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행하는 삶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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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10-29 21:36
*** 성령으로 행하는 삶 / 갈라디아서 5:13-18
갈라디아서 5:13-18,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냅니까?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행동을 꼽으라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예배하는 것, 기도하는 것, 찬송하는 것, 사랑하고 봉사하고 나누고 베푸는 등. 아마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나타낼 수 있는 행동으로 본다면 예수님의 생애(生涯)에서 본을 보이신 ‘섬김’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고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기쁨으로 섬기는 삶은 냉소적인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녹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냉소적인 세상을 사는 제자들에게 섬김의 본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마가복음 10:45절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섬김을 위함’이며, 이 땅에서의 모든 사역도 ‘오직 섬김’이셨습니다. 제자들이 만찬의 자리에서 더러운 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13-15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하버드대 신학대학 교수인 ‘헨리 나우엔(Henri J. M. Nouwen, 1932-1996)'은 정신박약 장애자 공동체인 ‘라르쉬 데이브레이크(L' arche Daybreak)’에서 봉사했습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이며 존경받는 교수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장애자 공동체의 봉사자로 들어갔습니다. 이 ‘라르쉬’공동체는 헨리 나우웬 교수가 봉사자로 있으면서 유명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갑자기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쓴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책에서 왜 라르쉬 공동체의 봉사자로 오게 되었는지를 밝히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그동안 올라가는 길만을 추구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 ‘천재’, ‘신동’이라는 칭찬을 받으면서 자랐고, 하버드대학의 교수가 되기까지 줄곧 올라왔습니다. 지금까지 오직 성공만을 향하여, 다시 말하자면 꼭대기를 향하여 오르막길만을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정신지체인 ‘아담’을 만났을 때, 이런 사람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내리막길을 통하여 예수님을 바로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지시설의 봉사자로 들어왔습니다. 지금까지의 오르막길에서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내리막길에서 나는 복음서에 나타난 진정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같은 책에서 현대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쉽게 빠지기 쉬운 유혹이 “현실적이 되는 것, 멋있게 보이는 것, 힘이 최고라는 생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헨리 나우엔 교수의 고백대로 오늘의 사람들은 ‘성공 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로지 위에 오르겠다는 생각이 현대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등주의’에 빠져서 운동이든, 공부든, 사업이든, 세일즈든, 하다못해 옷, 장신구, 몸매까지도 튀어야 하고, 남보다 나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운동경기에서도 ‘금메달’이 아니면 기가 죽어야 하고, 내 아이가 일등이 아니면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성공을 향하여, 남들보다 우위에 서기 위하여 달리고 또 달립니다. 이런 상황은 교회에도 어김없이 들어와서 ‘우리교회가 다른 교회보다는 나아야 하고 무엇인가가 달라야 한다.’는 엉뚱한 경쟁심과 우월감을 가지려고 기를 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주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본문말씀 13절에서도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본문말씀에서는 이처럼 섬김으로 나타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섬김의 삶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아래의 25절에서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행하는 삶은 어떤 삶인지 살펴봅시다.
※ 성령으로 행하는 삶은 자신을 비우는 삶입니다.
사람들은 출세의 자리를 얻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때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하려 합니다. 그런데 헨리 나우엔 교수처럼 탄탄대로가 열린 출세 길을 마다하고 고생을 자초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탄탄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작은 소유물조차 버리지 못하는 것이 보통의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낮은 자리는 자신의 것을 비워야만 갈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4:3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모두 버려야 한다고 하니 걱정이 되지요?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알거지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명하시면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도록 소유물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관심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요구가 부당하게 여겨집니까? 부당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어진 것들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오면서 가지고 온 것이 있습니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무엇인가를 들고 온 사람을 아무도 없습니다. 욥이 사단의 시기를 받아 모든 소유를 다 잃어버린 후에 욥기 1:2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여러분이 그토록 애지중지 하는 모든 재물도 자식도 모두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할 때에 비로소 자신을 비울 수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비울 때에 그 곳에 주님이 계심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우리 육신의 욕망을 따르지 않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6-17절을 봅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면서 죄로 죽은 인생들을 살리시려고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권한도 명예도 버리셨으며, 최소한의 인격과 생명까지도 버리셨습니다. 빌립보서 2:5-8절에서 자세하게 표현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 주님은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시면서 까지 나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세상의 것을 하나라도 더 많이 가지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첫 번째로 해야 하는 것이 세상의 것, 육신의 것을 벗고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따르는 무리들에게 분명하게 선포하십니다. 마가복음 8:34절입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 말씀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본문 13절에서도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버리고 비울 수 있습니까? 육신의 욕망을 따라가는 삶으로는 결코 자신을 비울 수 없습니다. 본문 16-17절 말씀이 이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신의 욕망과 성령님의 행하심은 서로 반대의 성질입니다. 육신을 따라가면 성령님을 거역하게 되고, 성령님을 따라 행하면 육신의 욕망을 거역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생활을 보면 성령님을 따르는지 자기 육신의 욕망을 따르는지를 알게 됩니다. 만일 육신의 욕망을 따르게 되면 영원한 생명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게 됩니다. 육신의 욕망을 따르는 일이 어떤 것인지 본문 다음 구절인 19-21절까지 설명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21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그래서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은 육신의 욕망을 거절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게 됩니다. 즉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충만하시면 세상의 것들과 육신의 욕망이 가치 없게 여겨지고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행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 자신을 비운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자신을 비운다는 것을 본문 13-15절에서 설명합니다. 다시 함께 읽어봅시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이 말씀에서 “자유”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죄로부터의 자유’를 말합니다. 즉 구원받은 확실한 그리스도인은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이후에 나오는 성령님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삶을 ‘성령의 열매’라고 표현했습니다. 22-25절을 읽어봅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할지니라.” 이것이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운 삶입니다. 즉 자신을 비운다는 것은 자신의 권리와 이익과 주장을 다 버리고 오직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사랑의 섬김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섬김은 순종과 희생을 포함하는 실제적이고도 의지적인 삶입니다. 고린도전서 10:33절에서는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 했으며, 로마서 15:1-3절에서는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비우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자유와 권리까지 희생해가면서 하나님께 순종하여 사랑의 섬김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성령으로 행하는 삶’입니다. 성령으로 행하는 삶을 요약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비우고 사랑의 섬김을 이루는 삶’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기도가 응답 되며(요15:7), 삶의 기쁨이 충만하게 되며(요15:11)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가 지속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바로 이 일을 행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이 종말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지키며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성령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행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말씀중심의 삶과 쉬지 않고 기도하는 기도의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으로 이 어두운 시대를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나타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