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후회를 남기지 않는 인생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6,175회 작성일 2015-08-10 14:09

*** 후회를 남기지 않는 인생 / 베드로전서 4:7-11


베드로전서 4:7-11,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 들어가는 말

어느 어머니가 어린 딸과 함께 장보러 갔습니다. 필요한 식료품을 다 산 후에 딸에게 과자를 사 먹으라고 돈을 얼마 주었습니다. 딸은 가게의 진열대 앞에 서서 마음에 드는 것을 찾느라 이것저것 열심히 눈으로 뒤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상자 속에 있는 것을 가리키면서 "저것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점원이 그것을 꺼내려는 순간 소녀는 얼른 다른 것을 가리키며 "그것 말고 이것으로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도 번복하기를 몇 번이나 하고서도 결정을 짓지 못하자 지켜보던 어머니가 안쓰러워서  “얘야, 어서 살 것을 정하려무나.”하며 딸을 다그쳤습니다. 그 때, 어린 딸은 “그렇지만 엄마, 돈이 하나 밖에 없지 않아요!”라고 단순하지만 여운을 남기는 대답을 했습니다.

“돈이 하나 밖에 없다!” 어린 딸은 하나밖에 없는 돈을 단 한 번의 기회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후회하지 않도록 가장 맛있는 과자를 골라야 했던 것이지요. 오늘 저와 여러분, 모든 인생들에게는 ‘단 한 번의 생애!’가 주어져 있습니다. 잘 못 살았다고 물건을 사듯이 무르고 다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중하고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삶의 길을 선택하고 자신만의 인생지도를 그리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 혹은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잠언 16:2절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이 말씀처럼 우리의 모든 일은 하나님이 살피시며 심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전도서 12:14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고 하시며, 고린도후서 5:10절에서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책임성 있게 살아야 합니다. 즉 인생의 끝에서, 혹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살아야 합니다.

※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확실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본문말씀은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주신 마지막 시대의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 7절에서의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라는 말은 흔히 ‘종말’이라고 부르는 때로서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의 시대’를 말합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사람마다 자신의 일을 결산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뜻합니다. 이 심판의 날은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행한 사람에게는 영광의 날이 되겠지만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산 사람에게는 수치와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말씀에서는 우리의 삶을 결산하는 날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반드시 해야 할 일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문 7절 하반절을 봅시다.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이 말씀에서 “정신을 차리고”라는 말은 ‘건전한 마음이 되다.’ 혹은 ‘정신이 온전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근신하여”라는 말은 ‘분별이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두 단어의 공통된 의미는 ‘술 취하지 않다.’라는 뜻입니다. 술에 취하면 감각이 둔하여지고 분별력이 떨어집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의 이 세대가 이렇게 술에 취한 듯하여 분별력이 없고 영적인 감각이 둥해진 세대입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분별해야 하며, 함께 해야 할 사람과 함께 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분별해야 합니다. 

생각하게 하는 우화 하나입니다.
어느 집에서 개를 길렀는데 한 날은 밤에 도둑이 들어서 물건을 훔쳐갔습니다. 그런데 개가 도둑이 들어온 것을 보고도 멍청하게 보고만 있고 짖지를 않았습니다. 괘씸하고 어이가 없는 주인이 개를 잡아놓고 야단을 쳤습니다. 
“야 이 개 삐리리야, 도독이 오면 짖어야 할 것 아니냐. 왜 도둑이 들어와도 짖지 않는 거야? 응? 밥값을 해라 밥값을…”
그러자 듣고 있던 개가 냉큼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도둑인지 분간이 돼야 말이지요! 주인이 도둑인지 도둑이 주인인지 혼동이 돼서 짖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안 짖기로 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이 시대가 하도 혼란스러워서 개도 도둑과 주인을 분별할 수가 없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소아시아의 에베소의 형편을 기록한 것을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당시 에베소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헤라클리투스(Heraclitus)는 우는 철학자로 알려져 있었는데 바로 그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입니다. “신전의 제단에 접근하는 것의 어두움은 타락의 어두움이었으며, 신전의 도덕은 짐승들의 도덕보다 더 나쁜 것이었다. 그 이유는 난교의 습성을 가진 개들도 서로를 망쳐놓지는 않기 때문이다. … 에베소의 거주자들은 오직 물에 빠뜨려 죽이기에 알맞은 자들이다.” 한 마디로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이보다 더 추하고 악랄하고 무자비하고 무관심합니다. 세상이나 교회나 별로 다를 것도 없는 혼돈스러운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오로지 자신의 평안만을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정신 차리고 깨어있어 영의 일과 육신의 일을 분별해야 하며, 내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 내가 있어야 할 곳과 떠나야 할 곳을 분별해야 합니다.

어저께 인터넷을 통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유포된 글을 소개합니다.
때가 진실로 가깝습니다. 지난주 나이지리아를 여행 중이던 어느 목사님이 바람 부는 황량한 길을 홀로 걸어가시던 어떤 노인을 차에 태워드렸습니다. 조금 가던 중에 차안에서 그 노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어젯밤에 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목사님은 이 노인의 갑작스런 질문에 놀라서 차를 급하게 세우고는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천국에 무슨 일이 있었다니요? 어떻게 천국에서 벌어진 일에 대하여 아십니까?” 하고 노인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밤 천국에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잔인함과 타락함에 너무 화가 나셔서 천사들에게 ‘심판의 나팔을 불라.’고 하셨답니다. 천사들은 일제히 나팔을 들었고, 하나님의 심판의 나팔을 불려고 하는 순간, 그때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던 성자 예수님께서 ‘저의 흘린 피를 기억하소서.’라고 하시며 길이 참으시는 성부하나님께 간청을 하셨었소. 성부 하나님께서는 참 성도들이 겪고 있는 아픔들과 악한 자들의 악을 더 이상 참으실 수가 없으셨지만 이렇게 말씀하셨소. ‘내가 그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노라.’ 그리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천사들에게 명령하시기를 ‘너희들은 세상으로 내려가서 나의 심판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며 사람들에게 심판이 가까웠다 증거하라.’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의 신분이 목사임을 아는 듯한 노인의 말에 놀라운 마음으로 “선생님,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아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노인은 “나는 나이지리아로 보내진 그 천사들 중의 한명이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이 메시지를 전하시오. 낭비할 시간이 없소, 부탁드리오.” 하고는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말을 덧붙였습니다. 
“형제자매들이여, 이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정말 곧 오십니다. 제발 회개하십시오.”

이 이야기가 사실이든 혹은 사실이 아니든 상관없이 지금은 당연히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그리 멀지 않습니다. 시대를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2-3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예수님께서 날씨는 분별하면서 영적인 상황은 분별하지 못하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적인 것들은 잘도 분별하고 지극한 관심을 가지지만, 영적인 상황과 영의 생명에 관하여는 무관심하고 분별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달려 있는 영적인 상황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고 분별해야 합니다. 

※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실천해야 합니다.

본문 8-10절을 현대어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언제나 서로를 깊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줍니다. 허기지고 잠잘 데 없는 사람을 보거든 집으로 데려다가 따뜻하게 대접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누구에게나 특별한 능력을 주셨으니 그것을 서로 돕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십시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선물을 잘 관리하도록 하십시오.” 개역성경에서는 “열심으로 사랑하라.”고 번역했고, 개역개정성경에서는 “뜨겁게 사랑하라.”고 번역했고 현대어성경에서는 “깊이 사랑하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말은 ‘열렬하게 최선을 다하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쉽게 표현해서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최선의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실천에 있어서 더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특별한 능력)를 활용하여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 둘을 연결하면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으로 최선을 다하여 사랑하며 섬기며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 앞에서 이 세상에서 행한 일들을 결산할 때에 자신이 받은 은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지고 서면 책망과 함께 끔찍한 선고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5:26-30절을 봅시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부지런히 내게 주어진 능력으로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주님 앞에 설 때에 내 놓을 것이 있습니까?

우석대학교 문예창작 교수이자 작가인 ‘안도현’ 시인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라는 제목의 시집이 있습니다. 이 시집의 첫 번째 시인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음식을 조리하거나 방을 따뜻하게 하는 주된 연료가 연탄이었습니다. 연탄이 사람들을 위해 자기를 태워 열을 내고 남은 것이 연탄재입니다. 이 연탄재가 길거리나 밭모서리에 쌓여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지나가다가 심심풀이로 발로 뻥 차서 부수거나, 화가 난 사람은 화풀이로 차고 밟고 부수는 그야멀로 동네북인 연탄재였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너는 연탄처럼 다른 사람에게 뜨거운 사랑과 배려를 해 보았느냐?’라고 묻습니다. ‘연탄처럼 다른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고 배려하고 봉사해보지 않았다면 연탄재를 발로 찰 자격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에 비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뜨거운 사랑을 하지도 못하고 그저 내 가족, 내 자식, 내 앞길을 위해서 살아오지는 않았는지요?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책망과 함께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요한일서 3:18-19절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이제는 내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삶으로 행동으로 나타내고 실천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도 그냥 웃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시대에 예수님의 재림이 잘 안 믿어지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24:37-39절을 봅시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우리는 이렇게 되지 않아야 합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노아가 배를 만드는 백 년 동안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지만 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에도, 베스비우스 화산이 폭발하여 폼페이가 멸망당하던 바로 그 순간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웃고 즐겼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어리석지 않아야 합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준비해서 손해 볼 것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영이 깨어 준비하며 최선을 다하여 사랑하고 봉사하는 삶을 이루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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