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작은 사랑의 실천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5,644회 작성일 2015-01-20 13:56

*** 작은 사랑의 실천 / 고린도후서 8:1-5


고린도후서 8:1-5,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 들어가는 말

요즈음 뉴스 보기가 겁이 납니다. 반인륜적인 범죄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정말 말세구나!’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12절에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불법에는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육신적인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사람들이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경제적인 불황의 바람이 일어나면서 대공황의 두려움에 휩싸여가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범죄와 재난들이 도를 넘어서고, 사람들의 마음이 날카로워지면서 여유를 잃어가고 사랑이 식어갑니다. 이런 시대를 위하여 주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사랑의 불이 꺼져가는 곳에 다시 불길을 일으키도록 말입니다. 등불은 어두울수록 더욱 밝게 빛나듯이 그리스도인의 사랑도 불법이 난무하여 마음이 차갑게 변한 세상에서 더욱 따뜻하게 됩니다.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에 실렸던 짧은 두 이야기가 있습니다.
송이 아빠는 취기가 있는 날이면 늘 쭈그러진 사과를 사옵니다. 송이 엄마가 ‘어디에서 샀느냐?’고 다그치자 송이아빠가 말했습니다.
“알고 사는 거야. 맨 정신에 그런 사과를 어떻게 사겠어. 팔고 싶어 내놓았을 텐데 누군가 그 사과를 사주지 않으면 그가 그 사과를 먹어야 해. 우리에겐 쭈그러진 사과지만 그 사람에게 밥이야. 그리고 밥은 생명이고,”
사과를 파는 분은 가족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가 다니던 교회의 성도들의 도움으로 리어카를 구했고 그렇게 자그마한 과일가게를 연 것입니다. 송이 아빠는 그 사정을 알고 일부러 팔기 어려운 사과만을 골라서 사 준 것입니다.

한 아파트 근처에 있는 세탁소에서 불이 났습니다. 며칠 뒤 아파트 벽보에는 사과문이 나붙고 웃을 맡기신 분은 신고를 해달라는 회람이 돌았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주민들에게 회람이 도는 중에 회람 몇 번째 칸에,
“아저씨, 저는 양복 한 벌인데 받지 않겠습니다. 그 많은 옷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용기를 내세요.”
라는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아파트 주민들은 너도나도 배상을 받지 않겠다고 나섰습니다. 게다가 누군가 '얼굴 없는 천사'가 되어 금일봉을 전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돕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후, 아파트 벽보에는 다시 한 장의 감사문이 붙었습니다.
“주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월남전에서 벌어온 돈으로 어렵사리 일군 삶인데, 제 실수로 잃고 말았습니다. 다시 일어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정말 올해에는 이런 마음을 따듯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봅니다. 이런 일을 우리가 해 봅시다. 사랑은 많은 물질이나, 하기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앞의 이야기처럼 일상생활 속에서의 작은 관심과 배려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너무나 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그 사랑으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자기가 높다고 신경전을 벌이는 제자들 앞에서 손수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5)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올해 우리 교회가 이 작은 사랑의 불을 일으키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의 내용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마게도냐 교회의 소식을 전하면서 격려하는 글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예루살렘 교회가 많은 어려움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것을 돕도록 이방 교회들에게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고린도교회도 동참하도록 하기 위하여 마게도냐 교회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풍부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환난의 많은 시련과 극심한 가난으로 힘겨워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사회가 그리스도인으로 살기에는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게도냐 교회는 자원하여 자신들의 힘에 지나도록 구제헌금을 했습니다. 본문 2-3절에서 사도 바울이 증언합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렇게 마게도냐 교회의 사랑의 실천을 모범삼아 고린도교회도 동참하기를 권면합니다.

※ 사랑은 가장 가까이서부터 작은 배려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42절에서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회에서 소외받는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라도 그의 목마름을 위해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사랑의 배려를 뜻합니다. 이런 작은 사랑의 배려도 주님이 기억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5:35-36절을 봅시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 말씀에서도 주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사랑은 크고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생각하는 작은 배려임을 말씀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는 작은 배려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전부가 사람들을 위한 배려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당시 유대인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율법중의 율법인 ‘안식일 법’을 봅시다. 유대인들은 제4계명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6:6-7절입니다.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또 마가복음 2:23-24절입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 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즉 안식일에는 병을 고친다거나 곡식 이삭 하나라도 따서 비벼 먹는 행위를 일로 여겨서 못하게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2:27-28절입니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즉 모든 율법까지도 사람을 배려한 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시대에는 사람을 배려하는 사랑을 해야 하겠지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지요?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만일 팔을 바깥쪽으로 굽히려 하면 부러집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팔이 안으로 굽듯이 당연히 자신의 사정을 먼저 생각합니다. 세상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6:32-33절입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즉 세상이 당연시 하는 것이라도 그리스도인에게는 당연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팔을 밖으로 굽히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비록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이런 사랑의 배려는 시행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작은 사랑의 배려를 하려면 가장 가까운 여러분의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마게도냐 교회가 자신도 어려웠지만 더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를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살피는 사려 깊은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랑은 가장 가까이에서부터 밖으로 퍼져가는 동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10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미국의 유명한 잡지 가운데 하나인 ‘라이프’지에 “아름다운 참 사랑의 모습”이라는 기사와 더불어 한 페이지 가득 늙은 노인 부부의 사진이 실렸습니다. 그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잡지사의 사진기자가 영국을 방문하던 중, 어느 날 지하철 대합실 식당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로 앞자리에 노인 부부가 서로 부축하면서 마치 소꿉동무 어린이처럼 정답게 마주 앉았습니다. 남편은 비스킷을 주문하고 아내는 차 한 잔을 주문했습니다. 그 노인 부부의 옷차림으로 보아 퍽 가난한 부부임을 알 수 있었는데 그들은 누구에게도 개의치 않고 서로 마주보면서 조용히 서로의 손을 잡고 주문한 것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문한 비스킷과 차가 나왔는데 남편은 비스킷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고, 아내는 뜨거운 차를 몇 모금 마시면서 남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잡지사 기자의 눈에 신기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비스킷을 반쯤이나 먹은 남편이 갑자기 틀니를 뽑더니 깨끗이 닦아서 아내에게 건네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그 틀니를 자연스레 입에 넣고는 남편이 주는 비스킷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틀니를 빼준 남편은 아내가 마시던 차를 마시며 아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사랑은 국경을 초월한다.’고 한 것처럼, 진정한 사랑은 경제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이나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이 노인 부부에게는 주위의 환경과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체면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았습니다. 만일 주위 환경에 마음이 쓰인다면 진정한 사랑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눈에 콩깍지가 낀 듯’상대방의 단점마저도 장점으로 보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며, 이러한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배려입니다. 본문말씀에 나오는 마게도냐 교회는 자신들조차 살아가기 힘겨운 가난과 환난의 고통 속에서도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힘에 겹도록 즐겁게 배려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이런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4:10절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어떤 죄도 문제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로마서 8:32절을 봅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는 사랑을 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받았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없던 관심이 생겨나고, 자기중심주의의 삶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삶으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이렇게 어려운 일이지만 주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해야 하며, 작은 사랑의 배려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신학생들에게 이런 가정에서부터 주님이 명령하신 사랑을 실현해야 한다고 했더니 어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이 갑(甲)질을 하는데 어떻게 나만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느냐?”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나에게 잘하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은 누구나 그렇게 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세상 사람도 다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잘 했기 때문에, 내가 사랑받을 만했기 때문에 잘 해주시고 사랑하시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로마서 5: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 교회를 소개한 것도 그들이 그 고통 속에서도 모범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고린도 교회도 동참하도록 간절하게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도 이렇게 작은 사랑의 배려를 생활화 하여 주님의 자녀 된 삶을 이루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아름답게 이루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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