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사람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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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6-11 17:12
***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사람 / 히브리서 6:7-12
히브리서 6:7-12,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 들어가는 말
성경에는 수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약속들이 그냥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약속들을 내가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뜻에 합당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이 시간에는 그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주일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교회 선생님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너무 궁금하고 가보고 싶어서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습니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늘나라를 준비하셨다는 것을 오늘 배웠어요. 하늘나라는 정말 아름답고 좋은 곳이래요. 정말 가보고 싶어요.”
듣고 있던 엄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선생님이 그러는데, 하늘나라에 가려면 예수님 믿고, 열심히 봉사하고, 사람을 사랑해야 한대요. 엄마는 하늘나라로 여행갈 준비를 다 했나요?”
“…” 엄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잘 준비되어 있습니까?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모두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 속에는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발자국을 그대로 따라가는 사람이며, 자녀는 부모를 닮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림자처럼 따르며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 판박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판박이는 모양만 판박이가 아니라 생활 자체가 판박이여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11-12절에서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소망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에는 사람의 삶을 밭에 비유하면서 두 종류의 결말을 보여주십니다. 7-8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이 말씀에서 “땅”은 ‘성도’를 말하며, “자주 내리는 비”는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감화’등을 말씀합니다. 즉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두 종류의 삶을 살게 되며 각각의 결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한 종류는 받은 은혜에 합당하게 생활하여 좋은 결과를 이루었지만 다른 종류는 쓸모없는 결과만을 나타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판이한 두 결과에 대하여 각각의 보응을 하십니다. 좋은 쪽을 본다면 10절에서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매일의 삶에서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생활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그 결말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행진곡을 작곡한 ‘죤 필립 수자(John Philip Sousa)’에 대한 일화입니다. 수자는 ‘행진곡의 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음악가입니다. 어느 날, 여행 중에 호텔에서 묵고 있을 때였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성조기영 영원하라.’는 자신의 곡이 연주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소리는 길거리의 손풍금 악사가 연주하고 있었는데, 느리고 나른하며 졸리는 듯한 가락으로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수자는 즉시 밖으로 뛰쳐나가서 손풍금 악사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여보, 여보, 내 곡을 그렇게 연주하는 게 아니오!”
그러면서 그는 악기를 빼앗아 빠르고 힘 있게 연주했습니다. 그 곡은 활기를 되찾고 생명감이 넘쳤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손풍금 악사는 미소를 지으며 수자 씨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했습니다. 다음날 저녁 수자 씨는 그 곡이 다시 연주되는 것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 속도가 정상이었습니다. 그가 창문 밖을 내다보니 그 손풍금 악사 앞에 자그마한 플랜카드가 펼쳐져 있었는데, 위에는 그 연주자의 이름이 씌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죤 필립 슈저의 제자’라고 크게 씌어 있었습니다.
손풍금 악사는 한 번 지도받은 것으로 그 분의 제자라고 자랑하고 가르침을 실천했습니다. 우리는 이름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받은 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계획하는 것도, 일하는 것도, 쉬는 것도, 즐기는 것도, 배우는 것도, 기쁨과 슬픔과 고난까지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쉐마라고 부르는 신명기 6:4-9절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잊지 말고 기억하며 자손대대로 가르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그리고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5:5절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만 살아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구주로 영접했다.’는 말은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시면 모신 사람은 종이지요. 그러므로 종은 당연히 주인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는 삶’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합당한 삶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하나님을 섬기며,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만 전혀 다른 두 삶을 삽니다. 신앙의 열심이 있어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모든 일에 열심도 의지력도 없이 머뭇거리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부류의 성도들을 반석과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24-27절(한글 킹 제임스)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현명한 사람과 같아서,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며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쳐도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집이 반석 위에 세워졌음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누구나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며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치면 무너지되 그 무너짐이 극심하리라 하시더라.”
지금 우리 시대는 주님을 향하는 뜨거운 열망과 열심이 없이는 믿음을 지켜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사단의 세력이 갈수록 더욱 민첩해지고, 교활해지고, 무섭게 변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세력들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며 갖은 수단으로 미혹하고 있습니다. 머뭇거리다가는 당하기 십상입니다. 주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5:8절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라고 하셨고, 요한계시록12:12절에서는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고 하셨습니다.
영국 런던에는 경건한 능력의 목회자였던 스펄전 목사님이 목회하신 메트로폴리탄 교회가 있습니다. 당시 1866년에 소속 성도가 4,366명이었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였습니다. 하루는 스펄전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을 향하여 가슴이 뜨거운 사람, 열 두 명만 있다면 이 런던의 삭막하고 고독한 환경을 기쁨이 충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4,366명이 있다고 할지라도 전부가 다 미지근한 성도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시 본문 11-12절을 봅시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이 말씀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열심을 내고 믿음을 지켜야 할 때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가 그의 사환인 게하시에게 한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아람 나라의 장군인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치려고, 이스라엘의 선지자인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일곱 번 씻으면 나으리라.’고 지시했습니다. 나아만의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그는 감사를 표하기 위하여 엘리사에게 돌아와서 ‘예물을 받아 달라.’고 간청했지만 엘리사는 결코 받지 않았습니다. 나아만은 그곳의 흙을 기념으로 가져가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섬기겠다고 하고는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의 사환이었던 게하시가 욕심이 생겼습니다. 게하시는 돌아가고 있는 나아만을 따라가서는 ‘엘리사 선지자의 심부름이라’고 거짓말을 하고서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아 챙기고는 숨겼습니다. 게하시가 아무 일없는 듯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열왕기하 5:26절입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라고 책망하면서 나아만에게 있던 문둥병을 게하시에게 주어버렸습니다.
속된 말로 ‘콩인지 팥인지 분간도 못하는 어리석음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어지러운 시대를 제대로 분별하지도 못하고 재물에만 눈이 어두워서 물질에 욕심을 내었던 게하시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이방인의 장군은 믿음으로 문둥병을 고침 받았는데, 하나님의 능력 있는 선지자 곁에 있던 유대인 게하시는 저주를 받아 문둥병자가 되었습니다. 오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성도인 우리가 능력 있는 사람으로 살려면 지금이 어떠한 시대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개개인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그 은혜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선한 결과물을 내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한 생활을 하여 선한 결과물을 내게 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 즉 하나님의 나라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의 도전에 무너지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열정적인 신앙의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에 ‘유클리드’라는 기하학(수학)자가 있었습니다. 수학원론을 만든 사람입니다. 한때 유클리드는 어린 ‘톨레미’의 기하학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톨레미는 이집트의 통치자입니다. 한 번은 수학공부에 지친 톨레미가 유클리드에게 ‘수학을 터득하는 지름길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유클리드는 “기하학에는 왕도(지름길)가 없습니다.”라고 꾸짖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노력하지 않고는 쉽게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은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헌신하는 열정적인 신앙이 아니고는 하나님께 합당한 열매를 맺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기대조차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16:24절에서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이 사는 일에만 급급하지 말고 시대적인 영적흐름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 속에서 보이시는 사인(sign)을 잘 분별하고 실천해서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복된 주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