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미래를 위하여1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6,259회 작성일 2015-02-10 16:52

*** 미래를 위하여1-베푸는 삶 / 디모데전서 6:17-19

디모데전서 6:17-19,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 들어가는 말

지구촌에 거주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오랜 과거에 존재했던 많은 생명체들이 멸종되었다고 합니다. 멸종의 이유는 많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룡 같은 경우에는 급작스럽게 변하는 날씨와 환경에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여 결국은 멸종된 것입니다. 반대로 성공적으로 생존해 온 생명체들은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미래를 대처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지금도 생존을 위하여 가능한 한 먼 미래를 예측하려 힘쓰며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구촌의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로 인한 대비책으로써 오래전부터 자원개발과 우주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래 대비는 육체적인 생존을 위한 대비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영원한 생명을 위한 대비책은 아닙니다. 전도서 3:11절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설령 예측한다 할지라도 결코 막거나 돌이키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미래를 위하여 진정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합니다.

며칠 전에 인터넷 편지인 ‘따뜻한 하루’에 올라온 내용입니다.
불가리아의 ‘소피아’에는 지난해 100세를 맞이한 ‘도브리 도브레브(Dobri Dobrev)’ 할아버지가 살고 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청력을 잃은 후, 매일 20km 이상을 걸으며 돈을 구걸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는 매일 20km 이상을 걷고, 옷과 신발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면서 돈을 아끼고 모았지만, 그의 한 달 생활비는 연금으로 받는 10만원이 전부입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그는 구걸하며 모은 돈을 자신에게 쓴 적이 없습니다. 구걸로 모은 돈을 전부 고아원에 기부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구걸로 모은 돈 40,000유로(1240원x4만=49,600,000원)를 기부한 적도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구걸한 돈을 한 푼도 자신에게 쓰지 않고 매일 고아원에 기부를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사심 없는 헌신을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도브리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그가 불가리아의 Baylove 출신이라고 해서 누군가는 그를 ‘Baylove의 성인(聖人)’ 이라고도 부릅니다.

세상은 이렇게 선행을 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여러 많은 선행 중에서도 특히 나누고 베푸는 일에 세상 사람들은 감동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6:38절에서 주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시며, 잠언 19:17절에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고 하십니다. 또한 사도행전 20:35절에서는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본문 18-19절에서는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이 미래를 위하여 준비해야 할 것은 ‘나누고 베푸는 선행’입니다.

※ 미래를 위한 준비 첫 번째는 ‘베푸는 삶’입니다.

며칠 전, 기독교연합회 회의 중에 추진해야 할 사업 이야기를 하다가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교회가 겪는 어려움 중에 젊은이들이 교회를 빠져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등지는 이유가 여러 가지이지만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사회를 등지고 있기 때문이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의 교회는 사회가 교회를 향하여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자신의 몸집만 불리려고 하며, 자신들끼리만 좋아하고, 그러면서도 세상에 불거지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추한 모습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이 말하는 것이 전부 옳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교회는 예수님께서 친히 본을 보이셨고 우리에게 명령하신 사랑과 헌신의 삶을 세상에 나타내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세상은 자그마한 선행만으로도 감동합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사랑의 실천 중의 하나님 ‘베푸는 삶’을 실현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일서 3:18절 말씀에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하신 말씀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베푸는 삶이라고 해서 무엇인가 돈을 많이 들이거나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아주 작은 친절한 행동 하나를 실천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본문 18절을 풀어봅시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선을 행하는 것이나 선한 사업은 아주 광범위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의도는 간단합니다.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구체적으로 ‘나누어 주는 것’과 ‘너그러운 성품’을 꼽을 수 있습니다. 나누어 준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는 것을 쪼개어 나눈다는 것입니다. 남아돌아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성도들은 ‘자신이 살기도 버거운데 남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8:2절에서 “환난의 많은 시련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운 형편을 돕기 위해 마게도냐 교회가 자신의 그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헌금을 풍성하게 드렸다는 내용입니다. 자신들도 가난하고 큰 시련 속에 있지만 다른 지체들의 고난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사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의 심정을 잘 모릅니다. ‘홀아비 사정을 과부가 안다.’고 했듯이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알아줍니다. 그리고 너그러운 성품이란 ‘온유한 마음’이며 ‘관용하는 마음’입니다. 비난하고 헐뜯고 책망하기보다는 그들의 사정을 알아주고 품어주는 것입니다.

시골 노인이 도시에 사는 아들의 집으로 왔습니다. 아들에게는 집 모퉁이에 자그마한 자투리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만 되면 이웃 주민들이 몰래 버린 쓰레기 때문에 아들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호소도 해 보고, 경고 문구도 써 붙여 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아들의 고민을 알게 된 노인은 다음 날 시장으로 가서 호미와 얼마의 퇴비와 채소 씨앗을 샀습니다. 그날부터 노인은 문제의 자투리땅을 일구기 시작했습니다. 자갈을 걸러내고, 단단한 땅을 갈아엎고, 퇴비를 뿌리고 골을 타서 그럴듯한 텃밭이 생겼습니다. 잘 손질 된 밭에 노인은 상추와 고추를 심었습니다. 밭을 일군 다음 날 아침, 아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쓰레기가 보이질 않아요!” 너무나 놀랍고 기분이 좋은 아들이 유난을 떨었습니다.
하루 이틀, 한 달이 지나도  더 이상 쓰레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상추는 먹음직스럽게 자랐고, 싱싱한 풋고추도 달렸습니다. 노인은 아들에게 종이와 굵은 펜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이렇게 썼습니다. “상추가 필요하신 분은 마음껏 가져가시오. 고추도 마음껏 가져가시오.” 싱싱한 상추와 풋고추는 마을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다음 해부터는 노인의 아들이 그 일을 대신했습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 노인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오래도록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내 생각만 조금 바뀌면 전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조차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 일에는 어색하고 어려워합니다. 돈을 의지하던 사람에게는 돈을 내려놓는 것이 죽는 것처럼 여겨지고, 자기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에게 돕고 나누라는 말은 자신의 피를 빼내는 것처럼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본문 17절에서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세상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모든 재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재물을 따라가면 결국 재물과 함께 멸망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기억하시지요? 영생을 얻고 싶어서 예수님께 나아왔던 청년에게 예수님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재물이 많기 때문에 근심하며 갔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렸겠습니까? 누가복음 16:13절입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의 재물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19-21절을 봅시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주님 말씀대로 보물을 하늘에 쌓는 방법이 ‘베푸는 삶’입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시원한 냉수 한 잔을 주는 것도 베푸는 것이며, 손님이나 이웃, 지체들을 주님께 하듯 대접하는 것도 베푸는 것이며,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거나 걸인을 동정하는 작은 물질도 역시 베푸는 것이며, 친절한 길 안내나 작은 배려도 너그러운 섬김입니다. 히브리서 13:16절을 봅시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이 말씀에서처럼 선행과 베푸는 삶 자체가 ‘예배의 삶’입니다. 이러한 삶이 우리의 미래를 밝고 확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어머니가 올린 글입니다.
9살짜리 아들과 엄마가 집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을 보면서 긴 차량 행렬에 끼어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잽싸게 자동차 앞 유리에 스프레이로 세정액을 뿌리고는 걸레로 닦기 시작했습니다. 운전자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유리를 닦고는 손을 벌리며 돈을 요구했습니다. 그 엄마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는 움직이는 차량행렬을 따라 출발했습니다. 그때 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 왜 '아니'라고 유리 닦는 사람에게 소리를 치셨어요? 창을 닦게 하고 돈을 좀 주시지 않구요!”
“이 사람들은 어거지로 돈을 받아내려고 하는 거야. 그 돈으로 그들은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맞을 거야. 내가 돈을 주면 단지 그들의 나쁜 습관을 지속시키는 결과가 되겠지.”
라고 엄마는 어린 아들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어른스럽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잖아요. 불쌍한 생각이 들어요. 누가 엄마에게 소리를 지른다면 엄마의 기분이 어떻겠어요. 배고프고 돈이 없다면 엄마의 기분은 어떻겠어요?”
엄마는 마음이 찔렸습니다. 이 일 때문에 저녁에 가족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역시 평소 유리 닦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를 지르는 사람인데, 아들의 주장을 귀담아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유리 닦는 사람들을 기꺼이 맞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또 하나를 제안했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을 나누어주면 어때요?” 그래서 이제 우리는 포켓용 성경과 집에서 만든 머핀과 50센트를 준비해서 다닙니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작은 것이지만 나누고 베풀며, 배려하는 너그러운 삶이 우리교회가 올해 목표로 하고 있는 ‘작은 사랑의 실천’을 이루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확실한 미래를 준비하는 길입니다. 이번 주간도 주님의 사랑 안에서 베푸는 삶으로 기쁨이 충만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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