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빛의 자녀로 사십시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8,505회 작성일 2014-09-02 13:14

*** 빛의 자녀로 사십시오. / 에베소서 5:8-17

에베소서 5:8-14,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 들어가는 말

모든 사물에는 저마다 자신의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무엇엔가 속해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이름을 준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이름을 정해 줄 존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부를 수 있도록 칭호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려 하셨습니다. 그 때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말하면 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즉 나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물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출 3:14)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라는 칭호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기념 이름입니다. 출애굽기 3:15절입니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그리고 호세아 12:5절에서는 “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없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고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디엔가 소속이 되어 있다는 것은 그가 속한 공동체와 뜻을 함께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며, 예수님의 뜻에 함께 동참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1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시며, 마태복음 5:14절에서는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빛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당연히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빛의 자녀로 사는 것이겠습니까?

※ 무엇을 빛이라고 합니까?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곳에 사탕바구니를 놓아두었습니다. 한 아이가 다가오더니 사탕을 보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한 움큼 사탕을 집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사탕바구니 옆에 큰 거울을 두었습니다. 다른 아이가 다가오서는 사탕을 집다가 거울을 보더니 쥐었던 사탕을 제자리에 놓고 가버립니다.
이 실험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면 도덕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실험입니다. 이것을 ‘거울 효과’라고 합니다. 즉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의 도덕성은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라 타의적인 간섭에 의한 의도적 도덕성입니다. 세상에서 나타나는 거의 대부분의 도덕이나 윤리성은 이런 ‘의도적 도덕성’입니다. 이런 것을 빛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성은 절대 선(善)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들어진 빛이 아닙니다. 영원 전부터 스스로 빛이셨습니다. 그 빛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본문 8절에서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고 하십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빛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빛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생명’입니다. 육신적인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인 생명입니다. 본문 14절에서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죽은 자들”이란 ‘영적으로 생명이 없는 자들’을 뜻합니다. 이 말씀은 도덕적인 감각도 없이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인 생명도 없이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영생을 가진 자로서의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영생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4:16-17절을 봅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이렇게 성령님께서 임재 하여 계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성전(聖殿)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16절에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빛은 하나님의 임재이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적인 생명입니다.

※ 어떻게 사는 것이 빛의 삶입니까?

본문 9절을 봅시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열매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빛의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의 삶’입니다. 즉 주님을 따르는 빛의 사람들이 나타내야 할 삶은 ‘모든 착함과 진실함과 의로움’입니다. “착함”을 뜻하는 헬라어 '아가토수네'라는 말은 선행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관대한 정신을 의미합니다. 즉 넓은 아량과 폭넓은 이해심, 모든 이를 품에 안을 수 있는 포용력과 아낌없이 주는 사랑, 이러한 착함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빛으로서의 착함은 부드러움과 온유함으로 모든 사람들을 위로하며 희망을 주는 사랑의 실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의로움”을 뜻하는 '디카이오수네'라는 말은 '하나님과 인류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빛으로서의 의로움은 자신이 행해야 할 의무를 온전하게 수행하는 것입니다. “진실함”을 뜻하는 '알레데이아'는 ‘실제로 행하는 도덕적인 진실’을 의미합니다. 곧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버림으로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나타내야 할 진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거짓 없는 참된 행위’입니다.

넓은 아량과 폭넓은 이해심, 모든 이를 품에 안을 수 있는 포용력과 아낌없이 주는 사랑, 자신이 행해야 할 의무를 온전하게 수행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거짓 없는 참된 행위 등 이런 삶이 빛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5:22-23절에서 말씀한 성령의 열매를 합해 놓은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을 실천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을 찾아 행하라고 하십니다. 이런 삶과 반대되는 것을 어둠의 일이라고 합니다. 즉 영적인 생명이 없는 사람들이 행하는 일들입니다. 그들이 행하는 어둠의 일은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에 함께 동참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들의 어둠의 일을 책망해야 합니다. 즉 어둠의 일을 행하는 사람들의 죄를 깨닫게 해야 합니다. 즉 다른 사람들로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어둠에 빛을 비추는 것은 빛의 사람들이 해야 할 합당한 일입니다. 이런 일을 통하여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한 사람은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상급을 받게 됩니다(단 12:3).

※ 빛의 사람은 기회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본문 15-17절을 봅시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알몸으로 왔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물질을 주시면서 사용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주어진 시간과 물질, 재능들을 사용하여 자신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혹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실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결산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 달란트 비유, 므나 비유 등. 예수님께서 결산을 준비하라고 가르치신 말씀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받은 시간과 물질, 재능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2:45-46절입니다.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라.”

오래 전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스크바의 한 출판사에 남루한 옷에 헙수룩한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의 원고를 책으로 내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을 본 출판사 주인이 말했습니다.
“그런 원고는 얼마든지 굴러다니고 있고, 비록 그 사람이 출판비용을 다 부담한다고 해도 맡을 수 없습니다.” 그 헙수룩한 차림의 사람은 두말 하지 않고 원고 뭉치를 품에 넣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대중이 나의 글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썼는데요.”  이상한 느낌을 받은 주인이 물었습니다. “당신 이름이 뭡니까?” “톨스토이입니다.”
기절할 듯이 놀란 주인이 의자에서 뛰다시피 일어나서 급히 사과를 하며 원고를 부탁했지만 톨스토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외모나 혹은 자신의 평가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며, 작은 일 들을 무시합니다.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만나는 사람 혹은 주어지는 일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지를 살피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판단해버립니다. 그래서 헙수룩한 사람을 무시하고, 작은 일들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5:40절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그리고 45절에서는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주님이 주시는 기회는 우리에게 좋은 모습으로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무시하고 관심조차 두지 않을 모습으로 다가올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롭게 살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수많은 일들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매일 주어지는 일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찾고, 자신이 행하여 할 일을 깨달아 실행하는 일이야 말로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에서 주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하여 성경말씀을 항상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시편 119:115절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빛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빛의 사람으로서의 삶을 나타내야 합니다.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삶의 모습으로 빛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작은 것이라고 또는 없어 보인다고 무시하지 말고 주님이 주신 기회를 지혜롭게 살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런 삶으로 주님께 빛의 자녀로 인정받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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