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기본을 회복합시다.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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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6-19 15:40
*** 신앙의 기본을 회복합시다. 1 / 누가복음 22:39-46
누가복음 22:39-46,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건축물은 기초가 튼튼해야 안전한 건축물이 되며, 식물은 뿌리가 튼튼해야 건강하게 자라게 됩니다. 사람이 사는 사회나 나라도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려면 기초질서나 국민으로서의 의무, 법을 존중하고 따르는 기본이 지켜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의 삶이 건강하려면 신앙의 기본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신앙의 기본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게 되는 것, 구원의 확신과 말씀과 기도 생활로 이루는 성화의 삶 등 이런 것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이 이런 신앙의 기본은 무시하고 교회생활에 바쁘거나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즉 주일이면 교회에 나오고, 맡겨진 직분을 수행하고, 봉사하고 교제하는 이런 교회생활을 신앙의 삶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3:5절에서 “너희는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 하십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과 죄 사함과 거듭남과 성화의 삶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서 신앙의 기본이 지켜지고 있는지를 날마다 확실하게 증명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기본 중에서 성화의 삶을 이루게 하는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려합니다.
※ 먼저 본문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십자가 죽음을 눈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깝고 기도하기 좋은 장소여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즐겨 찾으시던 곳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신 후에 30여 미터 거리를 두고 홀로 고통스러운 깊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얼마나 간절하셨던지 땀이 핏방울 같이 보였습니다. 즉 모세혈관이 터져서 피가 땀방울에 배어들어 핏빛으로 보일 정도로 너무나 애타고 간절하게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선생님의 그 애타는 마음을 알지 못하고 피곤함에 빠져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연약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리는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언제나 사탄의 세력들과 싸우는 영적전쟁터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토록 전심전력으로 싸우실 정도로 영적전쟁은 치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길이 기도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잠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지금의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또는 열 처녀의 비유에서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깨어나야 합니다. 영의 삶을 위하여 떨치고 깨어서 기도해야 하며 신앙의 기본을 지켜야 합니다.
※ 기도는 신앙의 기본을 지키는 생명의 줄입니다.
중세 때 어느 수도원에서 하나님께 다가가기 위하여 수련을 하던 많은 수련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수도원을 떠나갔습니다. 그러자 한 수련자가 수도원을 떠나가는 자기 동료들을 말리다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원장을 찾아갔습니다.
“왜 그들이 떠나가는 것을 말리지 않으십니까?”
원장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냥꾼이 수많은 사냥개를 풀어 토끼를 잡으러 갔다. 그 가운데서 맨 처음 토끼를 발견한 사냥개는 마구 짖어대며 그 토끼를 좇아간다. 그러면 토끼를 보지 못한 다른 사냥개들도 짖어대며 그 사냥개를 따라간다. 그러나 토끼를 직접 보지 못하고 따라가기만 했던 개들은 힘이 들거나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면 포기하고 되돌아온다. 그렇지만 토끼를 직접 본 개는 자기 목표물을 확인했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이나 힘든 일이 있어도 꿋꿋이 토끼만 보며 좇아간다.”
그 이야기를 들은 수련자는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신앙의 길은 자신이 체험하지 않고서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끝까지 달리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교회 구성원들이 싫다고, 믿는 사람들의 행동이 올바르지 않다고 불평하고 비난하면서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대부분 이러합니다. 특히 신앙의 기본 중에서도 오늘의 주제인 ‘기도’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길이 보이지 않아 답답할 때에 눈물과 한숨으로 기도한 것이, 응답이 되고 이루어질 때의 그 기쁨은 말로다 형용할 수 없습니다. 이런 기도의 맛을 아는 사람은 ‘기도하지 말라.’고 해도 기도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에 대한 응답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기도하는 것이 지루하고 힘겨운 노동일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경험하고 알았던 다윗은 시편 34:8절에서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경험을 통해서만 확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기도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생명줄이자 하나님과 연결된 유일한 통로’입니다. 기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연결될 길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리스도인치고 기도에 대하여 고심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고심은 하지만 방법을 제대로 몰라서 유야무야 힘없는 무능한 기도만 하게 됩니다. 확신이 없는 기도는 하나님 앞에 이르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정신 차리고 깨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간절한 마음으로 아뢰어야 합니다. 본문 44절에서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고 하십니다. 상황이 절박하여 마음의 고통이 극에 달하게 되면 모든 생각이 멈추고 오직 그 일을 위해 부르짖는 간절함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간절함이 최고조를 이루면 머리의 모세혈관이 파열되면서 피가 땀방울에 섞여 흐르게 됩니다. 예레미야 29:12-13절에서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마가복음 9:29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즉 마귀들을 물리칠 수 있는 길은 기도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기기를 원한다면 온 마음을 다하는 간절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 세상을 이기는 기도는 조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가 일상생활화 되어 있었습니다. 본문 39절에서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라고 하십니다. “습관을 따라” 원어에서는 ‘카타 토 에도스’라는 말인데, ‘관습이나 법에 의해 정해진 습관을 따르는 것’, ‘관례적인 일’, ‘익숙하게 행동하는 것’등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기도가 생활화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가 생활화되어 있다는 것은 생활 속에서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기도는 부적처럼 붙이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만 꺼내드는 찬스카드도 아닙니다. 기도는 주님과 함께하는 생활이며 주님이 주인 되시는 삶입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하십니다.
많은 지혜와 지식을 원하는 한 청년이 철학의 위대한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찾아왔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무 말 없이 그 청년을 바닷가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물이 허리에 찰 때까지 들어가서는 갑자기 청년의 머리를 잡아 물속에 밀어 넣었습니다. 청년이 놀라기도 하고 숨이 차서 발버둥을 쳤지만 놓아주지를 않았습니다. 청년이 거의 실신할 지경에 이를 즈음에 청년을 물 밖으로 끌어내고는 모래사장에 누여놓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참 후에 그 청년이 소크라테스를 다시 찾아 와서는 자기를 바다에 집어넣은 이유를 따져 물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물속에 있을 때 자네가 가장 갈급해 한 것이 무엇이든가?”
“예, 숨을 쉬고 싶었습니다.”
“자네가 물속에서 숨을 쉬고 싶었던 것만큼 지혜와 지식을 갈구한다면 그걸 가르쳐 달라고 누구에게도 간청할 필요가 없네.”
이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그 원하는 것에 대하여 정말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얻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간절하게 원할 때는 자신이 노력하게 됩니다. 만일 입으로는 간절하게 소망한다고 하면서도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가정이나 자녀, 아내, 남편, 직장, 사업, 경제적인 여건 등등. 어떤 것이든지 변화를 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원한다면, 그만큼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고 구해야 합니다. 생활을 염려하고 자녀에 대하여, 장래에 대하여 염려하면서도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는다면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7절에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일이 생활습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본문 42절입니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이 말씀에서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내용입니다. 기도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기도를 누가 듣고, 누가 허락과 거절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권한을 가지신 하나님의 원대로 아뢰는 것이 허락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대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 일분 앞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먼 장래의 일까지도 자신의 생각과 뜻대로 해달라고 구합니다. 어떤 것은 자신이 정말 필요해서 구했는데 훗날에 그것 때문에 고통을 겪거나 낭패를 당하게 되는 것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미래의 삶을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구하셨는데 하물며 우리의 기도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말씀을 정리합니다.
확신 있는 기도는 분명히 대단한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수없이 약속하십니다. 요한복음 14:14절에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하시며, 15:7절에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십니다. 앞에서 보았던 마태복음 7:7-8절에서도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하시며 “구하면 얻게 되고, 찾으면 찾게 되고, 문을 두드리면 열리게 된다.”고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는 시간과 공간과 거리를 모두 초월하여 역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일은 내 모든 삶을 집중해야 하는 중노동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도가 습관이 되면 숨을 쉬듯 평안하고 힘들지 않게 됩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로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아무리 선한 일을 힘쓰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만사형통한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또한 기도를 통하지 않고 이루어질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사단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도 기도뿐입니다. 이처럼 신앙의 기본 중에서도 우리의 영의 생명을 유지하고 능력의 삶을 이루게 하는 기도생활을 습관화시켜서 주님이 함께 하시는 능력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