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후회를 남기지 않는 인생 2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5,293회 작성일 2015-08-18 15:44

*** 후회를 남기지 않는 인생 2 / 고린도전서 4:1-5


고린도전서 4:1-5,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해 보셨습니까? 그 중에서 가장 마음 아팠던 후회는 어떤 것입니까? 그 후회한 일을 만회(挽回)하셨습니까?

사람은 일평생 크고 작은 많은 후회를 남깁니다. 어떤 사람은 그 후회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생애의 마지막 결산 때에 후회를 남기지 않아야 합니다. 후회할 일이 있었더라도 만회하고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잘못하고 죄를 범하여 후회한다면 철저하게 회개하여 회복해야 하며, 사람에게 잘못하여 후회한다면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화목을 이루어 회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적이며 육신적인 후회뿐만 아니라 영적인 후회를 남기는 것은 영의 생명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23-2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리고 누가복음 13:1-5절에서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람들이 빌라도 총독에게 살해당한 사건과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열여덟 사람의 예를 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그리고 요한계시록 2:5절에서는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 말씀들은 후회를 남길 때에는 육신적이거나 영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면할 수 없음을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지난 주일에는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해야 할 일로서 ‘깨어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간에는 그 두 번째 시간으로 ‘자신의 일에 충성스럽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려합니다. 본문말씀을 요약하면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자신의 일에 충성스럽게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하시며, 5절에서는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즉 이 사람, 저 사람 돌아보지 말고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라고 하십니다. 

※ 무엇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인면수심(人面獸心)’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끔찍한 살인이나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들, 디모데후서 3장의 말씀처럼 사람들이 사납고, 절제하지 못하고, 무정하고, 조급함이 지금까지 그 어느 시대보다 극심합니다. 디모데후서 3:1-5절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왜 사람들이 이렇게 변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이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인간은 신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그 존재감이 엄청나게 존귀합니다. 베드로전서 2:9절에서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하시며, 고린도전서 6:19-20절에서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신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고귀한 생각과 품위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몇 해 전에, 두메산골 교회에서 착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가난한 집 여자 아이가 자신의 장래에 대하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서울 가서 신앙 좋은 가정에서 식모살이라도 하면서 야간학교라도 다닐 수 있게 해 주심시오.” 바로 그 무렵, 서울에 있는 강 권사는 식모문제로 속을 썩이다 썩이다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잘 믿는 착한 시골처녀 하나 보내 주시면 딸처럼 사랑해 주겠습니다.”
어느 날, 강 권사는 ‘혹시 좋은 아이 하나 만날 수 있을까?’ 하여 막연한 기대감으로 서울 역 대합실로 갔습니다.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다가 의자에 앉아 무릎 위 성경책을 두 손으로 붙잡고 기도 하는 여자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권사님이 다가가서 “혹시 직장을 구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 소녀는 강 권사님 댁에서 야간 성경학교를 다니며 가족처럼 살다가 독실한 총각 집사와 결혼하여 성실한 교회봉사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짝을 찾아 주려고 신실한 종인 엘리에셀에게 부탁하여 고향인 하란으로 보냈습니다. 엘리에셀은 나홀의 성에 도착하여 마을 입구의 우물가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리브가를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엘리에셀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 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는 생활 속에 배어 있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의 모습들입니다. 즉 두메산골의 소녀나, 강 권사님이나,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 등. 이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았고, 생활 속에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모든 일을 맡기고 따랐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확실한 정체성입니다. 

그런데 입으로는 주님이라고 부르고, 주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생활에서는 나타내지 않는 외식적인 신앙은 스스로를 속이는 기만적 신앙입니다. 이사야 29:13절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기만적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5:8-9절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거짓된 정체성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마귀들에게 공격할 기회를 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생활 속에서 나타내야 합니다.

※ 모든 판단은 주님께 맡기고 오직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신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분명하게 알고 그렇게 산다면 당연하게 나타나는 것이 신실한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실한 삶이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믿을 수 있는 성실함과 충성되고 열정적인 최선의 삶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첫 번째 본은 ‘성실하심’입니다. 예수님은 상황이나 환경에 구애받지 않으시고 마땅히 하셔야 할 일을 하셨습니다. 즉 문제가 무엇이든 간에 중단하거나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가르치고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심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셨습니다. 주님은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디모데후서 4:2-5절을 봅시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직무에서 흔들리지 말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의 결과를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주어진 일에 충성과 성실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예로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요셉은 성실하며 심지가 곧은 사람으로 대표됩니다. 그는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한 사람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며, 반면에 10명의 형제들에게는 미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결국 시기하는 형들에 의하여 인신매매를 당했고, 애굽의 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낙심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여 시위대장의 집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장관의 부인이 유혹해 왔으며, 그것을 뿌리친 결과로 오히려 부인을 겁탈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성실하게 행동하여 감옥의 총무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형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소문은 어려운 꿈 때문에 고심하던 바로 왕에게 전달되었고, 그 꿈을 해석한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39:2-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즉 보디발 장관은 요셉의 성실하고 충성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은 최악의 환경을 최선의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한 번 신뢰한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고 의지하는 곧은 심지의 소유자였으며, 작은 일에도 결코 소홀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요셉은 결코 자신을 괴롭히고 팔았던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형들에게 보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에도 오히려 그들을 안심시키면서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라고 하면서 위로했습니다. 본문 3-5절을 봅시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남을 판단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판단하는 것조차 쓸데없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남을 욕하거나 자신을 책망하느라 힘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자신의 일에 충성스럽게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의 과정과 결과는 이 모든 일을 인도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여건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량을 다하여 충성되고 열정적으로 산다면 후회를 남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항상 후회라는 것은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저는 종종 제초작업을 하면서 정말 끈질긴 잡초들의 생명력에 감탄을 합니다. 이 잡초들은 1%의 생존 가능성만 있으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웁니다. 잘라내고 잘라내도 조금의 생장점만 남아 있으면 또 자라납니다. 이 잡초들은 싹을 틔우고 자라고 씨를 퍼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는 적어도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위대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천사들의 섬김을 받으면서(히 1:14) 하나님을 섬기면서 영원토록 살아갈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피조물보다 더욱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되도록 성실하고 충성된 열정의 삶으로 후회를 남기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모든 일에 좋은 결과를 기대하시지요? 그렇다면 지금 주어져 있는 작은 것부터 충성되고 성실하게 가꾸십시오. 그리고 작은 죄악까지도 진실하게 회개하고, 마지막 호흡을 하는 그 순간에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사도 바울처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라고 고백하는 복된 하나님의 사람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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