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정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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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5-08 12:50
*** 아름다운 가정 / 시편 128:1-6, 에베소서 6:1-4
시편 128:1-6,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에베소서 6:1-4,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 들어가는 말
인간사회 공동체를 이루는 가장 기본 단위는 ‘가정’입니다. 한 개인은 생산성이 없으며, 대를 잇는 자손을 생산하는 기본은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가를 이루는 기초는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와 국가가 건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가정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에베소 본문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조성하시는 아름다운 가정의 기본질서를 말씀합니다. 특히 가정은 인성교육의 가장 중요한 학교이며, 부모는 삶의 본을 통하여 자녀들의 평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선생이 됩니다. 신명기 11:18-21절을 봅시다.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과 같으리라.” 부모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에 순종으로 본을 보이면서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서 따르게 하면 평생에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삶으로 본을 보이며, 자녀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가정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아름다운 가정이 됩니다.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의 순국기념일입니다. 여순 감옥에서 사형을 당했을 때 그의 나이는 31세였습니다. 그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는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아들 안중근 의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안중근 의사는 어머니께 ‘천국에서 만나자.’는 답을 보냈습니다.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지요? 천주교 신자였던 이 가정은 세상에 자신들의 신앙의 삶을 나타냈습니다. 부모의 신앙은 자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디모데후서 1:5절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하십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역자였던 디모데는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신앙을 이어받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이렇게 부모의 신앙은 자녀들의 앞날을 좌우하는 중요한 푯대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자 한다면 부모가 본이 되는 삶이 중요합니다.
※ 아름다운 가정의 기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시편 본문말씀은 대를 이어가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는 비결을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말라기 2:15절을 봅시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 안에는 하나님께서 가정을 이루게 하신 뜻이 들어있습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남편과 그 아내는 그들의 생애의 끝까지 사랑과 평화 안에서 함께 하여야 하고, 서로 간에 다툼이나 갈라섬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로 묶으셨습니다. ‘여호와는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이 말씀은 곧 한 사람 아담을 위해 한 사람 하와를 지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아담은 한 사람의 돕는 배필과 어울리도록 계획되었기 때문에 한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한 남자가 한 여자만을 취해야 했습니까? 그 이유는 “경건한 자손” 즉 ‘하나님의 자손을 얻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한 남편과 한 아내는 순결하고 거룩한 사랑 안에서 살아야 하며, 거룩한 결혼 안에서 태어나는 자손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한 남편과 한 아내를 통하여 경건한 자손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라기 2:16절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폭행하는 것과 이혼하는 것을 몹시 불쾌하게 여기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신 가정의 기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신약 본문말씀인 에베소서의 말씀도 아름다운 가정의 기초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태도에 대하여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하십니다.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태도에 대하여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십니다. 아름다운 가정의 기초가 ‘주님 안에서의 관계’임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예수님께 청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마 8:22)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가 청원했던 말은 ‘아버지의 장례절차를 모두 마친 후에 주님을 따르도록 허락해 달라.’는 뜻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육신이 죽은 사람을 장사하도록 맡겨두고 너는 나를 따르라.’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부친의 장례를 핑계로 즉시 순종하지 못하는 제자에게 ‘보다 더 중요한 것을 깨닫고 결단하라.’고 결단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아름다운 가정의 기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 아름다운 가정은 부모의 모범과 자녀의 순종으로 유지됩니다.
‘본’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면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다 게 이야기’입니다. 아들 게가 앞으로 가지 않고 자꾸만 옆으로 가는 것을 본 어미 게가 아들 게에게 바로 걸으라고 나무랐습니다. 그리고는 아들 게 앞에서 이렇게 걸어야 한다고 본을 보였습니다. 어미 게가 어떻게 걸은 줄은 아시지요? 어미 게는 아들 게랑 똑같이 옆걸음을 치고 있었습니다. 삶의 본이 된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교육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이신 교육방식도 역시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1:1절에서 기록자인 누가가 예수님의 교육방식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예수님의 교육방식은 행동으로 먼저 본을 보이시고 다음에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 예가 바로 요한복음 13:12-15절에 있습니다.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아름다운 가정이란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성실하게 행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서로에게 본을 끼치고 따르는 하나 된 구성체를 말합니다. 특히 이 구성체의 기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이 시대의 가정을 표현하여 ‘위기의 가정’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의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사이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고 가정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2:52-53절입니다.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특히 이 말씀은 마지막 때에 있게 될 복음으로 인한 불화와 분쟁을 말씀합니다. 이런 시대에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삶으로 본이 되고 본을 따르는 신실한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아빠는 아들에게 첫 번째 영웅이며, 딸에게는 첫 번째 사랑이다. 엄마는 아들에게 첫 번째 사랑이며, 딸에게는 첫 번째 친구이다.” 이 글만으로도 부모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지켜봐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평생을 이끌어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부모는 평생토록 자녀를 지켜봐 주는 사람입니다. 악성 베토벤이 남긴 말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훌륭한 부모의 슬하에 있다면 사랑에 넘치는 체험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먼 훗날 노년이 되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부모의 말씨, 행동, 작은 습관 하나까지 자녀들에게는 평생토록 뇌리에 새겨져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는 자녀들에게 가장 훌륭한 선생이며 안내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녀들에게 어떤 본을 보이고 있습니까?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에도 나무라지 못하고 잘못된 습관을 방치한다면 자녀를 패망의 길로 방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에베소서 본문 4절에서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십니다. 부모 된 이들이여, 말씀과 기도로 주님께 순종하는 아름다운 삶을 본으로 남기십시오.
자녀들도 역시 자신의 삶의 기준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두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본문 1-3절을 봅시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를 따르는 것도 “주 안에서”해야 합니다. 주님을 떠난 부모공경은 인간적으로는 좋을지 모르지만 영의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에 지혜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에게 하셨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가족 모두가 주님 안에 있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아프리카 사바나 대초원에는 조금 큰 다람쥐만한 미어캣이라는 동물이 있습니다. 이들은 30여 마리가 무리지어 사는데 철저하게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즉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들은 천적인 매나 독수리, 뱀, 여우 등을 경계하려고 서로 순번을 정해 보초를 섭니다. 파순꾼 미어캣은 더 멀리 보려고 나무 꼭대기나 바위 위에 올라가 주위를 살핍니다. 다른 식구들이 먹을 것을 찾고 맛있는 식사를 즐길 동안 이 보초는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치의 소홀함 없이 공동체를 위하여 헌신합니다. 암컷이 새끼를 낳으면 모든 성숙한 암컷의 유선이 발달해 함께 그 새끼를 젖 먹여 키웁니다. 적이 공격해 오면 그들은 자기 몸을 문 삼아 굴 입구를 막아 동료들을 지켜 내다가 죽기도 합니다. 혹 싸우다가 죽어 가는 동료는 결코 버리지 않고 끝까지 옆에서 체온을 유지해 주며 보살핍니다.
우리가 나쁜 사람을 일컬어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늙은 부모를 버리고 병든 가족도 장애를 입은 가족도 버립니다. 예전에 어느 글에서 어느 집의 벽 틈에서 꼬리에 못이 박힌 채로 수년을 산 도마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집이 구조 변경을 위하여 벽을 허물 때에 벽 사이에서 못으로 꼬리가 벽에 박힌 채로 살아 있는 도마뱀이 나왔습니다. 그 집에서는 수년 전에 벽에 새로운 합판을 붙이는 공사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관찰결과 다른 도마뱀이 먹이를 가져다가 주었다고 합니다. 정말 짐승만도 못한 우리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잠언 17:17절에서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고 했습니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진정한 사랑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있는지를 돌아봅시다. 부모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본이 되고,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를 잘 따라서 이 시대에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경건한 하나님의 자녀의 가정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시편 128:1-6,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에베소서 6:1-4,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 들어가는 말
인간사회 공동체를 이루는 가장 기본 단위는 ‘가정’입니다. 한 개인은 생산성이 없으며, 대를 잇는 자손을 생산하는 기본은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가를 이루는 기초는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와 국가가 건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가정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에베소 본문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조성하시는 아름다운 가정의 기본질서를 말씀합니다. 특히 가정은 인성교육의 가장 중요한 학교이며, 부모는 삶의 본을 통하여 자녀들의 평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선생이 됩니다. 신명기 11:18-21절을 봅시다.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과 같으리라.” 부모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에 순종으로 본을 보이면서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서 따르게 하면 평생에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삶으로 본을 보이며, 자녀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가정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아름다운 가정이 됩니다.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의 순국기념일입니다. 여순 감옥에서 사형을 당했을 때 그의 나이는 31세였습니다. 그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는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아들 안중근 의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안중근 의사는 어머니께 ‘천국에서 만나자.’는 답을 보냈습니다.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지요? 천주교 신자였던 이 가정은 세상에 자신들의 신앙의 삶을 나타냈습니다. 부모의 신앙은 자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디모데후서 1:5절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하십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역자였던 디모데는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신앙을 이어받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이렇게 부모의 신앙은 자녀들의 앞날을 좌우하는 중요한 푯대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자 한다면 부모가 본이 되는 삶이 중요합니다.
※ 아름다운 가정의 기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시편 본문말씀은 대를 이어가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는 비결을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말라기 2:15절을 봅시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 안에는 하나님께서 가정을 이루게 하신 뜻이 들어있습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남편과 그 아내는 그들의 생애의 끝까지 사랑과 평화 안에서 함께 하여야 하고, 서로 간에 다툼이나 갈라섬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로 묶으셨습니다. ‘여호와는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이 말씀은 곧 한 사람 아담을 위해 한 사람 하와를 지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아담은 한 사람의 돕는 배필과 어울리도록 계획되었기 때문에 한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한 남자가 한 여자만을 취해야 했습니까? 그 이유는 “경건한 자손” 즉 ‘하나님의 자손을 얻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한 남편과 한 아내는 순결하고 거룩한 사랑 안에서 살아야 하며, 거룩한 결혼 안에서 태어나는 자손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한 남편과 한 아내를 통하여 경건한 자손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라기 2:16절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폭행하는 것과 이혼하는 것을 몹시 불쾌하게 여기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신 가정의 기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신약 본문말씀인 에베소서의 말씀도 아름다운 가정의 기초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태도에 대하여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하십니다.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태도에 대하여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십니다. 아름다운 가정의 기초가 ‘주님 안에서의 관계’임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예수님께 청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마 8:22)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가 청원했던 말은 ‘아버지의 장례절차를 모두 마친 후에 주님을 따르도록 허락해 달라.’는 뜻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육신이 죽은 사람을 장사하도록 맡겨두고 너는 나를 따르라.’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부친의 장례를 핑계로 즉시 순종하지 못하는 제자에게 ‘보다 더 중요한 것을 깨닫고 결단하라.’고 결단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아름다운 가정의 기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 아름다운 가정은 부모의 모범과 자녀의 순종으로 유지됩니다.
‘본’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면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다 게 이야기’입니다. 아들 게가 앞으로 가지 않고 자꾸만 옆으로 가는 것을 본 어미 게가 아들 게에게 바로 걸으라고 나무랐습니다. 그리고는 아들 게 앞에서 이렇게 걸어야 한다고 본을 보였습니다. 어미 게가 어떻게 걸은 줄은 아시지요? 어미 게는 아들 게랑 똑같이 옆걸음을 치고 있었습니다. 삶의 본이 된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교육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이신 교육방식도 역시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1:1절에서 기록자인 누가가 예수님의 교육방식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예수님의 교육방식은 행동으로 먼저 본을 보이시고 다음에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 예가 바로 요한복음 13:12-15절에 있습니다.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아름다운 가정이란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성실하게 행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서로에게 본을 끼치고 따르는 하나 된 구성체를 말합니다. 특히 이 구성체의 기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이 시대의 가정을 표현하여 ‘위기의 가정’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의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사이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고 가정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2:52-53절입니다.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특히 이 말씀은 마지막 때에 있게 될 복음으로 인한 불화와 분쟁을 말씀합니다. 이런 시대에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삶으로 본이 되고 본을 따르는 신실한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아빠는 아들에게 첫 번째 영웅이며, 딸에게는 첫 번째 사랑이다. 엄마는 아들에게 첫 번째 사랑이며, 딸에게는 첫 번째 친구이다.” 이 글만으로도 부모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지켜봐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평생을 이끌어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부모는 평생토록 자녀를 지켜봐 주는 사람입니다. 악성 베토벤이 남긴 말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훌륭한 부모의 슬하에 있다면 사랑에 넘치는 체험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먼 훗날 노년이 되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부모의 말씨, 행동, 작은 습관 하나까지 자녀들에게는 평생토록 뇌리에 새겨져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는 자녀들에게 가장 훌륭한 선생이며 안내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녀들에게 어떤 본을 보이고 있습니까?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에도 나무라지 못하고 잘못된 습관을 방치한다면 자녀를 패망의 길로 방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에베소서 본문 4절에서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십니다. 부모 된 이들이여, 말씀과 기도로 주님께 순종하는 아름다운 삶을 본으로 남기십시오.
자녀들도 역시 자신의 삶의 기준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두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본문 1-3절을 봅시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를 따르는 것도 “주 안에서”해야 합니다. 주님을 떠난 부모공경은 인간적으로는 좋을지 모르지만 영의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에 지혜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에게 하셨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가족 모두가 주님 안에 있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아프리카 사바나 대초원에는 조금 큰 다람쥐만한 미어캣이라는 동물이 있습니다. 이들은 30여 마리가 무리지어 사는데 철저하게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즉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들은 천적인 매나 독수리, 뱀, 여우 등을 경계하려고 서로 순번을 정해 보초를 섭니다. 파순꾼 미어캣은 더 멀리 보려고 나무 꼭대기나 바위 위에 올라가 주위를 살핍니다. 다른 식구들이 먹을 것을 찾고 맛있는 식사를 즐길 동안 이 보초는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치의 소홀함 없이 공동체를 위하여 헌신합니다. 암컷이 새끼를 낳으면 모든 성숙한 암컷의 유선이 발달해 함께 그 새끼를 젖 먹여 키웁니다. 적이 공격해 오면 그들은 자기 몸을 문 삼아 굴 입구를 막아 동료들을 지켜 내다가 죽기도 합니다. 혹 싸우다가 죽어 가는 동료는 결코 버리지 않고 끝까지 옆에서 체온을 유지해 주며 보살핍니다.
우리가 나쁜 사람을 일컬어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늙은 부모를 버리고 병든 가족도 장애를 입은 가족도 버립니다. 예전에 어느 글에서 어느 집의 벽 틈에서 꼬리에 못이 박힌 채로 수년을 산 도마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집이 구조 변경을 위하여 벽을 허물 때에 벽 사이에서 못으로 꼬리가 벽에 박힌 채로 살아 있는 도마뱀이 나왔습니다. 그 집에서는 수년 전에 벽에 새로운 합판을 붙이는 공사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관찰결과 다른 도마뱀이 먹이를 가져다가 주었다고 합니다. 정말 짐승만도 못한 우리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잠언 17:17절에서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고 했습니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진정한 사랑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있는지를 돌아봅시다. 부모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본이 되고,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를 잘 따라서 이 시대에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경건한 하나님의 자녀의 가정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