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사람은? 3
*** 기다리는 사람은? 3 / 레 19:1-2, 마 5:43-48
레위기 19:1-2,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마태복음 5:43-48,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들어가는 말
이제 2014년도 열흘가량이 남았네요. 오늘은 대강절 4번째이자 성탄절이 들어 있는 주간입니다. 사람들은 성탄절의 유래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탄절의 유래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죄로 인하여 죽은 인생을 살려주시려고 하나님이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는 대강절이라는 절기도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삶의 준비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기다리는 사람 세 번째로 ‘거룩한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라는 주제입니다. 거룩한 삶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섬기고 사모하는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온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14절에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거룩함’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봅시다.
※ 먼저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이해해 봅시다.
레위기 본문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선민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를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지켜야 할 일들을 기록’한 법전(法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신 법이며, 그 중에서 율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세상과 구별됨을 요구하시는 ‘거룩함’입니다. 이유는 본문말씀 그대로 간단합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이 외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마태복음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르치신 산상수훈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켜야 하는 삶의 법칙’입니다. 그 중에서도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최고의 법이자 실천하기에는 고난이도를 자랑하는 기초적 생활법입니다. 본문 44절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고, 이것이 온전하신 하나님을 닮는 길입니다. 즉 48절의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이 주님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시는 중심말씀입니다.
이 시간의 구약과 신약 두 본문이 말씀하시는 것은 “거룩”과 “온전”인데 이 둘은 모두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삶’을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완전함’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의 목표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 이르는 완전한 성장을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4:13-14절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 기다리는 사람이 왜 거룩하고 온전해야 합니까?
성경말씀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십니다. 앞서 들으셨듯이 율법서인 모세오경의 주제가 레위기 본문 2절입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특히 ‘구약시대에서 의롭게 되는 길은 의로운 행위 즉 거룩한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대신 죽을 동물 제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후에는 예수님 자신이 영원한 속죄제물이 되시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에게 오셔서 함께 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20절에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빛이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당연히 거룩하고 온전한 삶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했다고 즉시 거룩하게 되고 온전하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아이가 자라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속사람인 영의 사람이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13절에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성화(聖化)’ 즉 ‘거룩한 삶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거룩하고 온전한 삶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는 앞에서도 간단하게 밝혔듯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고 온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빛이십니다. 죄와 불완전은 어두움이어서 빛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온전한 삶을 추구하는 삶은 빛의 삶이어서 빛이신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되고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두움은 어두움이 지배하는 지옥의 권세 아래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9-21절을 봅시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빛의 나라이며 거룩하고 온전한 삶을 이룬 사람들로 하나를 이루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빛의 삶, 즉 거룩하고 온전한 삶을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들어갈 수가 없게 됩니다.
※ 그러면 어떻게 거룩하고 온전한 삶을 이룰 수 있습니까?
먼저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링겔만 효과 (Ringelmann effect)’라는 심리적 현상이 있습니다.
이 말은 1913년에 독일의 심리학자 ‘맥시밀리엔 링겔만(Maximilien Ringelmann)’이 수행한 유명한 실험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짧게 말하면 링겔만 효과란 집단에 참여하는 개인의 수가 늘어갈수록 성과에 대한 1인당 공헌도가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링겔만은 참가자들에게 줄다리기를 시켰는데, 그 줄에는 참가하는 한 사람마다 얼마나 세게 줄을 당기는지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달았습니다. 일단 줄을 당기기 시작하면 집단 전체가 당기는 힘과 각 개인이 혼자 줄을 당길 때의 힘을 비교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론적으로 하면 한 사람의 힘이 100이라고 한다면, 두 사람이면 200, 세 사람이면 300의 힘이 발휘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 실험결과는 달랐습니다. 일 대 일로 줄다리기를 하면 100% 힘을 발휘하지만, 2:2면 93%, 3:3이면 85%, 8:8이면 49%의 힘만 발휘되는 것으로 실험결과 밝혀졌습니다. 즉 여럿이 줄을 당기면 당연히 혼자 당길 때보다 힘이 커지지만, 놀랍게도 집단에 한 명의 참가자가 추가된다고 해서 비례적으로 집단의 힘이 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이 집단에 속해 있을 때는 자신의 힘을 최대로 발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이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도 링겔만효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말씀묵상하고 기도할 때에는 회개도 하고 다짐도 하고 경각심도 가집니다. 그러다가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숫자가 많아지면서 전체적으로는 영적인 큰 힘을 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여지없이 군중심리가 작용하여 ‘나 하나쯤이야!’혹은 ‘내가 안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하지!’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전체적으로 볼 때 열정적이고 큰일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위험한 생각은 이러한 전체적인 힘이 마치 자신의 힘인 것처럼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적 심리가 대형교회를 선호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5절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구제도, 금식도 모두 하나님께서 보시도록 은밀한 열정으로 행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거룩하고 온전한 삶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과의 은밀한 만남을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의 예수님의 포도나무 비유가 바로 이러한 내용입니다. 4-5절을 봅시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너무도 당연한 말씀이며 이치입니다. 거룩하고 온전한 삶은 인간 스스로는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의인이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신 말씀 그대로 죄인 된 인간이 거룩하고 온전하게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온전하신 성품이 우리에게 부어져야 우리가 그렇게 닮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성품이 우리에게 부어질 수 있는 길이 말씀묵상과 기도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4:4-5절에서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거룩하여 지는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라고 하십니다.
※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거룩하고 온전한 삶입니까?
마태복음 본문말씀에서는 ‘사랑’을 대표적으로 말씀합니다. 어떤 설명보다 말씀을 직접 읽어봅시다. 43-47절까지입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앞에서 이 말씀이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최고의 법이자 실천하기에는 고난이도를 자랑하는 기초적 생활법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정말 실천하기에는 최고난도의 법입니다. 왜 사랑을 대표로 뽑았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법을 총망라하여 하나로 요약하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조금 풀어서 해석하면 ‘그리스도인의 거룩하고 온전한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입니다.
어느 마을에 자녀들은 서로 위해주고 사랑하며, 온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여 부러움을 사는 가정이었는데, 어느 날, 그 집 어른의 친구가 찾아와서 그렇게 사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어른은 말없이 큰 아들을 불렀습니다. 아들에게 ‘대문 앞밭에 이삭이 갓 핀 보리를 베어 묶어세우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두말없이 낫을 들고는 밭으로 가서 막 보리를 베기 시작할 때, 아버지는 ‘보리는 베지 말고 소를 지붕에 올리거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동생들을 불러서 외양간의 소를 몰고는 지붕으로 올리겠다고 용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즉시 순종하는 것이 거룩하고 온전한 삶을 이룰 수 있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루어야 하는 거룩하고 온전한 구체적인 삶은 모든 삶의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고 듣고, 깨달은 말씀을 하나씩 성실하게 순종하면 거룩하고 온전한 삶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께서 그렇게 인도해 가십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믿음의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고’ ‘세상과 육신의 삶에 한눈팔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속에서 거룩하고 온전한 삶을 이루어’ 부끄럽지 않고, 두렵지 않는 진정으로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고 기대하는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