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사람은? 1
*** 기다리는 사람은? 1 / 마태복음 25:1-13
마태복음 25;1-13,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 들어가는 말
대강절은 ‘예수님의 오심’에 대한 감사와 준비와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첫 번 성탄절에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지금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들에게 오시는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예수님, 이렇게 우리들에게 오시는 예수님께 대한 감사와 준비와 기다림으로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절기입니다. 기다림에는 기대와 설렘이 있는가 하면, 불안과 초조함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가 되어 있다면 기대와 설렘이 있겠지만,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면 불안과 초조함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이미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1-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 말씀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을 포함하는 마태복음 25장에는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세 가지 비유가 나란히 등장합니다.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 비유, 이 세 가지는 모두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올바른 신앙과 삶의 자세를 가르치는 비유입니다. 첫 번째 비유에 해당하는 본문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을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실제의 생활이 느껴지는 사실적인 구성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칩니다. 특히 본문 5절의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라는 말씀으로 말세의 영적인 상황을 잘 보여주십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것이 ‘기름을 준비하는 것’임을 명백하게 보여주십니다. 미련한 처녀들과 슬기로운 처녀들의 대화에서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말합니다.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그러자 슬기로운 처녀들이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간 사이에 신랑이 도착하고 잔치집의 문은 닫히고 상황이 끝나버립니다.
본문의 열 처녀는 모두 등불을 가졌다는 사실에서 ‘모두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린다 할지라도 이처럼 기름이 준비되지 않으면 천국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당황스럽고 낭패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이런 황당하고 낭패스러움을 당하지 않으려면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은 철저한 준비를 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 기다리는 사람은 졸음을 부르는 시대적 상황에 대처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지금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하여 일어나는 사고들’이 매일 수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고가 난 후에야 ‘이것은 사람들이 대비하지 못하여 일어난 인재(人災)’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4:28-29절을 봅시다.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미리 다시 오실 것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믿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4장에서 재림 전에 일어날 재난의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25절에서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재림에 대하여 충분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 대처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열 명의 처녀들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시간보다 늦어지자 결국 모두 잠에 빠져버렸습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이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늦어질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신랑이 늦어지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디모데전서 2:4절을 봅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리고 베드로후서 3:9절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하십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이 생각보다 늦어지는 이유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으시자 슬슬 졸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졸며 잤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일단 미련한 처녀들이나 슬기로운 처녀들이나 모두 살짝 살짝 졸거나,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이들이 처음부터 잤던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신랑이 오기를 고대하며 자주자주 몸과 옷단장을 하며 등불을 손질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밤은 깊어가고 기다리는 신랑은 오지 않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가 졸음이 오고 더러는 깊은 잠에 빠져 버렸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영적인 상황을 육신적인 상황으로 재현해놓은 것입니다. 즉 영적인 졸음과 잠은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삶에 치우치거나 아예 빠져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의 환난과 재림에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누가복음 21:34-36절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하나님께로 향하는 영적인 관심과 주님을 따르는 신앙의 걸음이 느슨해지는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의 뜻이 속히 이루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며, 두 번째로 마음을 세상으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8:11절에서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라고 하셨고, 에스겔 12:22,25절에서는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사라지리라.’ 하는 너희의 속담이 어찜이냐? 25 나는 여호와라. 내가 말하리니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 반역하는 족속이여, 내가 너희 생전에 말하고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 4:4절에서는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즉 졸며 잤다는 것은 이렇게 세상에서의 육신의 생활을 염려하며 세상의 시련으로 인하여 낙심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열심히 섬기며 따랐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이 느껴지자 마음을 세상으로 향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주님을 따르다가 예수님께서 죽으시자 세상으로 돌아 가버렸습니다. 요한복음 21:2-3절입니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사람들은 이렇게 삶이 뜻대로 되지 않고, 마음이 낙심이 될 때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세상의 것을 잡으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에 빠져 영이 잠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미리 말씀하신 것은 이러한 때를 만날 때를 위하여 미리 대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졸음을 부르는 시대적 상황에 깨어서 적절하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 기다리는 사람이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이 비유의 핵심은 ‘준비’입니다. 물론 ‘깨어 있어야 한다.’는 중요한 주제가 있지만 그것보다 ‘준비’라는 더 깊은 주제가 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과 슬기로운 처녀들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준비된 여분의 기름’입니다. 미련한 처녀들과 슬기로운 처녀들은 모두 불을 밝힌 등불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어지면서 등에 들어 있던 기름은 거의 다 비어버렸습니다. 막상 신랑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이미 기름이 다하여 불이 깜박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이미 준비해 둔 여분의 기름 그릇을 가지고 있어서 금방 등불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그러면 이 말씀에서 ‘등불’은 무엇이며, ‘기름’은 무엇입니까? 먼저 등불을 봅시다. 시편 119:105절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시며, 베드로후서 1:19절에서는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십니다. “말씀”과 “예언”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일컫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8:12절입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곧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주님을 따르며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기름’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4:18절에서 예수님께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라고 하시며, 요한일서 2:27절에서는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부으시는 기름은 ‘성령’이십니다. 요한복음 14:26절을 봅시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러면 종합을 해 봅시다.
미련한 처녀들이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고, 처음에는 모두 그 말씀을 성실하게 순종하고 따랐습니다. 그래서 등불에서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세상에 빠져들면서 주님을 따르는 삶이 희미해지고 주님보다는 세상의 일이 앞서게 됩니다. 말씀을 알지만 더 이상 순종하지를 않습니다. 성령님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게 되고, 성령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에서 더 이상 주인이 되실 수 없으셨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신랑이 오시자 미련한 자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회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잠시 졸았지만 끊임없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랐던 슬기로운 처녀들은 즉시 회개와 함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회복했고 마지막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신앙의 삶은 한 순간에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갑자기 닥치는 시련과 심판의 재림을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깨어 있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 예수님께서 심판의 주님으로 오실 그 날이 멀지 않습니다. 곧 재난의 일들이 온 지구를 덮을 것이고 믿음의 시련도 닥칠 것입니다. 하지만 준비 된 사람에게는 이러한 위기의 때가 곧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준비 된 슬기로운 사람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하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