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 누가복음 12:41-44
누가복음 12:41-44, “41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 내가 함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 들어가는 말
본문이 포함되는 구절로 지금까지 제가 설교한 내용이 많습니다. 최근에만도 2013년 2월, 지난해 10월에도 이 본문이 포함되는 구절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이 본문말씀을 자주 거론하는 것은 이 말씀이 중요하기 때문이며, 특히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다가온 이 시대에는 더욱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워지면 믿음을 배반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렇지 않으면 영적으로 깊이 잠드는 경우가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계속 ‘깨어 있으라.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십니다. 본문 바로 앞 절인 40절에서도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하십니다.
마을사람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라고 존경받는 부자 노인이 있었습니다. 한 날은 이웃마을에 사는 역시 부자 노인이 찾아왔습니다. 이웃 마을의 부자 노인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비결을 알고 싶어서 물었습니다.
“나는 당신이나 별 다를 바 없이 살아 왔다고 생각하는데, 왜 나는 ‘구두쇠’라고 따돌림을 당하고, 당신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지 모르겠소. 뭐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그런 것이 있다면 좀 알려주시오.”
존경받는 부자 노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서 내게 있는 재산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지요. 그래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재산을 조금 나누어 쓸 뿐입니다.”
그러자 구두쇠 노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이렇게 중얼거리며 돌아섰습니다.
“내가 평생 일해 모은 재산이 내 것이 아니라니,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다니…”
그 후로도 구두쇠 노인의 생활은 변하지 않았고, 그가 죽었을 때에는 찾아오는 이웃도 별로 없는 쓸쓸한 장례식이었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삶의 목적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고, 생각의 기준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이 사는 이 세상의 삶이 전부여서 당연히 모든 삶이 육신적인 부귀영화에 관점이 집중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물질이나 출세, 육신적인 즐거움과 행복에 목을 매고 사는 것입니다. 요즘 심심찮게 ‘가진 사람들의 갑(甲)질 논란’이 뉴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생각하건대 아마도 세상적으로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없어서 못하는 것이지 자신들도 있다면 자연스럽게 갑 질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갑 질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유권과 권리를 악하게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쥬”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노블레스’는 원래 귀족이란 뜻으로 사회적 상층을 가리키고, ‘오블리쥬’는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노블레스 오블리쥬’란 ‘사회지도층의 사회적 책무’를 의미합니다. 고위공직자를 비롯하여 사회지도층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집단이니만큼 사회적 의무에 대해서도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세상도 이런 책임 있는 삶을 요구하고 좋아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어떠하겠습니까? 마태복음 5:16절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이 포함되어 있는 누가복음 12장에는 ‘어리석은 부자 비유’가 있고, ‘깨어 있는 종들 비유’와 ‘지혜 있는 청지기 비유’가 연달아 등장합니다. 그 중간에는 ‘육신의 생활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이 연관이 있습니다. 이 말씀들의 전체적인 내용은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즉 세상적인 부귀영화에 마음 두지 말고, 그것 때문에 염려하지도 말고, 영으로 깨어 있어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맡겨진 일을 지혜롭고 성실하게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깨어 있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비유로 대답하셨습니다. 그 비유가 본문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인으로부터 일을 부여받은 모든 사람들이 깨어 있어야 할 대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한 마디로 ‘자신의 신분에 맞는 책임성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베드로전서 4:10절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이 말씀을 ‘현대어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누구에게나 특별한 능력을 주셨으니 그것을 서로 돕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십시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선물을 잘 관리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본문 42절을 봅시다.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이 말씀에서 “청지기”란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람’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청지기 신분에 맞는 책임성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이스라엘 당시의 청지기들은 주인의 일부 권한을 위임받아 집안의 종들과 곳간을 비롯한 재산을 관리하며, 주인의 자녀를 교육하는 일을 맡기도 했습니다. 양식을 비축하여 두는 곳간의 관리권을 위임받았다는 것은 집안의 종들에게 때를 따라 식량을 나누어주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청지기는 재산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인의 자녀 교육까지 담당해야 했기 때문에 지혜롭고 충성스러워야 했습니다. 이처럼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을 ‘청지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의 일들을 맡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진실한 청지기와 같이 주인의 집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주인의 집’이란 ‘교회’ 또는 ‘세상’을 말합니다. 주인의 집을 좁은 의미의 교회로 본다면 청지기는 목회자 혹은 직분 자들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주인의 집을 넓은 의미로 이 세상으로 본다면 청지기는 모든 성도들입니다.
청지기에 대하여 조금 더 살펴봅시다. ‘청지기’를 헬라어로 오이코노모스(οικονομος) 라고 하는데, ‘집안 관리자’라는 뜻입니다. 이 관리자가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재산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청지기를 ‘몽학선생’(갈 3:24-25)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몽학선생이란 주인의 아들을 성인이 되기까지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옛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이런 청지기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청지기가 진실하고 지혜롭고 책임성이 있어야 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관리인들입니다. 관리인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가를 약속하고 고용된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종으로서 청지기 직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6:1-8절에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가 있습니다. 1,2절입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그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여기에 등장하는 청지기는 주인으로부터 일정한 보수를 받고 고용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일하는 것은 주인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며, 전적으로 주인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만일 주인의 뜻을 어긴다면,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서처럼 청지기 직분을 잃게 됩니다.
반면에 사도 바울은 종으로서의 청지기를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4:1절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여기서 “맡은 자”란 ‘관리인’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과 동역자들을 ‘하나님의 비밀’, 즉 ‘복음을 맡은 관리인’이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디도서에서 교회의 목회자를 ‘하나님의 청지기’라고 했습니다. 디도서 1:7절입니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또한 베드로 사도는 은사를 받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 표현합니다.
이처럼 사도들이 말하는 청지기 사상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청지기’와 ‘종’을 동일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오늘 본문과 동일한 말씀을 마태는 ‘청지기’ 대신 ‘종’으로 기록했습니다. 마태복음 24:44-45절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이처럼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종이나 청지기의 직무를 수행하는 천한 신분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봉사하는 최고의 신분으로 높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마지막 세대에 이 일을 맡아 책임성 있게 일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이 내가 아닙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7-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 말씀에 대하여 혹시 ‘나는 아닌데!’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지금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나는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닌데!’라고 생각 된다면 자신의 신앙을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사는 동안 진정한 고향이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하여, 맡겨진 재능과 재물과 시간과 능력과 생명까지 모든 것을 다하여 준비하는 관리인일 뿐입니다. 관리인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필폿' 목사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한 여인 곁에서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지금까지 세상에서 좋지 않은 일들을 해 왔으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서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어떤 설득에도 여인의 마음은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마지막으로 그녀의 어머니를 병실로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어머니를 통하여 딸의 마음을 움직여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도 울먹거리며 딸에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가야지.’ 라고 말했지만 딸은 그저 무표정하게 들을 뿐이었습니다. 한참 엄마의 말을 듣고 있던 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그런 말하지 마세요. 엄마는 지금까지 나에게 크리스천의 삶을 보여 주지 않았잖아요!”
베드로전서 2:9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변화 된 신분이 어떠함을 말하며 동시에 왜 이런 신분을 주셨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의 어둠으로부터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우리의 삶을 통하여 나타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18절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관리인으로서 지혜롭고 진실하고 책임성 있는 삶을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을 하나님의 관리인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또는 하나님의 관리인으로서 책임성 있는 삶을 이루셔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