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주님 따라가기8-본이 되어야 합니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5,673회 작성일 2014-07-23 22:21

*** 주님 따라가기8-본이 되어야 합니다. / 데살로니가전서 1:2-10 ***

 데살로니가전서 1:2-10, “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인도의 위대한 정치인이었던 ‘마하트마 간디’의 일화입니다. 그는 비록 부모의 영향으로 힌두교도가 되었지만 그의 사상은 박애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그는 “하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아들을 데리고 간디를 찾아왔습니다. 여인은 간디 앞에 무릎을 꿇고 아들을 도와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선생님, 제 아들을 도와주세요. 아들이 설탕을 너무 좋아해요. 건강에 나쁘다고 아무리 타일러도 안 들어요. 그런데 아들이 간디 선생님을 존경해서 설탕을 끊으라고 하면 끊겠다는군요.” 간디는 소년의 눈을 바라보며 그의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도와드릴 테니 보름 뒤에 다시 아드님을 데려오십시오.” 그러자 그 여인은 “저희는 선생님을 뵈러 아주 먼 길을 왔습니다. 그냥 돌려보내지 마세요. 제 아들에게 설탕을 먹지 말라고 한마디만 해 주세요.”라고 간청했습니다. 간디는 다시 한 번 소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보름 뒤에 다시 아드님을 데려오십시오.” 어쩔 수 없이 여인은 아들을 데리고 돌아갔습니다. 보름 뒤, 그 여인은 다시 아들을 데리고 간디를 찾아왔습니다. 간디는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설탕을 많이 먹으면 건강을 해치니 먹지 않는 것이 좋겠구나.”
그 여인은 간디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보름 전에 제가 아들을 데리고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왜 보름 후에 다시 찾아오라고 하셨습니까?” 간디가 대답했습니다.
“실은 저도 설탕을 좋아합니다. 보름 전 그 날도 저는 설탕을 먹고 있었거든요. 아이에게 설탕을 먹지 말라고 하기 전에 제가 먼저 설탕을 끊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예화도 많을 텐데 굳이 이교도인 간디의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교도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도 지도자나 앞선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본이 되는 삶’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사회도 그러합니다. 정부의 각료를 세우는 일이 너무도 어려워 보입니다. ‘도대체 우리나라에는 왜 이렇게 정직하고 신실한 사람들이 없을까?’라는 생각까지도 하게 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정직하고 신실한 삶으로 본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5)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고, 빌립보서 3:17절에서는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고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본을 통하여 전수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주님 따라가기 여덟 번째 주제는 ‘본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정했습니다.

‘본이 되라.’는 주제는 자주 언급된 낯익은 주제입니다. 자주 언급되는 주제일수록 중요한 것이며, 잘 실천되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정말 중요한 내용인데 잘 실천되지 않으니 더 많이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이 되는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한 단계 더 높은 실천적 삶에 대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보다 더 나아가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본을 보이는 삶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 같은 그런 삶이며,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16절에서 말씀하시는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는 삶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바울의 따뜻한 배려로 가득합니다. 어려운 환경을 만난 자녀를 염려하며 그들을 깊이 생각하는 부모의 심정의 글입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가 궁금해 하는 교리 - 죽은 자의 부활, 그리스도의 재림 등. - 에 대하여 정성어린 답이 들어 있습니다. 편지의 서론인 본문말씀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들이 속해 있는 마케도니아 지역과 아가야 지역에 까지 믿는 자의 본이 되어 있음을 칭찬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과정에서부터 그들이 가진 믿음과 소망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이러한 믿음의 본은 결국 주님과 사도 바울을 본받은 것이었습니다. 본문 6절입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리고 7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믿는 자의 본이 되었던 것입니다.

※ 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단순한 의미로 볼 때 ‘본이 된다는 것’은 ‘모범적인 삶’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학교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될 때 상을 주면서 ‘타의 모범이 되므로 이 상을 드립니다.’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직장 공동체나 사회생활에서도 그들의 기준에서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될 때에 그 공로를 기리거나 상을 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는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본문 3절을 봅시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짧은 이 한 구절 말씀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어떤 삶으로 모범이 되었는지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이 세 가지는 본질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인 교리가 아니라 교리를 생활 속에서 나타낸 실절적인 삶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과 바울 전도단이 이론적인 복음만 전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삶의 신앙을 전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본문 5-7절을 봅시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5절에서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고 바울 전도단이 어떻게 신앙의 본이 되었는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6절에서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말씀 안에서 예수님과 바울 전도단의 삶을 본받았으며, 7절에서는 자신들이 본받은 삶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 오늘까지 전수되어 온 방법이며 표본입니다.

1865년 로버트 토마스 목사가 전해준 한자성경으로 복음이 우리나라에 시작된 이후로 한국교회는 세상에서 본이 되는 삶으로 복음을 전해왔습니다. 6.25 전쟁 후 나라가 복구되고 경제성장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던 때만 해도 기독교는 우리 사회에서 본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고 삶이 부유해지면서부터 기독교는 신앙의 본질인 ‘삶의 신앙’을 버리고 ‘이론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에 빠져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삶이 어려울 때는 하나님의 도움에 매달렸지만, 삶이 부유해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간섭으로 여겨지고 거추장스러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미지근한 신앙의 형식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15-17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미지근한 신앙은 삶이 따르지 않는 형식적인 신앙입니다. 이러한 신앙이 오늘의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서 형상화시켜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디(Dwight L. Moody)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 사람 중 하나가 성경을 읽으면 나머지 아흔 아홉은 그리스도인을 읽는다.”

※ 어떻게 본이 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생활에서 선행을 이루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런 것은 세상 사람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본입니다. 본문 9-10절을 봅시다.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이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 대하여 바울 전도단에게 하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한 순간에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며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궁금해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보여야 할 본은 ‘우리의 구원과 소망에 관한 삶’입니다. 베드로전서 3:15-16절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인의 본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따라가면서 선한 양심과 선한 행실로 구원에 관한 소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예를 들어봅시다.

작은 여객선이 운항을 하던 중 날씨가 거칠어지면서 바다에 거센 바람이 불면서 배가 나뭇잎처럼 파도에 흔들립니다.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로 불안에 떨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만은 난간을 꼭 잡고 서서 흔들리는 배를 즐기기라도 하듯이 태연했습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곁에 있던 아주머니가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무섭지도 않니?” “아니요. 아주머니는 무서운가요?” “무섭다마다. 죽을 지경이다.”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우리 아버지가 이 배의 키를 잡고 계시거든요. 우리 아버지는 일등 선장이셔요.” 아주머니는 그런 아이를 보면서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대단한 아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아이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을 믿는 분이에요. 걱정 마세요. 아주머니도 무사하실 거예요.”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사람이 찡그린 얼굴, 걸핏하면 걱정하고, 부정적인 말, 신뢰를 주지 못하는 행동 등. 생활 속에서 이런 모습이라면 아무도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을 불신하는 삶을 돕지 않으십니다. 반면에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믿는 사람은 그 말이나 행동이 흔들림 없이 평온합니다. 모두가 걱정하고 두려워 할 때 오히려 그들을 격려하며 평온한 모습을 보이며, 남들이 싫어하는 힘들고 어려운 일도 즐겁게 할 때에 사람들은 궁금해 합니다. “저 사람은 도대체 뭐지?”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 4:12)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는 삶을 이루는 것이며, 예수님처럼 산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저의 목양신념이 ‘양 무리의 본이 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2-5절의 말씀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목회를 시작하면서 이 말씀을 목양신념으로 삼아 지금까지 왔습니다. 여러분도 주님을 본받고 저를 본으로 삼아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신실하고 충성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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