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지혜로 이루는 풍요로운 삶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308회 작성일 2015-11-04 16:07

*** 지혜로 이루는 풍요로운 삶 / 에베소서 5:15-21


에베소서 5:15-21,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들어가는 말

지금 가을걷이가 한창인데 이렇게 풍성한 수확의 모습만 봐도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그래서 목축업을 하는 유대인들에게는 양털을 깎는 때가 가장 마음이 넉넉해지는 때입니다. 물론 월급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한 달의 수고의 대가를 받는 월급날이 마음 넉넉한 날이겠지요.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넉넉하고 풍요로운 삶을 소망하고 기대합니다. 영의 삶이나 육신의 삶, 어느 것이든지 풍성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영의 삶이든지 육신의 삶이든지 나름대로 부족함 없이 풍성하고 잘되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노력이 정말 풍성한 삶으로 가는 길인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중의 하나를 ‘양들의 풍성한 삶을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10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래서 이 시간에는 수확의 계절답게 풍요로운 삶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려합니다.

※ 먼저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실천적인 삶에 대하여 자세하게 지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에베소 교회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어울리지 못하는 분열을 막기 위하여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됨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5:1절에서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라고 하시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하나님을 닮은 삶이 되어야 함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면서 가르치십니다. 5:2-4절을 봅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닮은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가르치면서 결론적으로 본문말씀에서 행동강령을 요약하여 전합니다.

하나님을 닮는 새 사람으로서의 삶을 이루는 행동강령을 요약하면 ‘지혜롭게,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하며 피차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 15-17절에서는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지금의 시대가 악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기회를 사서라도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지혜를 가지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 안에는 풍요로운 삶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지금 말씀하는 이러한 삶이 영의 삶뿐만 아니라 육신의 삶까지도 풍요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 풍요로운 삶으로 가는 길은 곧 지혜의 길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지금 우리의 시대는 대충 살아서 될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롭게 선택하고 실행하여야 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를 보십시오. 말 한마디 잘 못하고, 행동 하나 잘 못해서 앞길을 망치거나 부끄러움을 당하고 패가망신(敗家亡身)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확천금(一攫千金)을 노리고 불법과 끔찍한 범죄를 스스럼없이 저지릅니다. 조금만 더 깊이, 조금만 더 지혜롭게 생각하면 결코 이렇게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않을 터인데 눈앞의 이익과 쾌락에 빠져 죽음을 자초합니다. 우리 시대가 이렇게 타락하고 범죄가 만연한 이유는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고난과 어려움은 못견뎌합니다. 그래서 앞뒤를 생각하지도 않고 쉽게 얻는 범죄의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마저 이렇게 쉬운 길을 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 좁은 길,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는 지는 길,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길, 믿음의 선한 싸움을 감내하는 길, 등등. 그러나 이렇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13-14절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화니 크로스비 (F.J.Crosby) 여사는 8,000여 곡 이상의 찬송시를 썼습니다. 그 중에서 21곡이 현재의 찬송가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전체 찬송가 645곡 중에서 21곡을 작사했습니다. 크로스비 여사는 생후 6주 만에 시력을 잃고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마음의 고통을 느껴본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크로스비 여사를 만났던 어느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당신에게 그렇게 많은 은사를 주셨으면서도 시력을 주시지 않는 것이 섭섭합니다.”
그러자 여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 한 가지 청원을 할 수 있었다면 장님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간청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하셨지요?”
목사님이 놀라서 “왜 그런가요?”라고 물었습니다.
“내가 눈으로 처음보고 기뻐하게 될 것이 천국에서 뵐 주님의 얼굴일 테니까요.”

저는 크로스비 여사가 작사한 찬송을 많이 좋아합니다. 정말 너무나 깊은 신앙의 세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또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이런 깊은 감동의 찬양은 크로스비의 고난의 삶을 통하여 나온 것입니다. 바닥에 장애물이 없는 시냇물은 소리 없이 흐르지만, 울퉁불퉁 크고 작은 돌들이 깔려 있는 냇물은 졸졸졸 작은 소리부터 쿠르릉 콸콸 엄청난 굉음까지 장엄한 자연의 오케스트라와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우리 시대처럼 온갖 악으로 만연한 영적인 어둠의 때에는 자신의 행동을 지혜롭게 하여 성령 충만한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때에는 자세히 주의하지 않으면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당장 자신의 눈앞의 생활과 이익에 마음을 빼앗겨서 영의 세계를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입니까? 잠언 9:10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신의 모든 삶을 온전히 맡기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잠언 3:5-6절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하시며, 16:3절에서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하십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있습니다.
그 특징은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이란 성령께서 우리 영에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어떤 물질처럼 가득했다가 줄었다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의 강력한 지배와 통제를 받는 것이며, 성령님께서 공급하시는 강력한 힘을 덧입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내주(內住)하심과 충만함은 다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그 즉시로 성령께서 우리 영에 들어오십니다. 이것이 내주(內住)하심입니다. 성령이 내주하시지만 주권은 여전히 내가 가지고 있습니다. 충만하심은 우리의 삶의 주권을 성령께서 가지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세상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이유가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지만 충만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심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가도록 지속적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본문 19-20절처럼 주님의 뜻을 찾게 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이루게 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처럼 찬송과 감사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영과 육신의 모든 삶에 활력과 풍요로움을 줍니다. 

1620년 9월 29일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출발한 102명의 청교도들은 180톤 짜리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63일간 3,400마일을 항해한 후 북미 플리머스해변에 도착했습니다. 청교도들은 가장 먼저 교회를 짓고, 다음으로 학교를 지었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첫해 농사를 지어 가을 추수 때에 자신들을 위협하며 괴롭히는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감사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것이 첫 추수감사절이었으며, 이것이 지금의 미국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남미는 북미보다 좋은 자연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가 세계 최강이 되는 동안 남미는 지금도 여전히 질병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그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북미는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개척한 ‘감사의 땅’이다. 그러나 남미는 일확천금을 노린 사람들이 개척한 ‘탐욕의 땅’이다. 북미와 남미가 현격한 생활수준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감사하며 찬송이 있는 가정은 행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후손들이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유익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가정의 후손들은 평생 탐욕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아무리 끌어 모으고 움켜쥐어도 결코 모이는 것이 없습니다. 서양 속담 중에 이런 명언이 있습니다. ‘행복은 언제나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 그렇습니다. 감사의 문으로 행복이 들어오지만 불평의 문으로 행복이 새나갑니다. 일본 마츠시타 전기의 창업자 마츠시타 고노스케 사장은 감사의 마력을 간파했습니다. “감옥과 수도원의 공통점은 세상과 고립돼 있다는 점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불평하느냐, 감사하느냐의 차이 뿐이다. 감옥이라도 감사하면 수도원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행동언어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부어집니다. 잠언 16:7절에서는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시며, 전도서 2:26절에서는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 지혜의 길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을 때에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기쁘시게 하면 영과 육신의 모든 삶에 풍요로움으로 채워주십니다. 때때로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의 끝에는 기쁨과 행복과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불평과 원망, 좌절과 게으름과 불법과 거짓된 악의 길은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모든 행복과 풍성함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미국의 43대 대통령인 조지 W. 부시 (George Walker Bush) 대통령 당시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이 된 뉴욕빈민가 출신 콜린 파월(Colin Luther Powell) 장관의 이야기입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공장에서 어느 날 그는 다른 인부들과 함께 도랑을 파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삽에 몸을 기댄 채 회사가 충분한 임금을 주지 않는다며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서 한 사람은 묵묵히 열심히 도랑을 파고 있었습니다.
몇 해가 지난 후, 다시 그 공장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을 때 여전히 그 사람은 삽에 몸을 기댄 채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열심히 일하던 사람은 지게차를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또 여러 해가 흘러 그곳에 다시 갔을 때, 삽에 기댄 채 불평만 하던 그 사람은 원인을 모를 병으로 장애인이 되어 회사에서 쫓겨났고, 열심히 일하던 그 사람은 그 회사 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파월의 인생에 큰 교훈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나를 구원하시고 나의 모든 삶의 주인이 되셔서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합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가족과 성도들과 이웃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눕시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순종하며 함께 나누는 지혜로운 삶으로 영과 육의 풍요로움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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