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6,173회 작성일 2015-05-14 15:01

***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 요한복음 15:15-21


요한복음 15:15-21,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 들어가는 말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해야 할 일은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마음을 기울여야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원하시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처음도 사랑이며 마지막도 사랑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즉 ‘내 생활 속에서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이 사랑은 세상이 말하는 사랑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사랑은 육체적인 ‘에로스’이지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사랑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필로스’ ‘아가페’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화목제물로 보내신 것도 ‘사랑’이 근본이며,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도 ‘사랑’이며,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심도 ‘사랑’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에서 사랑이 빠지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고전 13장). 본문 17절에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목적을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시며,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6;14절에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찬송가 503장 ‘세상 모두 사랑 없어’의 원제목은 ‘Do you know the world is dying?’입니다. 번역하면, ‘이 세상이 죽어가는 것을 당신은 아십니까?’ 라는 말입니다. 가사 내용을 보면, “1.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냉랭함을 아느냐 곳곳마다 사랑 없어 탄식소리 뿐일세. 2. 곳곳마다 번민함은 사랑 없는 연고요 측은하게 손을 펴고 사랑받기 원하네. 3. 어떤 사람 우상 앞에 복을 빌고 있으며 어떤 사람 자연 앞에 사랑 요구하도다. 4. 기갈 중에 있는 영혼 사랑받기 원하며 아이들도 소리 질러 사랑받기 원하네.” 온 세상이 ‘진실한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이런 사랑을 줄 수는 없습니다. 이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인들뿐입니다. 특히 지금 오월 가정의 달이며,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서 꽃피우는 가장 첫 번 자리는 ‘가정’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가까운 혈육인 가정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실현되지 못한다면 다른 곳에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우리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을 포함하는 15장 전체가 예수님께서 하신 ‘포도나무 비유’와 그에 따른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시며,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나무에 붙은 가지라고 하십니다. 이 비유의 의미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나무와 가지는 둘이 아니라 하나이듯이 예수님과 그리스도인들도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를 이룰 수 있는 길이 ‘사랑’입니다. 사랑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는 주님과 하나를 이룰 수 있습니다. 특히 본문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파격적으로 우리를 ‘친구’라고 불러주시며, 주님이 친히 우리를 택하시고 세우셨다고 하십니다. 이런 은혜를 베푸신 목적이 우리의 삶에서 열매를 맺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목적이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하는 이 일에는 각오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멸시를 당하고 박해를 받았던 것처럼,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당연히 이런 대우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고난을 당했는데 종이 그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랑을 실현하는 데는 오해와 고난과 박해를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염려하지 마십시오. 마태복음 5:11-12절에서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 사랑은 생활 속에서 증명해야 합니다.

사랑은 이론이 아닙니다. 사랑은 현실적이며 생활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18절에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야고보서 2:14-17절에서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말세에 사랑이 더욱 강조되는 이유는 주님께서도 종말이 가까워지면 세상에 불법이 많이 행해질 것이며, 그로 인하여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12절입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여러분도 피부로 느끼시겠지만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뒤숭숭합니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더 쉽게 취급당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조급해지고, 부정부패, 극단적 이기주의로 가득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어둡고 혼란스러워지니까 사람들이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시대가 종말이 가까운 때니까 사랑이 식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을 바라만 보아야 하겠습니까?  오히려 어두울수록 심지를 올리고 불을 더 밝혀야 합니다. 즉 이럴 때 일수록 그리스도인들은 더 깊은 사랑으로 하나를 이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관심을 가지고 세워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15-16절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세상이, 다른 사람들이 불법을 행하는데 나 혼자 바르게 산다고 무엇이 달라질까?’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으니 나라도 해야겠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가 쏟아졌습니다. 도로 위의 사람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허둥지둥 뛰어다녔습니다. 나도 갑작스러운 비를 피하기 위해 눈에 띄는 한 건물의 좁은 처마 밑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나와 같은 처지의 청년이 서 있었습니다.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지기 시작하자 할아버지 한 분이 가세했습니다. 그 다음 중년아저씨 한 분이 들어왔고, 마지막으로 아주머니 한 분이 비좁은 틈으로 끼어들었습니다. 출근 시간대의 만원버스처럼 작은 처마 밑은 비를 피하는 낯선 사람들로 금세 꽉 들어찼습니다. 사람들은 비좁은 틈에 촘촘히 서서 빗줄기가 잦아들길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지만, 비는 쉽사리 그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 덩치 하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 쪽으로 뛰어오더니, 가련하기 짝이 없는 대열에 합류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구르는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아주머니가 대열에 끼어들자 먼저 와 있던 청년이 얼떨결에 튕겨 나갔습니다. 그 청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쭉 훑어보았습니다. 모두 딴 곳을 바라보며 모른 척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한 마디 하셨습니다. 
"젊은이, 세상이란 게 다 그런 거라네"
청년은 물끄러미 할아버지를 바라보더니 길 저편으로 뛰어가 금방 모습을 감췄습니다. 4~5분 지났을까? 길 저편으로 사라졌던 청년이 비에 흠뻑 젖은 채로 비닐우산 다섯 개를 옆구리에 끼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곤 사람들에게 하나씩 건네주며 
"세상이 절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청년은 다시 길 저편으로 비를 맞으며 사라졌고, 사람들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청년이 쥐어준 우산을 쓰고 분주히 제 갈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처마 밑에 한 사람은 한동안 서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청년에게 말을 건넨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는 한참을 고개를 숙이며 무언가를 생각하다 우산을 바닥에 놓고는 장대비 속으로 걸어갔습니다.

생각이 분명한 청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씀씀이가 이러해야 합니다. 세상이 다 그렇게 돌아가더라도 나는 결코 그렇게 휩쓸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신앙적인 소신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먼저 용서하고, 내가 먼서 손 내밀고, 내가 먼저 사랑하면 닫혔던 마음도 열리고 닫혔던 삶의 문도 열릴 것입니다. 요한삼서 2절에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순서를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가장 먼저가 영적인 형통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설정되고 지켜져야 육신의 일과 육신의 건강까지도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6:33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생활에서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 ‘사랑 증명’입니다.

또 다른 말씀, 요한일서 3:15절에서 “그 형제를 미어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하시며, 4:20-21절에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보는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확실한 증명을 남겨야 합니다. 

이 가정의 달에 가장 가까운 혈육부터 돌아봅시다. 디모데전서 5:8절에서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돌본다.”는 말은 ‘부양한다.’ ‘공급한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즉 가까운 혈육들의 육신의 삶을 먼저 돌아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6:10절에서도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하십니다. 즉 육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을 가족과 혈육들과 믿음의 형제들 그리고 일반 사회에까지 확산해서 실현하라고 하십니다. 이 일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19절에서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신 말씀대로, 우리 상급을 하나님의 나라에 쌓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심과 사랑이 영의 생명을 살리는 기회로 열려집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 마지막 때에 우리가 해야 할 긴급한 일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이미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사랑을 서로 나누면 온전한 사랑, 즉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는 됩니다.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사해(死海)처럼 썩게 됩니다. 썩은 물에는 아무런 생명체도 살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도 흐르지 않고 혼자만의 것으로 고여 있으면 아무런 가치도 발휘할 수 없는 썩은 사랑이 됩니다. 그래서 잠언 27:5절에서는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표현되지 않는 숨겨진 사랑은 차라리 대면하여 꾸짖는 것보다 못한 것입니다. 사랑은 실천될 때에 진가가 나타납니다. 이 사랑을 가장 가까운 가족, 혈육, 믿음의 형제들, 사회로 확장하여 실행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모든 삶에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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