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기본을 회복합시다 3 -하나님인정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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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7-02 15:30
*** 신앙의 기본을 회복합시다 3 - 하나님 인정 / 신명기 26:16-19, 요한복음 15:4-6
신명기 26:16-19, “16 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17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라. 18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19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5:4-6,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 들어가는 말
오늘은 전국의 교회가 ‘동성애의 죄악성’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고 함께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계속 동성애에 대한 기도를 해 왔기 때문에 말씀을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회복해야 할 신앙의 기본’ 세 번째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제로 전하려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란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의 주권 즉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회복해야 할 신앙의 기본 첫째로 ‘기도’, 두 번째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앞서 두 가지가 정말 중요하지만 이 두 가지도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함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기도와 말씀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로마서 14:23절 하반절에서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고 하시며, 히브리서 4:2절에서는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의 믿음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즉 하나님께서 행하신다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내 삶에서 하나님의 주인 됨을 인정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살펴봅시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신명기 본문말씀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 40년을 지나온 후 모압 평지에 이르렀을 때에 모세가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다시 전하는 내용 중의 일부분입니다. 특히 본문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을 백성에게 전한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라고 하면서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의 명령과 법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 하나님의 성민이 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든 삶에서 여호와를 참 신으로, 즉 주인으로 인정하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성민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본문말씀은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참 포도나무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관계를 자세하게 설명하십니다. 너무나도 타당한 말씀인 ‘나무 가지가 그 나무의 본줄기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불변의 이치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 가르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영적으로 효과적인 삶을 이룰 수 없다는 뜻입니다. 즉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지 않으면 영적인 생명에 관하여는 그 어떤 열매도 맺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다는 것,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은 ‘철저한 인정(認定)관계’를 말합니다.
※ 왜 범사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그의 놀라운 연주로 청중을 감동시켰습니다. 한 곡이 끝나자마자 그는 그가 연주한 바이올린을 산산조각이 나게 청중 앞에서 부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바이올린을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을 놀래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부숴버린 바이올린은 길거리에서 아주 싼 값으로 구입한 이름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세계적인 명구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만든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겠습니다.”
그는 새 악기로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청중들은 그 차이점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연주를 마친 바이올린 연주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제가 가지고 있는 바이올린의 가치를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음악은 악기에 거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음악은 연주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바이올리니스트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문제 삼습니다. 옛말에 “서투른 목수가 연장 나무란다.”고 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환경 탓, 여건 탓, 남의 탓으로 자신의 잘못을 가리려 합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도 꼭 이 모양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권위도, 주권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일만 틀어지면 하나님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혹 어떤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직접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께 하는 것과 같습니다. 출애굽기 16:8절에서 말씀합니다.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왜 이렇게 됩니까?
여러분,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 누구십니까?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물론 하나님이시지요. 로마서 11:36절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 말씀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시작이 하나님께로 부터이며, 하나님께서 유지하게 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어떤 불평과 원망과 의심과 두려움은 모두 하나님께 대한 것이 됩니다. 예를 들어, 오랜 가뭄이나 장마, 태풍 등으로 고통을 받을 때에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곧 이를 주관 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지금 나 자신이나 혹은 가족들의 일로 인하여 불평하게 되면 이 역시 우리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불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삶의 모든 불평과 원망, 의심과 두려움, 분노와 좌절 등은 이 모든 일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6-1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17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라. 18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우리의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그 모든 명령을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의 첫 구절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성경의 첫 구절로 의도된 것은 온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만 앞으로의 모든 말씀들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의 첫 구절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는 말씀도 인류 구원의 출발점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즉 온 우주를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인류를 구원하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천명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 어떻게 하는 것이 범사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까?
권한이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주택에 대한 권한을 봅시다. 이 집의 권한이 나에게 있다면 이 집을 빌려주거나, 팔거나, 부수거나 고치거나, 방치하는 모든 권리가 나에게 있습니다. 만일 내 집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때에 다른 사람이 ‘왜 그렇게 하느냐?’고 따질 수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당연히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권리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7:13-1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즉 주어지는 모든 환경과 상황이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것이므로 자신의 삶을 신중하게 살피면서 하나님께 순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고 환경과 상황에 대항하는 삶도 있습니다. 이사야 1:5-6절을 봅시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그리고 30:15-16절입니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그 나라에 가서 하나님이 권고하실 때까지 살아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불순종에 대한 징벌이었기 때문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자신들의 뜻대로 말을 타고 애굽으로 도망가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42:15-1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하나님을 내 주인으로, 이 온 우주의 주권자로 인정하고 순종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본문말씀이 바로 이 내용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물론 외형적으로는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그 영의 생명이 끝나서 불에 던져질 일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울 때 하는 말이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하고 하는 것처럼 육신이 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어서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며, 주님이 주시는 일을 성실하게 순종하는 것이 최상의 삶을 이루는 복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르는(follow)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막 1:17)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따라오라(follow).”는 말은 ‘뒤를 따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의 뒤를 따른다는 것은 주님의 길을 답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따라는 길의 끝에는 바로 우리가 바라는 주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이 삶의 길은 하나님을 모든 것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기억하면서 모든 일에 주님의 뜻을 물으며 그 뒤를 따라가는 신실한 신앙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