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따라가기9-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 사도행전 1:6-11
사도행전 1:6-11,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 들어가는 말
1800년대의 미국 장로교 목사이며, 금주협회를 창설하고 리더로 있었던 '라이먼 비처'(Lyman Beecher)목사는 미국 교회의 설교자로서는 왕과도 같은 분이었습니다. 그가 노년에 이르렀을 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비처 목사는
“그것은 신학도, 보수주의도 아닙니다.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비처 목사는 위대한 생애를 보낸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일평생에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죄와 허물로 부패한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했던 일이었다고 했습니다.
복음(福音)이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영혼에게 생명 얻는 길에 대한 소식’입니다.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이 ‘전도(傳道)’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하는 길이 이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은 죽은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길이시며, 하나님의 나라로 향하는 길이 되십니다. 이 길을 전하는 일이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사명이었습니다. 본문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은 단순히 ‘전도’가 아니라 ‘증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전도는 주님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증인은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이 아닙니다. 증인이 되는 이 사명은 오늘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최후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주님 따라가기 아홉 번째이자 마지막 말씀의 주제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수없이 많이 들었을 예수님의 승천 직전에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남의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시대의 짐승들에게 죄를 전가시켜 제물을 삼았던 희생예배에 마침표를 찍으셨습니다. 짐승으로 제물을 삼아 예배하던 시절에는 해마다 새로운 제물로 정한 기일에 속죄를 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없으신 성자 예수님을 인간들을 위한 속죄 제물로 내어 주셨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속죄 제물이 되심으로 모든 희생 제사의 마지막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죽음에서 새 생명으로, 잃어버렸던 낙원을 회복하는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이 생명의 길을 전하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마태복음 28:18-20절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일 후에 본문의 말씀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의 자신의 사역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 일을 전하는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보는 자리에서 오셨던 본래의 자리로 올라가셨습니다. 이는 제자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시는 체험으로 배려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확실성을 보장하는 확실한 약속을 남기셨습니다. 즉 천사들을 통하여 전하신 약속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이것이 우리가 증인이 되어야 할 내용입니다. 즉 생명의 길을 여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신 부활과 심판하실 주님으로 다시 오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 어떤 증인이 되어야 합니까?
증인이 되려면 먼저 증인의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법정에서도 증인이 되려면 증인의 자격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진실한 증언을 하겠다는 선서를 해야만 합니다. 증인은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도 갖추어야 할 자격이 있습니다. 주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세상적인 경력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즉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경험하지도 못한 것에 증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 된 기쁨을 누리면서 자신이 누리는 기쁨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7-8절입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받은 것을 전하고 주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목회자가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여행을 하던 중에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잠을 잤던 방에는 벽과 천장에 예수의 초상이 붙여져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잠이 깬 딸이 앞쪽 벽에 있는 거울에 비친 예수님의 초상을 보고는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거울 속에 예수님의 모습이 보여요!” 딸은 예수님의 모습을 좀 더 잘 보려고 침대 위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자신의 모습만 보였습니다. 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러자 예수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이러기를 몇 번 반복하던 딸이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내가 내 모습을 볼 수 없을 때는 예수님을 볼 수 있구요. 내 모습이 보이면 예수님은 보이지 않아요.”
꼬마 아이는 자신이 누워있을 때에는 벽과 천장에 있는 예수님의 초상을 볼 수 있었지만, 자신이 일어서자 자신 때문에 예수님의 초상이 가려져서 볼 수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주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잘 보여줍니다. 증인은 자신을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증인은 예수님을 증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매이면 예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 집중하게 되면 자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삶은 염려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288장 3절의 가사입니다. “주 안에 기쁨 누림으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이루신 구원과 부활하심으로 이루신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과 재림을 통하여 완성하실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증인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들에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증인의 중요한 요건 중에서 또 다른 중요한 것은 그 일이나 사건의 생생한 경험자여야 하는 것입니다. 증인은 정황을 추측해서 증언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경험과 증거를 통해서만 증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구원받았는지 확신도 없으면서 구원의 길을 전할 수 없습니다. 물론 말로 전할 수는 있겠지만 신빙성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자신의 기도를 이루어주시는지 확신도 없고, 깨달음도 경험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기도의 능력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먼저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고 경험하는 삶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4:19-20절에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기도나 증인의 사명뿐만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일은 성령께서 주도하시며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6:13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이렇게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들은 스스로는 주님의 뜻을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해도 생활 속에서 순종하고 실천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아야 주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전도자 '바나바 쇼우'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1815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케이프타운은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던 터라 네델란든 정부의 반대로 자신의 계획을 실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매우 낙심하여 다른 선교지를 찾아 아프리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여행 27일째 되는 날, 그가 천막을 치고 머물던 가까운 곳에 밀림의 소수 부족인 호텐족이 머물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선교사가 그들과 대화하던 중에 호텐족이 부족장의 인솔 아래 '위대한 말씀'을 가르쳐 줄 선교사를 찾아서 케이프타운으로 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들은 성령님의 놀라우신 인도하심으로 그 밀림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10-12절을 봅시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각 사람에게 정하신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아시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만이 우리를 주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합니다. 바나바 쇼우 선교사의 일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서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의 일들이 매일 수없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잘 깨닫고 순종하여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일이 실현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러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고 주님께 굴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증인은 자신의 삶에서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들에 대하여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생명의 길을 전하는 전도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확신이나 아무런 능력 없이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더라도 전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증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증인의 사명은 자신이 보거나 경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증인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증언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구원의 길과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삶에서 나타내야 합니다. 즉 삶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6-8절을 봅시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예수님께 장래의 일들을 물었을 때에 주님은 ‘알 것 없다.’고 묵살하시고, 지금 해야 할 일 즉 ‘증인의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이 없는 내일은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성실하게 순종한 오늘의 삶이 장래의 삶을 결정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0:23-24절에서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생명을 다하여 증인의 삶을 산 것입니다. 우리도 이 증인의 길을 가야합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험하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좁은 문, 좁은 길이라고 하셨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룬 사람에게 주어질 상급은 이 세상 전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따르는 신실한 제자의 삶으로 이 상급을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