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는 사람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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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8-25 15:32
*** 인정받는 사람 / 빌립보서 2:19-24
빌립보서 2:19-24, “19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20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1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23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24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 들어가는 말
사람이 성취감을 느끼며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 중에 하나는 ‘인정받는 것’입니다. 자신의 실력이나 능력, 자신이 한 일, 계획, 인간관계 등등.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확실히 기분 좋고 힘이 나게 하는 묘약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인정받는다면 그 기쁨은 표현하기 힘들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5절에서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쓰라.”고 하시며, 야고보서 1:12절에서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시련을 견디어 낸 자”라는 말은 개역성경에서는 “옳다 인정함을 받은”이라는 구절을 새롭게 번역한 것입니다. 헬라어로는 도키모스 기노메노스라고 하는데, ‘도키모스’라는 단어는 ‘받을 만한’ ‘시험 후에 인정된’이라는 의미를 가졌고, ‘기노마이’라는 단어는 ‘되는 원인이 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시험을 잘 견뎌서 인정함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0:18절에서는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은”이라는 단어가 역시 ‘도키모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말씀에는 사도 바울의 영적인 외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보내고 싶은데 ‘디모데’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과 함께 빌립보 교회의 사정에 대하여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디모데뿐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즉 지금 사도 바울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디모데뿐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에서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라고 했습니다. 즉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일에 바빠서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단시간에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생활 속에서 성실함과 정직함, 능력 등을 함께 겪은 후에 인정받게 됩니다. 하물며 사람의 마음의 생각까지도 살피시는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어떻겠습니까? 성경에서 하나님께 인정받은 유명한 인물들을 살펴보십시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욥, 다윗, 다니엘,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 바울 등. 이들은 한결같이 오랜 시간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신실한 생활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지 25년이 지난 후에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마지막 시험을 겪게 됩니다. 이 시험을 통과한 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22:12절입니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제야”라고 표현하십니다. 즉 아브라함이 망설이지 않고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면 하나님께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1:6-8절 말씀이 바로 이 뜻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 먼저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스위스의 어느 심리학자가 많은 임상실험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한 가지입니다. 실험 대상자는 30여 세의 젊은 남성입니다. 이 젊은이는 사랑을 받아 본 적도 없고 사랑을 해 본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아 출신인데 어떤 사람이든지 의심을 가지고 대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심리학자가 그 이유를 조사해 보니, 그는 세상에서 너무나 심한 천대와 학대와 사기를 당해 왔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결혼을 했는데, 그 부인의 고민은 자기의 사랑을 남편이 믿어 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 부인은 4년여의 노력 끝에 비로소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잘 믿는 편입니까? 아니면 의심부터 해보는 편입니까? 예로부터 믿을 수 없는 사람을 빗대어서,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못 믿겠다.”고 했습니다. 콩으로 메주를 빗는 것은 당연한데 그만큼 믿을 수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여러분도 잘 알듯이 지금 이 시대는 불신의 장벽이 너무나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정치, 문화, 교육, 종교 등 어느 한 곳도 신뢰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마음이 굳게 닫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사람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정말 소중하지만 그만큼 힘들기도 합니다. 어느 중소기업 경영자는 회사의 회계를 맡길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심정도 이러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머물면서 빌립보 교회의 상황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대신하여 권면하고 진실하게 사정을 살필 사람이 ‘디모데’뿐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일에 바빠서 하나님의 일을 외면했고 유일하게 바울과 뜻을 같이 하여 진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디모데’뿐이었습니다.
요한일서 4:20절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전적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도 먼저 사람과의 모든 관계를 바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5:23-24절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네게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사람의 모든 감각은 육신적인 것에 집중됩니다. 즉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고, 맛으로 냄새로 느껴지는 것을 우선적으로 신뢰하게 됩니다. 이처럼 불확실한 육신의 상황을 보는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면서 영의 상황까지 살피시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16:11-12절입니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육신의 삶에서 예수님의 제자 된 삶의 모습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래서 앞에서 보았던 디모데후서 2:15절에서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쓰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적어도 이 불신이 만연한 세상에서 성실함과 정직함과 열정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사람에게만 인정받으려 한다면 사람이 볼 때에만 성실하면 되겠지요. 그래서 지금 수많은 교인들이 이런 외식적인 신앙에 빠져 있습니다. 즉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스도인 같은데 그들의 삶을 보면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 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8:10절에서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고 하시며, 고린도전서 6:19-20절에서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하십니다. 여러분의 몸도 여러분의 영도 여러분에게 있는 모든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생명으로 값을 치르시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한 랍비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랍비는 이 제자에게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하는 기도문을 외워보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학생은 처음 몇 줄밖에 외우지 못했습니다. 다른 기도문에 대해서도 모두 그랬고, 지금까지 가르친 것도 거의 외우지 못했습니다. 랍비는 그 제자를 나무랐습니다. 젊은이는 식사가 끝나자마자 고개를 푹 숙인 채 돌아갔습니다. 며칠 뒤, 랍비는 그 젊은이가 병으로 앓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집에 가서 거들어 주고,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스스로 일하여 돈을 보내는 등.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랍비는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에 생각한 건 이내 행위로 들어간다. 그러나 여러 권의 책을 읽어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마음을 밭 갈지 않는다면 알고 있는데 머물고 만다. 마음을 밭갈이함은 두뇌를 밭갈이함보다 더 값지다.”
랍비의 가르침은 ‘바른 것을 배우기보다 바른 것을 행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은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생활 속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20절에서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뜻을 같이 한다.”는 말은 ‘같은 마음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을 같이 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철저히 신뢰하고 순종하는 사도 바울은 자신과 마음을 같이하는 신실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뿐이었습니다. 에스겔 9: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그리고 디도서 2:14절입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두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진실하게 실천하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세상의 것에 매료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잊고 있습니다. 본문 21절의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인들마저 하나님의 일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으로 인하여 로마로 압송되어 감옥에 갇히자 따르던 주변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을 외면하고 모두 자기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예수님에게 있어서도 동일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추종자들은 참으로 많았습니다. 예수님에 의하여 전도의 사명으로 세상에 파송 된 제자만도 70명이 있었으며, 예수님이 친히 부르신 사도들이 12명이나 있었고, 그 외의 따르는 제자는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그 고난의 자리에는 사도 요한과 여성도 몇 외에는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상황은 더 악화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여 생활 속에서도 순종하고 실천하는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끝까지 주님의 인정을 받도록 따르시겠습니까?
세상에는 일생동안 자신의 일만 구하다가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적인 부귀영화와 쾌락만을 추구하다가 허망하게 생을 마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들이 불쌍한 사람들이지만 더욱 불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생명의 길, 영광의 길을 곁에 두고도 그리스도의 일은 구하지 않고, 자신의 일만 구하면서 끝없이 자신의 욕망만 쫓다가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버리는 사람들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 중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랐으면서도 예수님의 일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일만 구하다가,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하여 예수님까지도 스스럼없이 팔아버리고는 멸망을 자초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신앙과 삶을 돌아볼 때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있다고 믿습니까? 만일 인정받을 자신이 없다면 이제는 세상의 일만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구하고 열심을 내십시오. 그리하여 언제나 세상에서 당당하게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