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려면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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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6-04 15:19
***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려면 / 야고보서 1:12-18
야고보서 1:12-18,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 들어가는 말
여기에 계신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공통된 관심사가 무엇이겠습니까? 물어보나마나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겠지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시간의 말씀 제목처럼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저는 중보기도 할 때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은 ‘영의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아무리 육신이 건강하고, 하는 일이 형통하여 부자로 산다고 할지라도 영의 생명이 없다면 짐승들과 같은 가련한 인생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가장 먼저 간구합니다. 사도 요한도 그런 심정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요한삼서 2절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그리고 고린도전서 15:17-19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관심사 첫 번째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나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챙겨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영원한 생명을 챙기도록 도와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야고보서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리스도인의 행동하는 신앙’에 대하여 깊이 있게 가르칩니다. 그렇다고 행함이 믿음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행함으로 나타나는 믿음이 진정한 신앙’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서론 부분인 본문말씀은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것 즉 영생을 얻는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고 표현합니다. 본문 18절입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즉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부활의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고 하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을 앞에서 말씀합니다. 이렇게 거듭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려면 시험을 잘 견뎌내며 죄를 이겨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생명의 면류관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의 육신적인 욕심에 끌려 미혹되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본문 14-15절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사람들이 자기 욕심에 이끌리는 이유는 세상의 것, 육신적인 것들 다시 말해서 좀 더 편안하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우리가 바라는 좋은 것들이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므로 세상의 것에 미혹되지 말고 시험을 이겨내고 하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 생명의 면류관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믿음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세상에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증명하는 삶입니다. 즉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12-13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십니다.
소설가 ‘이창동’씨가 쓴 ‘두꺼비와 달’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김흥남’인데, 이 사람은 6.25전쟁고아이며, 생의 밑바닥에서 질경이처럼 세상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억만장자인 친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속고 속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흥남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심증은 충분했지만 자기 재산을 탐낸 사람들의 속임수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흥남에게 ‘자기와 서로 헤어지던 그 당시의 기억을 말해보라.’고 합니다. 그 때 아들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으니 극적인 옛 상황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흥남은 옛 일을 생각하려고 애썼지만 전혀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동안 까맣게 잊혔던 그날의 사건이 너무나 뚜렷하게 뇌리에 떠올랐습니다. 그 어른이 아버지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흥남은 자리를 박차고 정신없이 아버지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아버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흥남은 돌아가신 그 분이 바로 자신의 친 아버지라고 피 맺힌 주장을 폈지만, 그것을 인정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에게 돌아온 것은 미친 사람 취급뿐이었습니다.
만약 소설의 주인공이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아들이라는 인정을 받았더라면, 그의 삶과 신분은 전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밑바닥 인생을 살지 않고 억만장자인 아버지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은 여기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아들로 인정하신다면 천하에 무엇이 부럽겠습니까?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선지자 이사야는 이사야 49:5절에서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라고 고백하며, 다윗은 시편 18:1절에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본문 12절을 읽어봅시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이 말씀에서 “시험”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페이라스몬’을 썼으며, 영어로는 temptation 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말은 ‘유혹’, ‘도전’, ‘역경’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살아가노라면 수많은 유혹들이 다가옵니다. 물질의 유혹, 명예의 유혹, 권력의 유혹, 자녀로 인하여, 형제자매 간에, 부부사이에, 이웃 간에, 성도들 사이에, 신앙의 길에서, 심지어는 말(言)이나 먹는 음식에까지. 유혹이나 도전, 역경 등의 시험꺼리는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이런 시험으로부터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이 모든 유혹들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잘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19절에서는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이런 유혹이나 시험을 견뎌야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본문말씀에서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모든 유혹들은 자기 욕심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하는 시험을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시험하신다.’고 할 때에는 ‘도키마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test를 의미하며, ‘시험하다’, ‘입증하다’, ‘조사하다’등의 의미입니다. 이 의미를 고린도전서 3:13절에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즉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시려고 성도가 세상에서 행한 일을 조사하고 입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험꺼리들은 사람의 욕심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시험을 이겨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욥에게 주어졌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하여 사단의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앞쪽의 2-4절을 봅시다. 현대어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뻐하십시오. 험난한 길은 여러분에게 인내를 기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인내력을 기르십시오. 여러 문제가 닥쳐올 때 거기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지 마십시오. 인내력이 충분히 길러지면 여러분은 완전히 성장해서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유혹과 시험을 이겨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17절을 봅시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이 말씀은 온갖 좋은 것들이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인데, 이것을 주시는 하나님은 변함이나 불완전함이 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도 변함없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과 모든 좋은 것들을 받으려면 시험을 견뎌야 하고,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시험을 받아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유혹거리를 마음에 품고 있다면 시험이 닥칠 때 바로 미혹 당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담배와 라이터를 호주머니에 넣고 있다면 그는 흡연의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거 하나만 피우고, 이 한 갑만 피우고... 결국은 유혹에 무릎 꿇게 됩니다. 이기고 싶다면 자기 마음을 다스리고 그 유혹거리들을 모두 멀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을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편안히 하나님 나라로 가도록 버려두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3:22절에서 미리 경고하십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그러므로 이런 시험을 이기려면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19세기의 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변호사이자 교수였으며 뜨거운 신앙의 소유자인 ‘스파포드’(H. G. Spafford, 1828-1888)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큰 시험이 연달아 덮쳐왔습니다. 1871년에는 그의 전 재산을 투자하여 시카고에 별장을 지었는데, 시카고의 대 화재로 인하여 재로 변했습니다. 상심한 아내와 네 딸을 위로할 겸 유럽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자신에게는 급한 일이 주어져서 아내와 네 딸만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1873년 11월 15일 아내와 네 딸은 프랑스 소속 여객선을 타고 뉴욕 항을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인 22일 새벽, 안개로 인하여 영국 국적의 철선 ‘로션’호와 정면충돌하여 30분 만에 대서양 밑바닥으로 침몰했습니다. 이 사고로 226명이 희생되었으며, 그 중에는 스파포드 변호사의 네 딸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내는 구조되어 영국으로 갔으며, 그 소식을 들은 스파포드 변호사는 아내를 만나기 위하여 영국으로 향했습니다. 사고 해역을 지나면서 스파포드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밤새도록 울부짖었습니다. 그는 선실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간구하며 말씀에서 위로를 구하다가 시편 23편을 읽고는 크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떠오르는 영감을 기록했는데,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이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 바로 찬송가 413장의 가사입니다.
절망스러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스파포드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시험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믿음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흔들어대고 있습니다. 온갖 불신앙적인 유혹들이 성도의 삶을 흔들고 있습니다. 지금의 가장 큰 시험은 아마도 풍요롭고 편안하고 즐기는 생활을 위한 물질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과 우리의 소망을 온전하게 이루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은 세상 것과는 달라서 고갈되지 아니하며, 완전한 기쁨과 평안과 만족을 누리게 합니다. 요한복음14:27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처럼 우리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온갖 유혹과 시험을 잘 이겨내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아 생명의 면류관을 확실하게 챙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