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소중한 사람
*** 완전히 소중한 사람 / 누가복음 12:22-34
누가복음 12:22-34,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26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 들어가는 말
말씀 시작하기 전에 인터넷 ‘따뜻한 하루’라는 사이트에서 뽑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지하철에 가방을 든 한 아저씨가 승차하더니 승객들을 향해 우렁차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 나선 이유는 좋은 물건 하나 소개해 드리기 위해섭니다. 잘 보세요. 플라스틱 머리에 솔이 달려 있습니다. 이게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칫솔입니다. 이것을 무엇을 하려고 가지고 나왔을까요? 맞습니다. 팔려고 나왔습니다. 얼마일까요?…… 천원입니다. 뒷면을 돌려 보겠습니다. 영어가 쓰여 있습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이게 무슨 뜻일까요? 수출을 했다는 것입니다. 수출이 잘 됐을까요, 안됐을까요? 망했습니다! 자 그럼, 여러분께 하나씩 돌려보겠습니다.”
아저씨는 칫솔을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황당해진 사람들은 웃지도 못했습니다. 칫솔을 다 나눠준 아저씨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자, 여러분, 여기서 제가 몇 개나 팔 수 있을까요? 여러분도 궁금하시죠? 저도 궁금합니다.”
잠시 후 결과가 나왔습니다.
“자 여러분, 칫솔 네 개 팔았습니다. 얼마 벌었을까요? 칫솔 4개 팔아서 4천원 벌었습니다. 제가 실망했을까요? 안했을까요? 예, 실! 망! 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포기할까요, 안할까요? 절대 안 합니다. 바로 다음 칸이 있기 때문이죠!”
아저씨는 가방을 들고 유유히 다음 칸으로 건너갔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웃음으로 거의 뒤집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똑같은 환경 똑같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전혀 다르게 살 수 있음을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예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차에 오른 어떤 판매원은 승객들이 많이 사주지 않는다고 욕을 하고 짜증을 부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지하철 판매원 역시 짜증이 나고 많이 팔리지 않아서 염려도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재치도 있고, 다음 칸을 기대하는 소망이 돋보입니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라는 엄청난 보배를 가졌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라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의 일들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염려하고 짜증을 부린다면 어떻겠습니까? 고린도후서 4:7절에서 예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본문 24절에서는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라고 하시며, 28절에서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는 완전히 소중한 사람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 소중한 사람을 향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역시 ‘따뜻한 하루’에 올라온 감동 동영상 한 편을 소개합니다.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와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오빠가 도로변의 턱이진 아주 좁은 길을 가다가 폭이 60-70cm가량 되는 하수구를 만났습니다. 오빠는 겨우 건넜지만 어린 동생은 도저히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오빠는 돌아서서 다리를 최대한 벌려 겨우 건너편에 다리를 걸치고는 하수구 공간 위에 엎드렸습니다. 어린 여동생은 오빠 위를 엉금엉금 기어서 건넜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m54sgzhVhlM&feature=player_embedded)
어린 아이가 자기보다 더 어린 여동생을 위하여 자신도 겁이 날 그 하수구 위에 엎드려 동생을 건너도록 하는 애틋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이에 비교할 수 없도록 너무도 깊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사야 49:15-16절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향하신 사랑의 마음을 표현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시고 부르신 자녀들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그런가하면 요한복음 10:27-28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결코 버리거나 외면하거나 실족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가 자녀들에게 무엇이든지 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자녀들에게 아낌없이 주기를 원하십니다. 로마서 8:32절에서 말씀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독생자 예수님을 값없이 대속의 제물로 내주신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아끼시겠습니까?
이처럼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십니다. 본문 29-31절에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미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것들뿐입니다. 비록 미래에 대한 소망과 비전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루기를 원하지만 실상은 그것이 심각한 해를 끼치게 될 것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들을 아시고 내가 원하지만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소중한 자녀들을 위하여 이미 모든 필요를 아시고 준비해 두셨으며 구할 때마다 기꺼이 허락해주시고 이루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주님의 자녀라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따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대 주제는 ‘세상에서의 삶을 염려하지 말고 너희를 소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까마귀와 백합화를 비유로 하여 주님의 자녀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표현하셨습니다. 까마귀는 농사도 하지 않고 음식물을 저장할 창고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기르시고, 백합화는 아름다운 천을 만들지도 않지만 인간이 만든 가장 화려함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까마귀와 백합화를 소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그들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는 육신의 삶을 염려하는 우리들에게 ‘왜 세상의 삶을 염려하고 근심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여러분은 육신이 살아가는 일 때문에 염려하고 근심하지 않습니까? 세상일에 매여서 하나님보다 세상에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마음이 세상을 향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질 수가 없습니다. 요한일서 2:15절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들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은 자꾸만 눈앞의 이익을 따라갑니다. ‘염려하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사야 할 것이 눈에 어른거리고, 하고 싶은 일들이 마음을 빼앗습니다. 그래서 내일 일이 걱정되고 인간적인 방법들을 동원하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은 사도 바울에게도 있었습니다. 로마서 7:15절 이하에서 이렇게 탄식합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물며 우리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따라가려면 먼저 나 자신의 마음을 주님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를 비우지 않고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붉은색 안경을 끼면 모든 사물이 다른 색으로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내 마음에 내 생각 내 뜻으로 가득하면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 보이게 되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도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빠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막혀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내 마음의 욕망들을 비워야 하고, 내 마음을 비우면 염려고 근심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이 비워진 마음에 채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본문 31-34절을 봅시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주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 육신의 필요를 구하지 말라.’고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구하거나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의 것들을 팔아서라도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쌓으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잠시 있을 것이며 빼앗고 녹슬게 하는 것들이 많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고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재물과 노력과 정성과 목숨을 바치는 것에 마음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회의 집사님이 이민을 떠나면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 얼마를 담임목사님께 드리고 갔습니다. 그 목사님은 주식이라고는 전혀 알지도 못했는데, 막상 주식을 받고 보니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주식현황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예 주식거래소에까지 가서 팔고 사기를 했습니다. 자연히 자신의 기도생활과 교회의 일들이 소홀해지기 시작했고, 성도들의 불만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지난 몇 개월을 어떻게 지냈는지 아득했습니다. 이러다가는 죽겠다고 생각한 목사님은 그날로 그 모든 주식을 팔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하여 투자하면 당연히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받지 못합니다. 마치 ‘어리석은 부자 비유’에 나오는 부자와 ‘부자 관리 비유’에 나오는 젊은 관리처럼 세상의 부귀영화를 결코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즉 세상의 부귀영화도 누리고 하나님의 나라도 가질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16:13절을 봅시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상의 모든 염려와 근심거리를 다 주님께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넉넉하게 채워주십니다. 빌립보서 4:19절의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처럼 나를 소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순종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할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모든 필요를 채움 받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