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믿음과 능력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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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5-19 22:53
*** 진정한 믿음과 능력 / 마태복음 8:5-13
마태복음 8:5-13,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 들어가는 말
옛 속담에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일에는 정성을 들이지 않고 이익에만 매달린다.’는 뜻입니다. 즉 정작 중요하게 매달려야 하는 일에는 소홀하고 사사로운 이익에 관심을 두고 매달린다는 것입니다. 자기 나름대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인들 중에는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르는 일보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육신의 일 때문에 신앙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성실하고 믿고 순종할 때에 주어지는 부수적인 은혜와 능력을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더 좋아합니다. 이런 일은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16-1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세상에는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진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삶이 가장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께서는 ‘교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많은 사람들은 ‘믿음’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는 능력을 가지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에 대하여 좋은 말을 하며, 마치 믿음이 자신들의 소유인 것처럼 외칩니다. “내 말을 믿기만 하라. 그러면 승리할 것이다. 믿음을 가지기만 하라.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 한다면 ‘믿음’은 만사형통케 하는 신비한 능력쯤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가지고 싶은 것이나 되고 싶은 대상을 마음에 그리고, 눈에 보이도록 붙이기도 하면서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라고 스스로 믿음을 가집니다. 이런 것을 ‘긍정적 사고방식’이라고 합니다. 혹 이것을 세상에서는 믿음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본문을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이 무엇인지, 그 믿음으로 말미암는 능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이적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그 마을에 주둔한 로마군대의 백부장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과로워하나이다.”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쳐주겠다고 하시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합니다. 이 말에는 큰 믿음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며, 둘째는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 즉 병까지도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이며, 셋째는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만 하셔도 병이 낫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놀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서도 이런 믿음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셨고, 그 즉시 하인이 나았다고 증언합니다.
히브리서 11:1절에서는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합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이 바로 백부장이 보여준 믿음입니다. 즉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말씀으로만 하셔도 하인의 병이 나을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의 실상은 능력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런 믿음은 지금 세대에도 찾아보기가 힘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믿을만한 다른 보조 수단을 찾습니다. 즉 안수하거나, 기름을 붓거나, 적어도 가까이 가서 기도라도 해 주신다면 병이 더 쉽게 치유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사람들의 자기신념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에게 비는 것도 이와 같은 자기신념의 산물입니다. 믿음은 결코 사람의 신념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당연히 하나님께서 믿음의 대상이 되십니다. 백부장은 바로 이 믿음의 원리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 자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한 마디가 시공을 초월함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믿음이며, 또한 그 믿음으로 말미암는 능력입니다.
※ 믿음은 그 대상이 분명해야 합니다.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일에는 대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는 각자의 신념과 세상적인 믿음을 필요로 합니다. 버스를 타거나 운전을 하거나 걷는 것이나 심지어 음식을 먹을 때에도 신념이나 믿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만일 내가 탈 차량이 사고가 날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면 아마 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음식에 독을 넣었을 것이라고 의심이 된다면 먹지 않겠지요. 세상의 모든 일에는 나름대로의 신념과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그 대상이 세상적인 것이어서 대상에 따라서 신뢰도도 달라집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그 대상에서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대상도 세상적인 것이라면 그 삶도 세상 사람들과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13-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호주에서 사역하던 선교사가 어떤 일을 계획하면서 2000만 원 정도의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일주일동안 편지 50여 통을 쓰고 국제전화도 하고 온갖 궁리를 다해서 계산해 보았지만 삼백만원 정도 밖에 나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물론 기도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없어서 그 계획을 취소하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초조감과 좌절감 패배의식 같은 것으로 영적 저기압 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남편의 그 모습을 본 그의 부인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시나요?” 남편 선교사가 “그렇다.”고 했더니,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들으신다는 것도 확신하시는지요?” 이 물음에 ‘너는 정말 나를 믿느냐?’라고 번개처럼 스치는 주님의 책망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사실 하나님 보다 그 많은 후원자들을 믿었던 자신을 회개하고 다시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선교사처럼 잘못된 대상을 향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의 차이는 믿음의 대상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본문말씀의 백부장을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께 대한 신뢰가 탁월합니다. 자신의 하인의 중풍 병을 위하여 예수님께 간구하는 그 자체가 이미 확신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라는 그의 믿음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초월적인 능력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적인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에 대하여 ‘놀랍다!’라고 감탄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러해야 합니다. 백부장이 예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했다는 것은 첫째로 하인이 병으로 괴로워한다는 사실만을 아뢴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는 등 자신의 생각과 뜻을 말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신뢰는 하나님께 아뢰는 것으로 족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뜻하신 대로 이루게 해 주십시오.’라는 전적인 의뢰입니다. 백부장이 예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했다는 것은 두 번째로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향할 때에도 이러한 전적인 의뢰가 있어야 합니다. 백부장의 예수님께 대한 이런 신뢰는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그의 생활이 항상 그러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그 자체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바라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셨는데, ‘실상’과 ‘증거’는 현존하는 사람의 삶을 말합니다. 믿음장으로 불리는 히브리서 11장 전체가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생활 속에서 증명되어져야 합니다.
※ 대상이 분명한 진정한 믿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백부장은 하인의 병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구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뢰했을 때에 즉시로 능력이 발휘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시니 ‘즉시 하인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1:22-23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이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삶에서 나타나는 능력을 말씀합니다. 사무엘상 1:17-18절입니다.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가 자식이 없어서 성전에서 울며 하나님께 구했을 때에 엘리 제사장이 그에게 축복했습니다. 그 이후로 한나는 다시는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삶입니다. 이 한나의 믿음의 삶에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고 하십니다. 그 후에 사무엘을 낳았고,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친 이후로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뢰하는 진정한 믿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문제는 두려움과 의심, 세상적인 믿음과 신념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 마음에 쌓여있으면 우리의 생활이 혼란스럽게 됩니다. 세상적인 가치관과 영적인 가치관이 섞여서 생활을 혼란스럽게 하고 삶을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잘 아는 말씀인 야고보서 1:6-8절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지만 이런 믿음을 갖지 못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얻지 못하고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났습니다. 지금 우리도 만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너무도 당연히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납니다. 로마서 11:20-21절입니다.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여러분 삶이 바쁘더라도 잠간 멈추어 서서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십시오. 타이어가 펑크 난 채로 더디고 불편하게 다니는 것보다 잠깐 지체하더라도 새 타이어로 고치고 달리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지 않도록 믿음을 정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정한 믿음의 능력을 나타내는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