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더 좋은 쪽을 선택하십시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935회 작성일 2015-07-22 23:07

*** 더 좋은 쪽을 선택하십시오. / 마태복음 6:19-24, 33


마태복음 6:19-24, 33,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들어가는 말

염일방일(拈一放一)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한자어로 ‘집을 염’자와 ‘놓을 방’자를 써서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뜻의 말입니다. 하나를 잡고 있으면서 또 하나를 잡으려 하면 두 개를 모두 잃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 말이 생긴 유래를 보면 이렇습니다.
일천여년 전에 중국 송나라에 ‘사마광’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어떤 아이가 커다란 장독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다급하게 ‘사다리 가져와라.’ ‘밧줄을 가져와라.’며 야단법석을 떠는 동안 물독에 빠진 아이는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꼬마 사마광이 옆에 있던 돌맹이를 주워들고는 그 커다란 장독을 깨뜨려버렸습니다. 당연히 장독에 빠졌던 아이는 물과 함께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잔머리를 굴려 장독 값, 물 값, 책임소재를 따지며 시간낭비 하다가 정작 중요한 사람의 생명을 잃을 뻔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덜 중요한 일에 매달려 갑론을박(甲論乙駁) 하거나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렇게 놓치는 것이 또 다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한번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는 생명에 관한 것이라면 낭패 정도가 아니라 절망이 됩니다. 지금 우리 모든 인생이 이러합니다. 다만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어서 지금 당면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지 모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통하여 말씀으로 사람들을 깨우치십니다. 이 시간의 본문말씀도 바로 그런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본문 24절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게 하십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산상수훈’이라고 불리는 말씀의 중심에 있는 교훈입니다. 전체 주제를 말하라면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하라.’고 하면 좋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과 세상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가 없기 때문에 ‘보물을 세상에 쌓지 말고 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 나라에 쌓아 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육신의 의식주의 문제에 매여 살지 말고 이 모든 것의 원천이 되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본문 33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그 뜻을 따라 사는 삶이 우리 인생의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 더 좋은 쪽이 무엇이며 어떻게 구별합니까?

말을 키우는 할아버지와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시내에 큰 볼일이 있어 며칠 동안 가시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말과 초원을 뒹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 날 밤에 말이 고열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말의 열을 내리려고 밤새도록 물을 먹이며 닦으며 간호했지만 말은 싸늘하게 죽어갔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오시자 소년은 통곡을 하며 소리쳤습니다.
“할아버지, 전 최선을 다했어요. 최선을 다해 말을 사랑했다구요!”
“얘야, 말은 열이 날 때 절대로 물을 먹여서는 안 된단다. 넌 네 방식대로 사랑한거야. 말을 사랑하려면 네 방식이 아닌 말의 방식이어야 하는 거란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은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그 사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가요? 진정한 사랑은 내 방식과 내 뜻을 내려놓고 그가 원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선택해야 할 더 좋은 쪽이란 ‘영원한 생명과 그 생명을 있게 하는 하나님’입니다. 본문말씀은 이 사실을 설명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좋아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본문 19절 전반절을 봅시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이 말씀에서 “보물”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모으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버리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진정한 보물을 선택하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더 좋은 쪽은 무엇을 말합니까?

본문말씀에서 주님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본문 22-23절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왜 더 좋은 쪽을 선택하라고 하시면서 갑자기 눈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까? 그것은 사람이 선택하는 기준이 ‘안목(眼目)’ 즉 ‘관점’인 눈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들이란 곧 일시적인 것을 뜻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최상의 것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목적을 두고, 행복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보물을 땅에 쌓아 두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가장 좋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자신의 관점의 기준을 삼고 자신의 관점에 좋아 보이는 것을 탐하며 움켜쥐려고 합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인생의 보장이 되는 것처럼 여기고 몰입합니다. 쉽게 말해서 돈이나 세상적인 출세나 세상적인 행복이 가장 좋은 것으로 여겨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배우고, 가지려고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라면 하나님도 신앙도 밀어내버립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것들이 왜 가장 좋은 쪽이 아닌지를 설명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잃어 버려지거나 녹슬기 쉽기 때문입니다. 본문 19절 후반절입니다.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이 땅에서 가지는 보물들은 좀과 동록이 해를 끼치는 땅 위에 있습니다. 좀은 의류를 갉아먹는 벌레이며, 동록은 금속을 녹슬게 하는 것입니다. 동록과 좀은 금속과 의복 속에서 자랍니다. 즉 세상적인 부는 그 속에 부패와 부식의 원리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기 때문입니다. 도둑이 목표로 하는 집은 당연히 무엇인가를 많이 쌓아놓은 사람의 집입니다. 즉 이 세상의 것들은 결코 안전하게 보관할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들은 이런 해를 끼치는 것들로부터 안전한 하나님 나라에 쌓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에 보관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결코 잃지 않고 영원토록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 쪽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자신의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1절입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식물의 줄기와 잎이 본능적으로 빛을 따라가며, 뿌리가 본능적으로 땅을 향하듯이 사람의 마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보물을 향하게 됩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가치와 존중이 있고 사랑과 애착이 있고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마음에 자신의 것으로 채웠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29:13절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 말씀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그 마음은 자신의 것으로 가득 채워놓고 형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인용하셔서 마태복음 15:8-9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은 자신의 눈이 보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본문 22-23절에서 “성한 눈”과 “나쁜 눈”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성한 눈”은 하나님 쪽을 향하는 관점이며, “나쁜 눈”은 외식적이며 세상을 향하는 관점입니다. 우리는 이 두 관점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아니 이미 선택하여 그렇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자신의 삶의 무게 중심이 어느 쪽에 있습니까?

※ 어떻게 더 좋은 쪽으로 갈 수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은 자신의 눈이 보는 관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자신이 선택한 관점으로 살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자신의 삶의 무게 중심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알 것입니다. 하나님 쪽에 있습니까? 세상 쪽에 있습니까? 본문 24절을 봅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재물을 섬긴다.’는 말은 재물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보물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재물도 자신이 좋아하는 세상적인 것’을 뜻합니다. 

사실적으로 표현해 봅시다. 마음이 세상에 있으면 하나님께 예배하는 시간이 아깝고 즐겁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놀러가거나 쇼핑하고 TV보는 것이 더 편하고 즐겁지요. 자신이 힘들여서 번 돈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피 같은 돈을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십분의 일이라는 많은 부분을 하나님의 것으로 드려야 하는 것, 여러 목적으로 헌금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물질을 내 놓기가 어려운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소유이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돈이 맘몬 (mammon)신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2:16-21절에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19-21절입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요즘 노후 대책이니, 재테크니 하면서 자신을 위하여 재물을 쌓고 있으며, 자신의 미래를 위하여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다 더 중요한 영원한 삶을 위해서는 인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 중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정말 더 좋은 쪽으로 가고 싶다면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진정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즉 소유권에 대한 확증입니다. 내 생명도, 이 육신의 삶도, 내 모든 소유도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께로 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 모든 것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8:18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게 제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고 하셨고, 전도서 2:26절에서는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라고 하십니다. 사도행전 17:24-25절입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얻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주인이십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면 하나님 나라에 쌓는 것이 되며 동시에 하나님 쪽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 33절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원한다면 내 방식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에 모든 기회가 사라지기 전에 보다 더 좋은 쪽인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나라를 택한 확실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Total 1,420건 33 페이지 RSS
설교모음 목록
No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940
인정받는 사람
  • 늘푸른
  • 08-25
  • 6404
939
후회를 남기지 않는 인생 2
  • 늘푸른
  • 08-18
  • 5294
938
후회를 남기지 않는 인생
  • 늘푸른
  • 08-10
  • 6175
937
이 시대에 필요한 새 사람
  • 늘푸른
  • 08-04
  • 4819
936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
  • 늘푸른
  • 07-29
  • 5642
더 좋은 쪽을 선택하십시오.
  • 늘푸른
  • 07-22
  • 4936
934
신앙의 기본을 회복합시다 4 - 오직예수
  • 늘푸른
  • 07-15
  • 8000
933
행복을 부르는 행동언어, 감사
  • 늘푸른
  • 07-07
  • 5327
932
신앙의 기본을 회복합시다 3 -하나님인정
  • 늘푸른
  • 07-02
  • 7018
931
신앙의 기본을 회복합시다2
  • 늘푸른
  • 06-24
  • 6378
930
신앙의 기본을 회복합시다.
  • 늘푸른
  • 06-19
  • 8363
929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사람
  • 늘푸른
  • 06-11
  • 4728
928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려면
  • 늘푸른
  • 06-04
  • 5278
927
늘푸른 신앙이어야 합니다.
  • 늘푸른
  • 05-28
  • 5447
926
진정한 믿음과 능력
  • 늘푸른
  • 05-19
  • 4831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