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비전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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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4-02 23:16
*** 그리스도인의 비전 / 요한복음 15:1-7
요한복음 15:1-7, “1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지금 어떤 비전(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어떻게 노력하고 있습니까?
‘비전(vision), 꿈, 소망’ 좋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한 말. 사람의 눈동자를 빛나게 하고, 삶의 이유와 의욕을 갖게 하며, 활기차게 하는 약이 되는 말입니다. 잠언 29:18절에서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이 말씀을 흔히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거니와’로 번역합니다. KJV 에서는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라고 번역했는데 ‘꿈이 없는 백성은 멸망한다.’는 뜻입니다. NIV 에서는 “Where there is no Revelation, the people cast off restraint”라고 번역했는데, ‘묵시가 없는 백성은 속박을 내던져버린다.’는 말입니다. 즉 ‘꿈이 없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방자하게)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비전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떤 비전을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비전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비전에 대하여 오랫동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비전이 왜 고민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 자신의 꿈을 가지고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그 때는 어떻게 꿈을 이루느냐는 것이 관심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고민도 시작되었습니다. 나를 고민하게 했던 말씀은 제가 영적 파수꾼처럼 여기는 말씀인 마태복음 7:21-23절과 로마서 10:2-3절의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리고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나 자신의 비전 사이에서 고민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어떤 것이 나 자신의 비전인지, 아니면 내 비전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까? 오늘은 이 말씀을 하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말씀인데,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에 대하여 선포하신 비유적 말씀입니다. 즉 “나는 …이다.”라고 선언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참포도나무’로, 성부 하나님을 ‘농부’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을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라고 비유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명확하게 밝혀주십니다. 포도나무와 가지가 하나이듯이 예수님과 그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인 요한복음 17:21절을 봅시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그리고 본문 6절입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예수님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본문 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시면서 그리스도인이 비전을 이루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비전이 어디에 속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먼저 무엇을 비전이라고 하는지 정의해봅시다. 미국의 피아니스트이자 재즈 음악가였던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은 어떤 사람이 ‘리듬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불었을 때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리듬을 가지고 있다면 정의를 내릴 필요가 없고, 리듬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어떤 정의도 도움이 안 될 거요.” 이 엘링턴의 말을 인용해서 비전을 정의해 보면 “만일 당신에게 비전이 있다면 정의를 내릴 필요가 없고, 비전이 없다면 어떤 정의도 도움이 안 될 것입니다.” 그래도 비전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면 몇 가지 정의가 있습니다. 어떤 지도자는 “비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그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고 했고, 또 다른 지도자는 “비전은 현재와 미래를 잇는 다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목회자는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거룩한 꿈이다.”고 했습니다. 즉 도입부에서 말씀드린 잠언 29:18절의 말씀인 “꿈이 없는 백성은 멸망하거니와”에서처럼 ‘비전’ ‘묵시’ ‘꿈’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의미하는 거룩한 꿈’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는 어떤 종류이든지 추구하는 비전이 있습니까? 세상에는 어떤 종류의 소망이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 비전이 어디에 속했는지가 중요합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봅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과 별개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입니다. 당연히 그리스도인의 비전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는” 비전의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내가 가진 비전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6:33절을 봅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은 ‘비전을 이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시면서, 동시에 ‘비전이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즉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삶이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라면 나의 비전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것입니다.
이처럼 지금 내가 하나님을 구하는 삶이라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빌립보서 2:12-14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하십니다. \"소원을 두고“라는 말을 헬라어로 qevlw(thelo)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선택하다’ ‘결정하다’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번역할 때에는 'to will' 'to determine'이라고 했는데, ‘결심시키다’ ‘결정하다’등의 뜻입니다. 즉 ‘내가 주님 안에서 살고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뜻을 행하도록 결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비전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글은 공산주의를 위해 일하다가 구속되었던 남자 성도에게서 받은 편지 내용이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을 테러하라는 지령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북에서 영웅칭호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영웅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를 받은 지금은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변화 받은 지금 저는 명예와 부귀를 추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로마서 8:5-9절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을 따르던 옛사람은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 안에서 산다고 하면서 옛사람의 일들을 따라가면 그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살지만 때때로 세상적으로 기울게 되고 고민하게 되는 것은 성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고민들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비전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확인해봅시다. 마태복음 7:21-23절과 로마서 10:2-3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리고 로마서 말씀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두 말씀에서 지시하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비전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기 위함’입니다.
오늘의 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이 착각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많은 일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예수님께서 앞의 두 말씀으로 경고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면서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28-29절을 봅시다.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그리고 17:3절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을 알고 믿고 구하고 그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두 딸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혼기가 되어 딸들을 결혼시키면서 맏딸은 야채 농사를 짓는 사람과 둘째 딸은 옹기를 굽는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아버지는 딸들이 잘 사는지 알아보려고 딸의 집들을 차례로 방문했습니다. 먼저 맏딸 집을 방문하여 살펴본 후 원하는 것이 있으면 기도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딸은 ‘야채가 잘 성장하여 좋은 상품이 되도록 적절하게 비를 내려 주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둘째 딸을 방문해서도 역시 같은 질문을 했는데 딸은 ‘옹기그릇을 잘 만들 수 있도록 햇볕 좋은 날이 많은 것이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고민이 되어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럼 나는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하지?”
만일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기도하겠습니까?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했는데 누구를 더 소중하게 여겨 기도하겠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하는 것이 실제로 더 좋은 것인지도 모르면서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나를 통하여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나의 비전이 되게 해주시고, 그 비전을 위하여 기도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리고 이사야 48:17절입니다.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나님을 구하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비전들을 보이시고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이 이처럼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어 아름다운 삶의 열매로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요한복음 15:1-7, “1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지금 어떤 비전(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어떻게 노력하고 있습니까?
‘비전(vision), 꿈, 소망’ 좋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한 말. 사람의 눈동자를 빛나게 하고, 삶의 이유와 의욕을 갖게 하며, 활기차게 하는 약이 되는 말입니다. 잠언 29:18절에서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이 말씀을 흔히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거니와’로 번역합니다. KJV 에서는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라고 번역했는데 ‘꿈이 없는 백성은 멸망한다.’는 뜻입니다. NIV 에서는 “Where there is no Revelation, the people cast off restraint”라고 번역했는데, ‘묵시가 없는 백성은 속박을 내던져버린다.’는 말입니다. 즉 ‘꿈이 없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방자하게)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비전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떤 비전을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비전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비전에 대하여 오랫동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비전이 왜 고민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 자신의 꿈을 가지고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그 때는 어떻게 꿈을 이루느냐는 것이 관심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고민도 시작되었습니다. 나를 고민하게 했던 말씀은 제가 영적 파수꾼처럼 여기는 말씀인 마태복음 7:21-23절과 로마서 10:2-3절의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리고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나 자신의 비전 사이에서 고민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어떤 것이 나 자신의 비전인지, 아니면 내 비전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까? 오늘은 이 말씀을 하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말씀인데,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에 대하여 선포하신 비유적 말씀입니다. 즉 “나는 …이다.”라고 선언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참포도나무’로, 성부 하나님을 ‘농부’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을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라고 비유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명확하게 밝혀주십니다. 포도나무와 가지가 하나이듯이 예수님과 그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인 요한복음 17:21절을 봅시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그리고 본문 6절입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예수님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본문 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시면서 그리스도인이 비전을 이루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비전이 어디에 속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먼저 무엇을 비전이라고 하는지 정의해봅시다. 미국의 피아니스트이자 재즈 음악가였던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은 어떤 사람이 ‘리듬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불었을 때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리듬을 가지고 있다면 정의를 내릴 필요가 없고, 리듬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어떤 정의도 도움이 안 될 거요.” 이 엘링턴의 말을 인용해서 비전을 정의해 보면 “만일 당신에게 비전이 있다면 정의를 내릴 필요가 없고, 비전이 없다면 어떤 정의도 도움이 안 될 것입니다.” 그래도 비전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면 몇 가지 정의가 있습니다. 어떤 지도자는 “비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그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고 했고, 또 다른 지도자는 “비전은 현재와 미래를 잇는 다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목회자는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거룩한 꿈이다.”고 했습니다. 즉 도입부에서 말씀드린 잠언 29:18절의 말씀인 “꿈이 없는 백성은 멸망하거니와”에서처럼 ‘비전’ ‘묵시’ ‘꿈’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의미하는 거룩한 꿈’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는 어떤 종류이든지 추구하는 비전이 있습니까? 세상에는 어떤 종류의 소망이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 비전이 어디에 속했는지가 중요합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봅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과 별개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입니다. 당연히 그리스도인의 비전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는” 비전의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내가 가진 비전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6:33절을 봅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은 ‘비전을 이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시면서, 동시에 ‘비전이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즉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삶이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라면 나의 비전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것입니다.
이처럼 지금 내가 하나님을 구하는 삶이라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빌립보서 2:12-14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하십니다. \"소원을 두고“라는 말을 헬라어로 qevlw(thelo)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선택하다’ ‘결정하다’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번역할 때에는 'to will' 'to determine'이라고 했는데, ‘결심시키다’ ‘결정하다’등의 뜻입니다. 즉 ‘내가 주님 안에서 살고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뜻을 행하도록 결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비전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글은 공산주의를 위해 일하다가 구속되었던 남자 성도에게서 받은 편지 내용이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을 테러하라는 지령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북에서 영웅칭호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영웅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를 받은 지금은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변화 받은 지금 저는 명예와 부귀를 추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로마서 8:5-9절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을 따르던 옛사람은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 안에서 산다고 하면서 옛사람의 일들을 따라가면 그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살지만 때때로 세상적으로 기울게 되고 고민하게 되는 것은 성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고민들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비전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확인해봅시다. 마태복음 7:21-23절과 로마서 10:2-3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리고 로마서 말씀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두 말씀에서 지시하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비전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기 위함’입니다.
오늘의 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이 착각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많은 일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예수님께서 앞의 두 말씀으로 경고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면서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28-29절을 봅시다.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그리고 17:3절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을 알고 믿고 구하고 그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두 딸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혼기가 되어 딸들을 결혼시키면서 맏딸은 야채 농사를 짓는 사람과 둘째 딸은 옹기를 굽는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아버지는 딸들이 잘 사는지 알아보려고 딸의 집들을 차례로 방문했습니다. 먼저 맏딸 집을 방문하여 살펴본 후 원하는 것이 있으면 기도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딸은 ‘야채가 잘 성장하여 좋은 상품이 되도록 적절하게 비를 내려 주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둘째 딸을 방문해서도 역시 같은 질문을 했는데 딸은 ‘옹기그릇을 잘 만들 수 있도록 햇볕 좋은 날이 많은 것이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고민이 되어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럼 나는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하지?”
만일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기도하겠습니까?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했는데 누구를 더 소중하게 여겨 기도하겠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하는 것이 실제로 더 좋은 것인지도 모르면서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나를 통하여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나의 비전이 되게 해주시고, 그 비전을 위하여 기도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리고 이사야 48:17절입니다.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나님을 구하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비전들을 보이시고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이 이처럼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어 아름다운 삶의 열매로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