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삶의 길
*** 풍성한 삶의 길 / 빌립보서 4:15-19, 마태복음 6:19-21
빌립보서 4:15-19,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마태복음 6:19-21,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 들어가는 말
‘세상의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합니다. 똑 같은 일을 두고 어떤 사람은 행복해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아무런 감동이 없고, 어떤 사람은 만족해 하지만 어떤 사람은 불평합니다. ‘풍성하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풍성하다는 기준도 저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는 ‘넉넉하고 많다.’는 의미입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전도서 5:10절에서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고 했고, 잠언 27:20절에서는 “스올(지옥)과 아바돈(죽음의 곳)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스스로 풍성하다고 여기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려는 ‘풍성한 삶의 길’이란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풍성함’을 뜻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빌립보서 본문말씀은 빌립보 교회가 사도 바울을 도왔던 일들에 대한 사도 바울의 편지입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빌립보 교회에 쓴 편지이며, 빌립보 교인들이 보여준 친절함에 대한 감사와 위로와 격려의 내용입니다. 특히 본문말씀은 사도 바울이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에 아무도 돕지 않았지만 빌립보 교회는 자신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도왔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그저 형식적으로 한 번 도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힘들 때마다 필요한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본문 18절에서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라고 했는데, 이는 가진 것이 많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채우심에 대한 감사’를 뜻합니다. 바울처럼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비록 가진 것이 별로 없을지라도 풍족하게 여기며 만족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본문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의 말씀으로, 진정으로 풍성한 삶을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쌓아두면 잃어버리거나 빼앗기게 될 것이고 더욱이 하나님의 나라를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24절에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본문의 전체 주제는 33절에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즉 세상의 소유에 마음을 빼앗기면 하나님의 나라가 멀어질 뿐만 아니라 진정한 풍성함을 누릴 수 없게 되지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늘에 쌓아두면 하나님이 채우시는 풍성함을 누리게 됩니다. 그 이유는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 풍성한 삶의 길은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어느 대기업의 CEO가 불치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남은 생명이 시간이 얼마 없다.’는 의사의 진단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를 찾아다녔습니다. 결국 좋은 의사를 만나 극적으로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달 째 회복 병실에 누워 있던 어느 날, CEO가 급히 그의 비서를 불렀습니다. “여기 사례비가 있으니 어서 의사에게 가져다 드리게.” 갑작스런 상황에 비서가 당황하여 말했습니다. “예? 아직 치료비 결제 날짜는 많이 남았는데요!…” 그러자 CEO는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내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 목숨을 구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내 전 재산도 주겠다고 생각했었네. 그런데 목숨을 건진 지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재산 절반 정도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고, 이제는 이 사례비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나. 나도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인간인 모양이야. 더 치졸해지기 전에 어서 지급을 하지 않으면 사례비도 주지 않는 옹졸한 사람이 되고 말 것 같다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했듯이, 사람의 마음은 정말 간사합니다. 죽음이 눈앞에 있다든지, 위기와 고통 속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줄 것처럼 하다가도, 나아지고 회복되면 아깝게 여겨지고 멀리하게 됩니다. 인간의 이런 마음을 하나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지요. 혹시 여러분은 힘들고 어려울 때에 하나님께 어떤 약속을 했다가 환경이 나아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이런 삶의 모습은 세상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십니다. 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보물을 하늘에 쌓을 수 있습니까? 빌립보서 본문 17-19절을 봅시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한 빌립보 성도들의 친절을 기쁘게 받으셨고 또 갚아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17절의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는 말씀은 ‘빌립보 성도들의 헌금이 그들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삶의 열매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보물을 하늘에 쌓는 길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드리는 헌금이라고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9:5-7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라 아니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여 드리는 준비된 헌물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헌물로 바친 것들은 내 소유에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쌓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쌓여지는 보물은 헌물만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섬기고 나누고 베푸는 삶도 역시 하나님의 나라에 쌓여지는 보물입니다. 신명기 14:29절에서는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하셨고, 15:11절에서는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고하시며, 잠언 19:17절에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2:10절에서는 바울은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수고로움으로 얻은 물질을 사회적인 약자들을 위하여 쓸 때에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 쌓이는 보물이 됩니다.
이렇게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헌신과 노력, 땀 흘리는 수고로운 봉사들도 역시 하나님 나라에 쌓이는 보물입니다. 사도행전 10:4절입니다.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고넬료의 선한 행실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을 위한 기도까지도 하나님께 기억하신 바가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2-3절에서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고하시며, 19절에서는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자녀로서 행하는 모든 수고를 알고 계십니다. 이것이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쌓이는 보물들입니다.
※ 풍성한 삶의 길에는 세상적인 보상도 따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헌금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 이었습니다. 19절에는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에 대하여는 말씀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이는 사도 바울의 축복이자 하나님께로 향하는 의뢰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풍성함으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실 것이다.’ 이는 대단한 축복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힘으로 보상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에 맡기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채우심’을 구한 것입니다. 이 채움은 이 세상에서의 육신의 삶에 대한 모든 필요를 말합니다. 신명기 15:10절입니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행하는 모든 섬김과 나눔의 일들은 더 큰 보상으로 채워주십니다.
YMCA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작은 일로 시작된 구제가 큰 역사를 이룬 적이 있었습니다. 1940년경 필리핀 마닐라에 사는 10살 된 소년은 자전거를 사는 것이 최고의 소원이었습니다. 더디어 자전거를 사기 위해 저축을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아빠와 엄마와 얘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식량이 없어 수많은 어린이들이 죽어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소년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소년은 그동안 자전거를 사기 위해 모은 돼지 저금통을 깨뜨려 빵집으로 갔습니다. 그 돈 만큼 빵을 사서 작은 손수레에 가득 싣고 가까운 YMCA로 갔습니다. 소년은 YMCA 직원에게 ‘이 빵을 굶주린 어린이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는 가버렸습니다.
소년이 돌아가자 YMCA 간사는 크리스천 회원들을 긴급 소집했습니다. 간사는 회원들에게 빵을 가져온 소년의 관심과 섬김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회의는 소년의 빵을 경매에 붙여서 그 모금 된 돈으로 아프리카 지역의 아동을 돕자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소년의 빵은 경매에 붙여졌고 많은 돈이 모금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뉴욕에 사는 한 부인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 부인은 약간의 돈과 함께 편지를 소년에게 보내 달라고 YMCA에 보내왔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자전거 없이 지내는 소년을 보고만 있을 수 없으니 이 돈으로 자전거를 사기 바란다.”
이것은 아주 작은 한 예일 뿐입니다. 저 자신의 경우에도 수없이 많습니다. 주님의 일에는 결코 공짜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42절에서 말씀하신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는 말씀대로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그래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 청년의 간증입니다. 이 청년은 이 땅에 작은 천국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두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불쌍한 사람들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외면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자신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도, 줄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청년은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당신이 위로받고 쉴 수 있는 작은 천국을 만들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전 지금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걸요.”
그러나 그럴 때마다 마음은 고통으로 일그러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예전에 알고 지내던 한 자매를 만났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청년은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민하지 말고, 다음으로 미루지도 말고, 지금 형제님이 가지고 있는 것을 드리세요.” 다음날 청년은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바로 앞에 지팡이를 더듬으며 길을 찾아 헤매는 맹인이 있었습니다. 외면하려던 순간 어제 그 자매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청년은 이 맹인이 지금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 저 사람의 눈이 되어주자!' 청년은 그 맹인의 손을 잡고 그의 집까지 함께 가주었습니다. 이 후 청년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것으로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풍성한 삶의 길은 내게 있는 것과 나 자신까지 주님을 위해 드리며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주님을 위해 살 때에 주님께서도 모든 것을 내게 채워주십니다. 잠언 11:24절에서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고 하십니다. 사랑이 식어가는 이 시대에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여 영과 육신의 모든 삶과 이 땅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