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뻐해야 합니까?
*** 왜 기뻐해야 합니까? / 요한복음 16:20-24
요한복음 16:20-24,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 들어가는 말
지난 한 주간동안 얼마나 웃으셨습니까? 혹 사는 일이 바빠서 웃을 여유조차 없으셨는지요? 사실 요즘 우리 사회가 웃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온통 부정적인 생각만 들게 하는 사건과 환경들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서로 경계하며 이웃 사이의 담만 점점 높아갑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불법적인 일들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의 사랑도 식어지고, 서로간의 신뢰도 무너지고’있습니다. 게다가 경제적인 여건이 악화되면서 마음조차 추워져서 삶의 여유마저 잃어갑니다. 육신적인 상황은 이렇다 하더라도 영적인 상황은 주님께서 예고하신 대로 더 많이 악화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7-12절입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상황이 이렇게 되면 아무리 믿음이 좋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이 불안해질 것이며, 기쁨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모든 상황이 이렇게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기뻐해야 할까요?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대속의 일을 수행하셔야 할 때가 되어 제자들의 마음 준비를 시키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나라를 로마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하실 메시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사람의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메시아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왕이 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십자가 처형을 당하게 될 것이고 분명히 제자들이 타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본문 20절이 바로 이 내용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들의 기대가 사라지면서 슬퍼하겠지만, 세상은 자신들의 눈의 가시 같은 존재를 죽임으로 기뻐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부활하실 것이고,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서 더 큰 기쁨을 얻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 주님을 다시 볼 소망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과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의 기쁨은 세상의 현실적인 욕구충족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기쁨의 요소가 사라지면 기쁨도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없어지지 아니하는 소망으로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환경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본문 22절에서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시며 요한복음 15:11절에서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기쁨은 부활의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심으로서 주님의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이므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기쁨을 원한다면 주님께서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 동행의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이것을 다른 말로 ‘부활의 삶’이라고 합니다.
부활의 삶이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적인 부활의 삶이며, 이것은 지금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누리는 삶입니다. 즉 죄 때문에 죽었던 우리 영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어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4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죄의 몸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우리의 영은 새로운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 6:11절을 봅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또 다른 부활의 삶은 영과 육신이 모두 부활한 삶입니다. 이것은 지금 이 땅에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죽었던 우리의 육신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아나고, 이미 부활한 영과 함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1-52절을 봅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소망입니다. 이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자칫 세상의 일에 매달려 살다가 이 소망을 놓쳐버리면 기쁨은 영원히 잃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이 사실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20-22절입니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이 세상의 환경이나 재물에 마음이 빼앗기면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기쁨도 빼앗기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은 육신적으로는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 때문에 마음이 기쁘고 즐겁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늦지 않도록 이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 우리의 힘과 도움이시므로 기뻐해야 합니다.
느헤미야 8:10절에서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하시며, 시편 37:4절에서는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하십니다.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전 생애를 맡기고 따른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자신의 소원을 이루게 하십니다. 전도서 2: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이처럼 하나님을 기뻐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과 도움이 되셔서 우리의 삶을 성공적이 되게 하십니다.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 1838∼1922)를 아십니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백화점 창시자로 알려졌고, 그리스도인들에겐 성경이 만든 사람 혹은 백화점 회장이나 장관 일보다 주일학교 교사를 본업으로 삼고 하나님의 교회에 충성했던 본이 되는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12살에 벽돌공장 직공으로 일해야 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열심히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예배당 앞길은 비만 오면 진흙탕이 되곤 했는데, 어느 날, 예배당 앞길에 벽돌 30장이 반듯이 깔려 있었습니다. 다음 주에도 30장. 그렇게 매주 벽돌이 깔리더니 어느덧 예배당 마당에까지 거의 전부가 깨끗하게 벽돌로 깔렸습니다. 모두가 ‘누가 했을까?’궁금해 하던 어느 날 아침, 목사님이 존이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존은 주급 중에서 벽돌 30개 값을 빼고 그 일을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설교 시간에 그 이야기를 했고, 교인들이 감동이 되어 의논한 끝에 예배당을 새롭게 단장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교회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어린 소년에게 복을 주셨고, 큰 사업가로 성공했으며, 체신부장관까지 역임했습니다. 백화점의 창시자이며 백화점 왕으로 불리는 존은 백화점 지점만 해도 세계에 160개, 세계 여러 곳에 250여 개의 학교와 병원 고아원을 세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투자는 ‘성경’이었다.”고 했으며, 네 가지 T자로 시작하는 Think(기대하고), Try(시도하고), Toil(노력하여 성취하고), Trust in God(하나님을 신뢰하는) 인생표어를 실천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업보다, 체신부 장관 직임보다 교회학교 교사를 더 중요하게 여겨 67년 동안 교회학교 교사로 섬겼습니다.
그가 83세일 때에 사업 60주년을 맞았습니다. 기념식장에서 기자가 ‘성공한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에 워너 메이커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기쁘게 그리고 바쁘게 사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본문 23-24절을 읽어봅시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비결을 가르치십니다. 그 비결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것이 우리의 삶에 채워지게 됩니까? 그것은 기도입니다. 즉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본문 앞쪽의 15:7절을 봅시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시며, 10-11절을 봅시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비결은 ‘주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면서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지만 그들이 모두 구하는 대로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이르는 길과 하나님의 응답이 우리에게 이르는 길 모두가 영적인 통로로 되어 있습니다. 이 영적인 통로는 역시 영적인 존재인 사탄의 세력들이 막고 방해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성령 안에서 해야 하며, 전심으로 간절하게 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령께서 아시기 때문에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2:10-11절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그래서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기도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하게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성령의 도우심으로 간절하게 전심으로 하는 기도가 사탄의 세력을 뚫고 하나님께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땀방울에 피가 베어나오도록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12-13절에서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하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시고 도움이 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혼자서는 어렵습니다. 주님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돌아보면서 삶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면서 밀어주고 당겨주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주님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의 삶을 나타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