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길과 죽는 길
*** 사는 길과 죽는 길 / 다니엘 9:1-3, 20-23
다니엘 9:1-3, 20-23,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 20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21 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22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 들어가는 말
제법 큰 사업을 하던 장로님의 사업체가 부도가 나서 무너지는 시련을 당했습니다. 사업이 망하니까 그토록 많이 찾아오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고 친지들의 방문도 끊어졌습니다. 장로님은 좌절감과 배신감을 안고 기도원으로 가서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의 기도를 통하여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큰 은혜를 깨닫고 다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은 이전보다 더 크게 성장했습니다. 장로님은 그 당시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난을 받고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면 하나님과는 가까워진다는 섭리였습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 인생의 삶의 입장에서 보면 ‘사는 길과 죽는 길’에 대한 안내서이기도 합니다. 위에 간증한 장로님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사는 길을 택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도움을 구한다든지 인간적인 방법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 길을 묻고 도움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30:15-16절입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리고 요한계시록 22:14절입니다. “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성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생명의 길, 즉 사는 길을 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다니엘서는 성경분류상으로는 성문서(聖文書)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묵시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문말씀은 다니엘의 기도와 그 기도의 응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거역한 남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하여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갈 때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다니엘은 어린 나이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바벨론의 관리가 되게 하셨고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의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어느 날, 다니엘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기록한 예언서를 읽게 되었는데 그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즉 다니엘은 자기 민족이 노예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인한 징계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징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한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본문 2절입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이 사실을 안 다니엘은 금식기도를 결심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죄와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셨고 가브리엘 천사를 통하여 즉시 응답을 보내셨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고, 깨달은 즉시 철저한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시편 51:1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했으며, 이사야 66:2절에서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사는 길입니다. 반면에 3-4절에서는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형식적인 신앙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육신의 삶에 빠져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 길은 죽는 길입니다.
※ 어두운 현실이라 할지라도 사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 물어봅시다. ‘여러분 자신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누구입니까?’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나를 아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 있는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똑 같은 길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의 나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다니엘이 살고 있던 당시의 현실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나라는 망하였고, 백성들은 모두 죽거나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답답한 것은 그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오히려 10년 20년 세월이 흐르면서 노예로서의 삶에 길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도 그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1절에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하시며 2:5절에서는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 우리의 삶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일어나라. 깨어라’고 수없이 경고하십니다. 마가복음 13:33절에서 주님께서는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고 하시며 37절에서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고 하십니다. 베드로 사도도 베드로전서 5:8-9절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하시며, 바울 사도도 데살로니가전서 5:6절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고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육신의 삶에 깊이 빠져서 주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멸망당하기 오래 전부터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그 경고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름은 가지고 있었지만 실상은 세상적인 평안과 안일을 누리면서 자신들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 현실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증언하십니다. 예레미야 7:13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시며, 35:17절에서는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내가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고 하십니다.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을 소망한다면 사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 길을 다니엘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 거친 베옷과 재를 덮어쓰는 행위는 철저하게 회개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철저하게 자신과 민족의 죄를 회개할 때에 하나님의 응답이 주어졌습니다. 다니엘 10:12절을 봅시다.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고 하십니다.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막혀버립니다. 이사야 59:1-2절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그리고 시편 66:18절에서는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는 길을 찾는다면 진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입술만의 회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이켜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 자기를 버리면 사는 길을 주십니다.
본문 20-23절을 봅시다.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다니엘은 자신의 민족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신을 기도의 제물로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즉시 응답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 하나님을 찾도록 기다리십니다. 이사야 30:18절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그리고 마태복음 6:33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준비해 두고 계십니다. 다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포기하고, 자신의 생각과 생명까지 포기한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내 것으로 여기고 있는 권리와 이익, 생명과 삶과 모든 소유는 내가 주님을 믿고 영접하는 순간에 이미 주님께로 이양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내가 순종하지 못하고 아직 내 것처럼 여기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제는 더 머뭇거리지 않아야 합니다. 나 자신의 실제 주인이신 예수님께 이 모든 것을 맡겨드려야 합니다. 내가 나이기를 포기할 때, 하나님은 나를 위한 자신의 계획을 시행하십니다. 내가 나이기를 고집할 때는 하나님께서 일 하실 수가 없음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도 고향에서는 아무런 능력도 행하실 수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따르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이렇게 자기를 버리고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면 생명의 길이 주어집니다.
여러분 낙타를 보셨지요? 낙타는 유별스럽게 눈썹이 깁니다. 왜 눈썹이 길겠습니까? 이유는 사막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끝도 없는 사막에 모래바람이 붑니다. 모래 언덕에서 뜨거운 모래바람이 앞을 가릴 때, 오직 길을 잃지 않고 앞으로 갈 수 있는 것은 낙타뿐입니다. 낙타는 커다란 혹을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 이유도 역시 사막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가도 가도 목이 타는 사막에서 갈증을 이기는 길은 자신 속에 물을 저장에 두는 길뿐입니다. 낙타는 무릎에 굳은살이 유독 눈에 띄게 두껍습니다. 사막의 모래바람이 불어 닥칠 때에는 낙타라고 해도 더 이상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그 때에는 조용히 무릎을 꿇습니다. 그 모래 폭풍이 지나가기를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사람들을 흔히 ‘낙타 무릎’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무도 많이 무릎을 꿇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라 할지라도 삶의 고난에서는 예외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인생의 깊은 고뇌 속에서도 하나님께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생명줄이며 진정한 회개는 생명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수용하고 순종하는 길은 지금부터 영원토록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사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 이 길을 함께 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