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끝까지 가야 합니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947회 작성일 2014-11-11 23:00

​​*** 끝까지 가야 합니다. / 역대하 16:7-12, 히 3:13-14


역대하 16:7-12, “7 그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한 고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8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10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 11 아사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12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히브리서 3:13-14,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 들어가는 말

우리 인생의 삶을 성경에서는 종종 항해하는 배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다로, 인생을 항해하는 배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풍랑 이는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이적과 물 위로 걸어오신 이적을 통하여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찬송에도 432장에서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저 등대의 불빛도 희미한데 이 풍랑에 노 저어 항해하는 이 작은 배 사공은 주님이라.…”이렇게 노래하며, 135장에서도 “풍랑 이는 바다 위로 걸어오시고 갈릴리의 험한 풍파 잔잔케 하고 …”이렇게 노래합니다. 이렇게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 인생의 배는 도착지인 천국의 항구까지 안전하게 항해하여야 합니다. 도중에 파선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의 경주는 끝까지 가야 합니다. 이 인생의 항해를 안전하게 목적지에 이르려면 꼭 지켜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만재 홀수선(Plimsoll line)’ 혹은 ‘적재 한계선(Load Lin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9세기에는 대영제국이 오대양을 누비는 해양 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침몰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침몰의 이유는 ‘배의 적재 능력 이상으로 짐을 너무 많이 실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연구하던 ‘새뮤얼 플림솔(Samuel Plimsoll)’은 1880년 영국 의회에 한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그 법안은 ‘선체에 적재 능력에 해당하는 하나의 선을 그리고, 짐을 실을 때 물이 그 선까지 오르면 더 이상 짐을 싣지 못하도록 규제한다.’는 것입니다. 이 선을 연구자의 이름을 따서 Plimsoll line(만재 홀수선) 혹은 ‘적재한계선(Load line)’이라고 부릅니다.

지금의 배들은 선체 외벽에 적재 한계선 위의 색과 아래의 색을 달리하여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 선은 생명선과 같습니다. 그 이상을 실으면 침몰하게 됩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 사건이 바로 이것을 무시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는 Load Line이 아닌 Lord Line이 있어야 합니다. 즉 ‘주님의 뜻을 규정하는 선’을 그어야 합니다. 이 선은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을 나누는 경계선입니다. 이 선을 벗어나도록 세상일에 빠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면서 세상 속으로 침몰하게 됩니다. 세상에 속한 부귀영화와 물질과 명예와 권세들은 많이 쌓을수록 더 빠르게 침몰할 뿐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6:10절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경고하십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역대하 본문말씀은 남 유다의 세 번째 왕인 ‘아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사 왕은 41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비교적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적인 통치를 했습니다. 통치 초기의 아사 왕의 업적에 대하여 역대하 14:2-5절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을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 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그런데 1절에서는 “그의 시대에 그의 땅이 십 년 동안 평안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시작은 잘 했지만 점점 마음이 변하고 생각이 바뀌면서 나중에는 사람을 의지하다가 평안이 사라졌다는 말씀입니다. 아사 왕의 생애를 요약하면,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이 잘 어울립니다.

히브리서 본문말씀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기 위하여 현재의 시간에 서로를 돌아보며 믿음을 서로 권면하고,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하십니다.

※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까?

본문을 포함하는 아사 왕의 일대기를 읽으면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왕이 되어 통치를 시작할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모든 것이 형통했지만, 나라가 안정되자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과 힘을 의지하다가 버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사 왕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 아는 사울 왕이나 솔로몬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의 시작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며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가 하나님께 버림받는 비극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본문 14절에서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아사 왕의 통치 시작은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통치 초기에 구스의 왕이 백만 군대를 이끌고 침략해 왔을 때 아사의 태도는 이러했습니다. 역대하 14:11절입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이렇게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58만 명의 군사로 백만 군사를 이겼습니다. 그리고 아사 왕은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우상들을 부수고 찍어 버리는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또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찾게 하고 율법과 명령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는 자는 대소남녀를 막론하고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대하 15:13)고 선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 표본으로 자신의 어머니가 만든 아세라 목상을 찍고 불살랐으며, 어머니를 태후의 자리에서 폐위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감하게 개혁을 단행하는 아사 왕을 격려하셨고 아사 왕의 35년까지 전쟁이 없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아사 왕 통치 말기인 36년에 북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이 침략해 왔습니다. 아사 왕은 그동안 하나님을 의지했던 마음은 간곳이 없고, 성전과 왕궁의 금과 은을 아람 왕인 ‘벤하닷’에게 다 내주면서 ‘북 이스라엘 군을 물리쳐 달라.’고 의뢰했습니다. 아사 왕은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사 왕의 마음이 이처럼 달라진 것은 나라가 든든하게 서게 되는 집권 초기 10년 이후부터였습니다. 아사 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나라가 든든하게 서게 되자 서서히 세상적인 권력과 힘을 신뢰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 집권 36년에 하나님의 징계로 전쟁이 일어나게 되자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의 힘을 의지했습니다. 이전에 구스의 백만 군대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겼는데, 이제는 자그마한 북 이스라엘이 쳐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의지했습니다. 아사 왕은 ‘하나님께로 향하던 처음 믿음과 열정을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견자 하나니를 아사 왕에게 보내셔서 책망하시면서 징계를 선언하셨습니다. 본문 7-9절입니다. “그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한 고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하나님을 의지할 때 주어졌던 평안이 사라진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처음 믿음과 열정을 잃어버리지 않으셨습니까?

※ 잃어버린 것은 회복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의 편지를 받은 일곱교회 중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과 사람을 향하는 깊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께로 향하는 사랑을 버렸습니다. 아마도 신앙의 시련을 겪으면서 서로가 의심하게 되고 멀리하면서 사랑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지금 우리도 자신을 살펴서 회복해야 하는 것은 처음 가졌던 믿음과 사랑의 열정입니다. 아사 왕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회복을 권면했지만 오히려 선지자를 옥에 가두었으며, 위중한 병이 들었을 때에 의사를 의지했습니다. 즉 끝까지 회복을 거부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하나님께서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 이 나라의 교회를 향하여 회개하라고 하시면서 전쟁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와 나라를 향하여 긴박하게 전쟁을 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나라를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전쟁의 기간과 피해가 줄어들도록 기도하고, 대통령의 지혜로운 결단을 위하여, 군인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를 보내셔서 니느웨에 심판을 경고하신 것처럼 지금 우리나라에게 경고하십니다. 만일 회개하고 돌이키면 니느웨에게 하셨던 것처럼 능히 우리나라도 징계를 면해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회개하고 부르짖어야 할 때입니다. 이는 전쟁의 예언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나라의 교회도 오늘 말씀처럼 처음 믿음과 열정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지나온 길들을 회개하고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히브리서 본문 13-14절을 봅시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혹 고집스러운 마음으로 회개와 회복을 거부한다면 성경의 수많은 예들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믿음의 경주는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그 순간까지입니다. 아사 왕은 41년의 통치 중에서 10년이 온전했으며, 점점 믿음이 기울다가 하나님을 떠났고, 36년에 전쟁이 있었으며 중병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서 전무후무한 지혜와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통치 말기에 많은 후비들의 유혹으로 인하여 우상숭배에 빠져 버림받았습니다. 왕정 시대의 첫 왕이었던 사울도 역시 선택받은 은혜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사무엘상 15:11절에서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버리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소홀히 대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소홀히 대하십니다. 사무엘상 2:30절에서 엘리 제사장의 집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저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다만 이 나라를, 그리고 이 나라의 교회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잃어버린 믿음과 사랑을 회개하고 돌이켜 회복하십시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준비 된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황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으로 준비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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