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5,565회 작성일 2014-08-20 23:12

***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 / 누가복음 17:11-19, 시편 37:7-9

누가복음 17:11-19,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시편 37:7-9,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 들어가는 말

미국 뉴욕에 이민을 간 지 20년이 넘은 72세의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이 할머니는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그동안 고생을 참 많이도 했습니다. 험난했던 20여 년의 이민생활이 남긴 건, 당뇨와 고혈압, 관절염으로 거동조차 불편해진 몸입니다. 자식들도 다 결혼시켜 떠나보내고 어느덧 혼자서 쓸쓸한 노년을 보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사람을 잘못 믿어 전 재산을 잃고 말았습니다. 상심한 할머니는 한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경사가 났습니다. 같은 연배의 한 멋진 신사 할아버지가 백마 탄 왕자님처럼 할머니에게 다가와 할머니에게 무조건 힘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집에서 할머니를 지내게 하며, 병원에서 진찰도 받게 하고, 휠체어 신세가 된 할머니를 위해 일거수일투족 헌신했습니다. 정말 너무나 뜻밖의 행복이며 삶의 변화였습니다. 거짓말 같은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주위에서는 그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할머니를 위해 왜 그렇게 헌신을 하세요?”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어. 그냥 이 사람에게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이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것 같습니까? 이 할머니를 오랫동안 지켜본 친척이 할머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늘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또 항상 말을 가려 할 줄 알고, 언제나 덕스러운 말을 찬찬히 하며, 감사가 입에서 늘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속담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고 했습니다. 즉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는 뜻입니다. 이 할머니는 뜻하지 않게 절망적인 환경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불평이나 원망 없이 오히려 그것조차 감사하며 조용히 조국으로 돌아가려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할아버지의 마음이 감동되어 할머니의 여생을 돕고자 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9-10절을 봅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감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는 선한 일이며 최고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시편 50:23절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대로 본문에 등장하는 나병환자도 예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여 돌아와서 엎드려 감사할 때 구원이 선포되는 놀라운 삶의 변화를 받았습니다.

반면에 불평이나 원망은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죄악입니다. 그래서 시편 본문에서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삶에서 원인이 어떻게 되었든지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에 대항하는 무서운 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감사는 구원을 이루는 삶의 능력입니다.

먼저 누가복음 본문 15-19절을 읽어봅시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리셨습니다. 이 마을은 갈릴리 지역에서 사마리아로 내려가는 접경마을이었습니다. 마침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사람들과 가까이 하지 못하는 나병환자들은 멀리서서 예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다른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만 하셨습니다. 나병환자들도 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제사장이 있는 마을로 향했습니다. 이들은 가던 도중에 자신의 몸이 깨끗해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홉 명은 뒤 돌아볼 틈도 없이 제사장에게 판정을 받기 위해 달렸습니다. 그러나 이방인 한 사람은 가던 길을 돌아서서 예수님께로 향했습니다.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감사드렸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는 모두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믿음과 순종을 나타냈습니다. 그 결과 모두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열 명 중에서 이방인 한 사람만 예수님께 돌아와서 자신이 받은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지금 시대의 교회처럼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많지만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음을 말씀합니다.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아 누린 유대인들이 감사하지 않았다는 것은 지금의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많은 은혜를 누린 성도들이 더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고 싶다.’고 예수님께 찾아 왔던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아시지요? 그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영생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를 비교했고, 결국 세상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여 영생을 얻을 기회를 잃었습니다. 이 시대의 많은 교인들도 똑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보다 눈앞에 있는 세상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호합니다. 마태복음 6:24절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재물이 세상의 것을 대표하는 것임은 아시지요?

오늘의 많은 교인들도 아홉 명의 나병환자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마치 당연한 듯이 여기며 감사할 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향하여 탄식하십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여러분은 매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까? 좋을 때만 아니라, 성공하고 만사형통할 때만 아니라, 건강할 때만 아니라, 고통스럽고, 실패하고, 병들고, 앞이 막막할 때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합니까? 감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일 뿐만 아니라 구원을 이루는 능력입니다. 시편 50:23절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셨고, 예수님께서 나변환자에게도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삶이 힘들고 어렵습니까? 힘들지만 감사해 보십시오. 일이 꼬이고 삶이 좌절되십니까? 좌절되는 마음으로도 감사해 보십시오. 건강이 좋지 않아 염려가 됩니까? 고통 중에서라도 감사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감사하는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빌립보서 4:6-7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십니다.

※ 불평은 삶을 망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시편 본문말씀을 봅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옛말에 ‘잘 되면 자기 탓, 잘 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이 잘되면 자기 믿음이 좋고 자기가 잘 해서 그렇다고 자랑합니다. 하지만 일이 꼬이고 실패하면 마치 하나님 탓, 남의 탓인 양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불평을 비롯하여 원망, 염려, 불만, 분노 등의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사람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도 병들게 합니다. 잠언 15:13절에서는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하시며, 17:22절에서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벼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하십니다.

러시아에 주재하는 어느 외교관이 소음 때문에 고통을 겪다가 ‘인격 의학자’로 이름난 ‘폴 투르니에’ 박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는 요즈음 잠을 못 잡니다. 모스크바는 대단한 소음 도시여서 러시아 당국에 다른 장소를 제공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전혀 받아주지를 않습니다. 소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해서 걱정입니다. 물론 약을 지어 먹지만 효과가 없고 이리저리 의사만 바꾸게 됩니다.”
폴 투르니에 박사는 이렇게 답장했습니다. “대사님, 당신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소음이 대단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소음으로 말미암아 화를 내기 때문입니다.…”
일 년쯤 지난 후에 폴 박사는 그 서방 외교관으로부터 정중한 감사 편지를 받았습니다.
“박사님의 편지를 받고서 나는 처음엔 분개했습니다. 바보 취급을 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점차로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생각하는 중 내가 소음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나를 다른 곳으로 옮겨주지 않는 러시아 정부에 대해서도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소음이라면 차라리 내 편에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떤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덕분에 이제는 소음 속에서도 하룻밤을 느긋하게 잠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분노와 불평으로 인하여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요즈음 문제가 되는 ‘층간 소음문제’ ‘층간 냄새문제’ ‘주차문제’ ‘세월호, 군부대 사건과 각종 폭력과 관료들의 부정부패 사건 등의 사회적인 병폐’ 등등. 이런 일들로 인하여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결국에는 분노로 표출되고, 불평과 원망과 염려와 두려움 등의 부정적인 요소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는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불평과 분노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묻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 적으로도 문제가 되지만 영적으로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시편 본문에서 ‘세상적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이런 것들은 악을 만들 뿐이며, 악을 행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니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불평이나 원망, 악한 분노는 어떤 이유에서라도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역사관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신다.’는 하나님의 주권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이든지, 심지어는 악한 영들에 의해서 자행되는 것까지라도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일들에 대하여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결과는 패망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전도서의 마지막 결론적인 당부의 말씀인 12:13-14절을 봅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예수님께서도 요한계시록의 결론적인 말씀으로 22:12절에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에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순종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따르는 순종입니다.

감사하는 일이 수고롭거나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감사하는 일이 어렵습니까? 뿐만 아니라 불평 잘 한다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불평하는 일에 열심이겠습니까? 감사와 불평은 우리 삶에 가장 가까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둘은 전혀 다른 삶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감사는 구원을, 불평은 패망을 불러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삶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구원을 우리의 삶에서 늘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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