게 박수갈채를 보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의 박수갈채와도 예수님을 바꿀 수 없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거절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돈 싫어하는 사람 없겠지요? 세상에서 매일 일어나는 수많은 범죄 중에서 절대 다수가 돈이나 재물과 연관된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돈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만큼 세상 재물은 사람들에게 달콤한 유혹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토록 좋아하는 재물이 주님을 따르는 데는 버려야 할 제 1순위입니다. 마태복음 6:24절을 봅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재물을 이렇게 경계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디모데전서 6:9-10절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세상 재물에 대하여 마음이 초연해 질 수 있다면 그만큼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본문에서 베드로가 한 말을 봅시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님께서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신 말씀에 충격을 받은 베드로가 자신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는 것을 강조하며 물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 무엇을 버렸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던 때로 돌아가 봅시다. 마태복음 4:18-22절입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그리고 누가복음 5:27-28절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 같이 예수님께서 부르셨을 때에 망설임도 없이 즉시 가정과 일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누가복음 9:59-62절입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는데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세상의 것들을 비우지 못하고 머뭇거렸습니다. 부자 청년이 재물을 버리지 못하여 영생을 포기한 것처럼, 이렇게 세상의 소유를 버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세상의 소유가 적다면 버리기가 조금은 더 쉽겠지요?
이렇게 버려야 할 것이 물질적인 소유만은 아닙니다. 명예, 권세, 지식, 자존심, 자신의 생각과 뜻, 생명까지 다 비워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비우고 버려야 한다는 것이 아예 가지지도 않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보다 주님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주님을 위해서라면 즉시 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따른 제자들은 이렇게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한 것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한 것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본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가복음 10:29-3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브라질의 성자로 불렸던 미국 선교사인 ‘멜랜드’ 부부는 브라질의 깊은 산골에 들어가서 선교하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곳 주민인 폴리오 인디언들은 이 선교사 부부를 부르는 호칭을 네 번이나 바꿨습니다. 인디언들은 멜랜드 선교사 부부를 ‘백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이름에는 과거에 자신들의 땅을 점령해서 학대했던 백인들에 대한 증오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 부부는 변함없이 의료봉사로 주민들의 병을 치료하고 목숨까지 구하는 헌신적인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러자 인디언들은 선교사 부부를 ‘존경하는 백인’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10여 년이 지난 후에는 선교사 부부가 폴리오 인디언들의 언어를 그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유창하게 했고, 생활도 그들의 풍습대로 똑같이 살았습니다. 어느새 그들은 선교사 부부를 ‘백인 인디언’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선교사 부부는 부상당한 인디언 소년의 발을 씻어주고 있었는데 그 광경을 보던 인디언들이
“인디언의 발을 씻는 백인을 보았는가? 이 사람들은 하늘이 보내준 사람들이다.”
고 했으며, 그때부터 멜랜드 선교사 부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렸습니다.
여러분, 지금이라도 주님을 위하여 무엇이라도 여러분 자신과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라고 하시면 즉시 포기하겠습니까? 주저함 없이 ‘그렇다.’고 대답하신다면 진정한 주님의 제자입니다. 그러나 망설여지거나 그럴 자신이 없다면 다시 영의 생명에 대하여 신중하게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자신을 비우는 것이 쉽지 않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한다면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중요한 일을 더 미루지 말고 지금이라도 내 생명이 끝난다면 예수님의 영접을 받을 수 있도록 결심하고 순종하여 주님의 약속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