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위하여 4
*** 미래를 위하여 4 / 히브리서 12:1-8
히브리서 12:1-8,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 들어가는 말
내 영의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미래를 위하여’ 네 번째 말씀입니다. 첫 번째는 ‘나눔과 베풂’에 대하여, 두 번째는 ‘최고의 상급을 위한 전도’에 대하여, 지난주의 세 번째는 ‘고난’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네 번째로 미래를 위하여 준비해야 할 것은 ‘최후의 승리를 얻기까지 싸워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인생의 모든 일은 ‘결과를 얻을 때까지 끝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옛 말에도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간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중도에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인생의 삶도 조금 힘들고 어렵다고 중도에 포기해버리고, 일도, 직장도, 공부도 쉽게 포기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것을 포기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여깁니다. 육신의 삶은 영원한 삶을 위한 전초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절입니다. “한 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시며, 11:16절에서는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고 하십니다. 이처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닫는 마음이 있다면 너무도 당연히 영원한 나라를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영원한 삶을 위하여 철저히 준비를 했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삶이 이룰 때까지 나아가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에서 예수님께서 앞서 본을 보이면서 가신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그 고난의 길을 마지막 호흡이 끝나는 순간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시며 성실하게 충성을 다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길을 마지막 호흡하는 순간까지 악한 영들과 싸워서 지켜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해야 나의 밝은 미래를 위한 확실한 준비가 되겠습니까?
※ 결승점에 이르기까지 최선을 다하여 지켜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양보하고 빼앗긴다 할지라도 영의 생명은 지켜야 합니다. 본문 4절을 봅시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좀 세속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피가 터지도록 싸워서라도 영원한 생명을 지켜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면서 바늘만한 틈만이라도 생기면 눈 깜박할 사이에 우리 영 안으로 스며들어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8-9절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고 하십니다. 조금 힘들고 어렵다고 세상을 두리번거리면 안 됩니다. 본문 3절입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예수님께서 그 힘겨운 고난을 당하시면서 끝까지 사탄의 세력들과 싸우셨습니다.
이렇게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나아가려면 세상의 무거운 죄의 짐들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합니다. 전도서 9:11절을 봅시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즉 이 세상의 일들은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스가랴 4:6절에서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우생마사 (牛生馬死)'라는 말을 아십니까?
동물들은 대부분 헤엄을 잘 칩니다. 말과 소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저수지에 말과 소를 동시에 넣으면 둘 다 헤엄쳐서 나옵니다. 그런데 말의 헤엄 속도가 훨씬 빨라서 거의 소의 두 배의 속도로 헤엄쳐 나옵니다. 그런데, 어느 장마 때에 큰물이 나서 갑자기 불어난 물에 소와 말이 물에 떠내려갑니다. 놀랍게도 소는 살아서 나오는데, 헤엄을 잘 치는 말은 익사를 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말은 헤엄을 잘 치지만 강한 물살을 이겨 내려고 물을 거슬러 헤엄칩니다. 1미터 전진 하다가 물살에 밀려서 다시 1미터 후퇴하기를 반복 합니다. 그렇게 한 20분 정도 온 힘을 다해 물살과 싸우며 제 자리에서 맴돌다가 지쳐서 물을 마시고 익사해 버립니다. 그런데 소는 절대로 물살을 위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냥 물살을 등에 지고 같이 떠내려갑니다. 저러다 죽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떠내려가면서 조금씩 강가로 헤엄을 칩니다. 그렇게 2~3Km 정도를 내려가다가 강가의 얕은 모래밭에 발이 닿으면 걸어 나옵니다. 그래서 우생마사(牛生馬死)라고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반항하면 매를 맞게 되고, 결국은 패망과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사야 1:4-6절을 봅시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죄를 부추기는 사탄의 세력과 싸워야 하며, 자신이 육신의 소욕과도 싸워야 하고, 무사안일을 꿈꾸게 하는 모든 것과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8:13-14절에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래서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감동케 하시는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합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영의 생명을 지킬 방법이 없습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날마다 사모하고 구하십시오.
※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아 믿음의 길을 지켜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3:5절을 봅시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이는 ‘영적 자기성찰(自己省察)’을 말씀합니다. 날마다 자신이 믿음에 바르게 서 있는지를 살펴서 자기 믿음을 확실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믿음이 올바른지 비뚤어졌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 잣대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하나님 말씀입니다. 성경을 ‘Canon’이라고 부릅니다. ‘Canon’이라는 단어는 ‘규범, 표준’이라는 뜻인데, 교회법 혹은 성경을 일컫는 말입니다. 즉 성경은 나 자신의 삶이 올바른지 비뚤어졌는지를 재는 표준잣대입니다. 디모데후서 3:16-17절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성경말씀을 항상 가까이 하여 묵상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잣대는 ‘기도’입니다.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통달하신 성령께서 인도하시며, 내 영을 바르게 이끌어 가십니다. 이사야 30:20-21절을 봅시다.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결코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도 역시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아뢸 수조차 없습니다. 로마서 8:26-27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그리고 에베소서 6:18절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실천하고,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해야 자신의 믿음의 길을 지킬 수 있습니다.
사실 영원한 생명의 길은 인간적으로는 외로운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좁은 문과 좁은 길이라고 하셨듯이 이 길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부부나 한 가족이라도 각자가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올바른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싸우며 나아가는 모든 일을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합니다. 물론 성령님께서 도우시고 함께 하는 믿음의 식구들이 큰 힘이 되지만 결국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사람은 우리 자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유일하게 나를 보증해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히브리서 7:22절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이어지는 25절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그래서 항상 예수님을 의지하고 따라야 합니다.
어떤 중년의 부인이 30년 만에 수영장에 왔습니다. 이 부인은 소녀 시절에 수영을 배웠지만 아직도 제대로 물에 뜨지를 못했습니다. 부인은 소녀 시절에 수영을 배운 이후 30 년 동안 물에 가라앉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늘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물에 뜨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부인을 수영 코치가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과 싸우지 말고 물이 당신을 받쳐 줄 것이라고 믿고 물에 몸을 맡기세요.”
그러면서 수영코치는 그녀가 ‘가라앉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품지 않도록 손으로 배를 받쳐주었습니다. 이 부인은 안심하고 몸에서 힘을 빼고 편안하게 물에 몸을 맡겼습니다. 그러자 정말 몸이 가라앉지 않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어려운 삶을 자기 힘으로 헤쳐가려고 애쓰면 쓸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갈 뿐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해야 할 사람이 세상을 의지하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매를 드십니다. 본문 5-6절의 인용구절입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님에게서 멀어지지 않고, 비뚤어지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고 말씀과 기도로 바르게 세워가야 합니다.
지금 세계의 움직임이 너무 수상합니다. 곧 큰 전쟁과 재난의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과 소란스러운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들의 믿음을 점검하여 바른 믿음의 길을 지키고 끝까지 싸우며 나아가도록 깨어 준비합시다. 언제라도 준비된 삶으로 밝은 미래의 소망을 지켜 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