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사람은? 2
기다리는 사람은? 2 / 누가복음 8:4-8, 11-15
누가복음 8:4-8,11-15, “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 버렸고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 들어가는 말
본문말씀은 공관복음에 모두 나오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삶의 자세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비유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경고성 메시지입니다. 본문 8절 후반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 말씀에서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경고를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는 하는 중에 언젠가 봤던 ‘교통안전 캠페인 동영상’이 떠올랐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장소는 극장 안,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영화를 기다리는 동안 예고편 비슷한 영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승용차 운전자가 가로수가 늘어선 한적한 2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다른 화면은 나오지 않고 계속 운행 중인 승용차와 간간히 반대차선에서 지나치는 차들만 보입니다. 관객들은 도대체 왜 이런 영상을 보여주는지 몰라 웅성거립니다. 관객들이 지루해 할 즈음에 모든 관객들의 휴대전화가 요란스럽게 벨소리를 울려댔습니다. 관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휴대전화를 꺼내서 확인합니다.
바로 그 때, 화면에서 ‘쾅’하는 굉음이 들려왔습니다. 관객들은 순간 화면을 봤고 모두가 심장이 멎는 듯 했습니다. 왜냐하면 잘 달리던 승용차가 마주오던 자동차와 충돌하여 도로 바깥으로 튕겨나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객들은 모두 휴대전화를 확인하느라 승용차가 왜 사고가 났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객석에는 놀람과 탄식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이 동영상은 말없이 “당신도 운전 중에 휴대전화를 사용하든지 한 눈 팔면 이렇게 사고가 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하시면서 단순히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 반응하면 이런 결과를 초래하니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라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취해야 할 자세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에 대한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하십니다.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길가를 비롯한 세 종류의 밭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의 마음이며, 각 마음들이 의미하는 바를 상세하게 설명하십니다. 이 네 종류의 마음 중에서 ‘길가’는 ‘아예 말씀이 그 마음에 깨달을 기회조차 받지 못한 불행한 마음’입니다. ‘바위 위’는 ‘말씀을 깨달았지만 시련 앞에 무너져서 믿음을 배반한 마음’입니다. ‘가시떨기 밭’은 ‘말씀을 깨닫고 자라기는 했지만 기형적인 성장이어서 온전한 결실이 없는 마음’입니다. 마지막 ‘옥토’는 ‘모든 말씀을 깨닫고 바르게 성장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보니 말씀을 받는 사람들의 반응이 분명하게 보이지요? 이 비유에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온전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도토리 키 재기’또는 ‘오십 보 백 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끼리 비교해서 조금 더 나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5:4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그래서 이 본문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 두 번째’로 ‘한 눈 팔지 않는 온전한 삶’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 기다림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기다림의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평생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삽니다. 아기의 출생을 기다리는 부부, 성장을 기다리고, 수험생은 합격 소식을 기다리고, 결혼을 기다리고, 매일의 삶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일을 기다리는 등. 신라 눌지왕의 신하 박제상이 왕제를 구하려고 일본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는데, 바다 건너편을 바라보며 남편 박제상을 기다리던 아내가 죽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망부석전설도 있습니다. 이렇게 수없이 많은 기다림은 모두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고 기다리는 자세도 다릅니다. 기다림에 대한 좋은 보상을 위하여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합니다. 죽도록 공부하고, 연습하고, 훈련하고, 땀 흘려 경작하고 가꿉니다. 우리 인생은 자신의 기다림에 대한 좋은 보상을 바라고 이렇게 노력합니다. 만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면 이는 스스로를 속이는 어리석은 삶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속담에도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더욱 철저합니다. 예레미야 17:10절에서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고 하시며, 로마서 2: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라고 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사모하며 기다리는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22:12절에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십니다. 즉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심판과 보응을 위하여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은 이 세상을 크게 둘로 갈라놓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여 준비 된 사람들과 예수님의 뜻대로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 이 두 그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설명하시려고 마태복음 25:31-46절에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반드시 양의 그룹인 예수님의 뜻대로 준비된 사람들 편에 있어야 합니다. 이 그룹에 속하기 위하여 ‘온전한 열매 맺는 삶’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전한 열매를 맺는 옥토 같은 마음,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실천하는 삶을 이루려면 한 눈 팔지 말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다림은 영적으로도 깨어 있어야 하지만 육신적으로도 성실하고 진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어느 이단처럼 직장도 학교도 다 그만두고 함께 모여서 날마다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만 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기다림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6-7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그리스도인의 기다림은 손 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육체가 마지막 호흡을 하는 그 순간까지 주님을 따르며 주어진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예수님께서는 ‘옥토 같은 밭’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본문 15절을 봅시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핵심 구절이 “말씀을 듣고 지키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모르는 분 없지요? 마태복음 7:21절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기다리는 사람이 온전히 수행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온전한 열매를 맺는 옥토 같은 마음,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실천하는 삶을 이루려면 한 눈 팔지 말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한 눈 팔지 않고 수행해야 할 일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 한 눈을 팔게 하는 것부터 봅시다. ‘길가’는 우리가 염두에 둘 가치도 없습니다. “바위 위”와 “가시떨기 밭”이 문제입니다. 바위 위라는 것은 바위 위에 약간 움푹한 곳에 얇게 덮인 흙입니다. 이것은 밭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햇볕이 쬐이면 바위가 달아오를 것이고 흙은 마르는 정도가 아니라 뜨겁게 타들어가게 됩니다. 이러한 신앙은 전혀 깊이가 없이 신앙의 무늬만 가진 형식적인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으로 생활 속에서 말씀을 실천하기는 역부족입니다. 이는 자기 생각대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낙심하고,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 말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작은 어려움도 견디지 못하는 갓난아기 같은 신앙입니다. 이런 사람을 히브리서 5:13절에서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라고 하십니다.
가시떨기 밭은 온통 가시나무가 돋아나 있는 밭입니다. 옛날에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많이 있었습니다. 탱자나무나 가시가 돋친 풀들이 있으면 다른 채소나 곡식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식물의 줄기에 가시가 꽂히면 기운이 막혀서 성장하지를 못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믿음으로 어느 정도 성장을 하지만 자신의 마음에 아직 제거되지 못한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것들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즉 한 눈 팔 일들이 너무도 많은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가득한 세상적인 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매일 매 순간 밥을 먹고 숨을 쉬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해야 영이 산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습니다. 아이들 교육에,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 보험들, 건강, 잡비 등 사용해야 할 곳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의 나라에 쌓아둘 돈도 물질도 없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마저 주님을 위해 쓰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쉬고도 싶고 즐기고도 싶은 마음이 영적인 욕구보다 강합니다. 세상의 삶의 자리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기에는 자신에게 손해가 될 것 같아 적당하게 타협하며 삽니다. 교회에서도 적당히, 세상에서도 적당히, 모든 신앙생활을 적당히 유지하려합니다. 요한계시록 3:15-16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이렇게 세상과 육신의 삶에 한 눈을 팔면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히 수행해야 하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본문 15절을 다시 봅시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에서 삼 단계의 신앙을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단계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말씀을 지키는 것, 즉 실천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해야 하는 것이 이 세 가지입니다. 구체적인 일은 우리들 각 사람에게 주신 일들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분 스스로 그 일들을 찾아야 합니다. 로마서 12:2절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처럼 여러분 스스로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말씀과 기도에 힘쓰면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정말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분별하도록 기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옛 삶의 방식을 버리고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옛 습관과 말, 행실을 그대로 가지고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은 세상이나 육신적인 것에 한 눈 팔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실 때에 베드로도 예수님을 향하여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거센 바람과 파도에 한 눈을 파는 순간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한 눈 팔게 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사탄의 세력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한 눈 팔도록 온갖 것으로 미혹합니다. 미혹당하지 않으려면 옛 삶의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마음 씀씀이, 말투, 행동 하나하나까지 성령 안에서 새롭게 하십시오. 이렇게 내 영을 새롭게 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부어넣고 기도로 영적인 공기를 불어넣는 것뿐입니다. 이러 마음 바탕에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말씀을 지켜 실천하고, 생활 속에서 영적인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영광스러운 상급을 준비하는 행복한 생애를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