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자녀라 일컬음 받는 사람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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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9-07 22:07
***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 받는 사람 / 요한일서 3:1-10
요한일서 3:1-10,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할 하심이라. 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 들어가는 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이 말씀은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하신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몸 된 대복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죄의 값을 갚아주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보내주신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1:22-23절에서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비록 작은 교회이지만 주님을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주님의 몸이며 자녀들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지극한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신 이 사랑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겠습니까?
1871년 10월 8일(주일) 시카고의 어느 교회당에서 무디(Dwight L.Moody) 목사님은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와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이 설교가 거의 끝날 즈음에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으로 가서 이 중요한 일을 신중히 생각하여 보고 다음 시간에 와서 그리스도께 여러분의 결심을 하십시오!”
그런데 그 날 저녁 8시가 지난 즈음에 온 도시가 소방차의 요란한 소리로 온통 소란했습니다. 시카고 외곽 농가에서 시작된 불이 3일간 ‘시카고’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이 대화재로 인하여 시의 중요한 모든 시설이 불에 탔으며, 공식 발표된 사망자만 300명이었고 1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예배에 참석했던 사람 중 많은 사람들이 불에 타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이 일이 일평생 동안 마음에 걸렸습니다. 목사님은 그 때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큰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리스도께 오늘 결심하도록 초청하고 강권하겠습니다.”
저 역시 무디 목사님처럼 가슴 아픈 후회가 남는 몇몇 일이 젊은 시절에 있었습니다. 그 이후 할 수만 있다면 만나야 할 사람 만나는 일이나 해야 할 일이나 가야 할 것 등등 미루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치 앞도 알 수 없습니다. 무디 목사님의 교회처럼 오늘 저녁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하루, 한 순간의 일들을 신중하게 결정하고, 결심한 것은 미루지 말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렇게 미루지 말고 실천해야 할 일 중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해야 할 중요한 내용이 본문말씀에 있습니다. 본문 2-3절을 봅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 받는 사람들이 마땅히 나타내야 하는 삶을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감으로서 나중에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 분명하게 주님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소망하는 사람은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고 하십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서기를 소망한다면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나는 스스로를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빛과 어두움’, 이는 성경 말씀에서나 찬송이나 복음송에서 많이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이 주제는 영적인 세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 편에 속한 깨끗하고 맑은 ‘영적인 밝음’입니다. 이에 대비되는 ‘어두움’은 사탄이며, 사탄이 주도하는 세상의 죄악이며 ‘영적인 어두움’입니다.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둠이 결코 존재할 수 없듯이 빛이신 하나님께 속한 사람에게는 어둠이 없어야 합니다. 어둠이 있다면 하나님께 속할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8:12절입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일서 1:5절에서는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라.”고하시며, 에베소서 5:8절에서는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하십니다.
인디언의 우화 중 아주 짧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태양’이 어둠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를 못해서 ‘별’이 ‘태양’을 데리고 아주 캄캄한 굴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 굴에 태양이 들어서자마자 어둠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역시 태양에게 어둠을 보여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우화가 말하는 것은 ‘어둠을 해결하는 길은 어두워진 원인을 분석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빛이 되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물러가게 하는 길은 빛이 있게 하는 것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세상이 썩을 대로 썩었고, 정직하고 의롭게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고 탄식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하는 자신들은 정의롭게 사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들도 ‘법을 지키거나 의롭게 살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남들과 같이 요령껏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외치는 그리스도인들조차 세상을 한탄하면서도 세상과 함께 어우러져 어둠만 더 깊어가고 있습니다. 본문 3-6절을 봅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죄는 불법이며 영적인 어둠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죄를 회개하는 것이며, 더 적극적으로는 이러한 어둠의 죄에 동참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9절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십니다. 또한 본문 9절에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고 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어둠을 벗지 못하고 있다면 빛이신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도 없으며 빛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된 하나님의 자녀이며 빛의 자녀입니다. 이런 빛들의 모임이 교회이며 동시에 우리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요한계시록 19:7-8절을 봅시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신부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수행하는 거룩하고 선한 행실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않든지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이 머무는 삶의 자리에서 빛의 삶을 나타내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 자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1-14절의 혼인잔치 비유를 통하여 이 사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11-13절입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이 교회 된 우리 하나님의 자녀는 회개와 적극적인 선을 이루는 삶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지금 하십시오.
어느 젊은 그리스도인이 자선 기관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친구들이 그에게 갑자기 사직한 사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뜻밖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 것도 말 할 것이 없네. 다만 내 자신이 염려되어 나왔을 뿐이야. 더 있다가는 뼈에 때가 묻겠기에 피부에 때가 묻었을 때 그만 두어야 하겠다고 생각이 들어 나온 것뿐일세."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아는 사람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머뭇거리면서 떠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지금 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신한다면 즉시 순종하십시오. 혹 여러분의 마음에 ‘이렇게 해야 하는데’ 혹은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이런 생각이 계속해서 양심을 자극한다면 미루지 말고 지금 결단하십시오. 히브리서 3:13-14절입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성령님께서 자극하시는 깨달음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따라가면 자신의 마음에 어둠을 불러들이는 두 마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세상을 의지하고 살면서 하나님을 멀리하는 모습을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경고하셨습니다. 호세아 10:1-2절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북 이스라엘의 13대 왕인 ‘여로보암 2세’ 때에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영적으로는 빈곤의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마음은 온갖 잡초들로 무성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섬겼다가, 바알 신도 섬겼다가 하는 마음의 정함이 없었습니다. 즉 오늘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하고 하나님을 섬기지만, 세상의 것들도 사랑하여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서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의 차이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지 않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내 삶에서 나타나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구별됩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내리시는 신령한 은혜를 사모한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한 마음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22주년을 향하는 젊은 대복교회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의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가야 합니다. 바로 지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고린도후서 6:2절에서 말씀합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때도 ‘지금’이며,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나타낼 수 있는 때도 ‘지금’이며, 나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때도 ‘지금’입니다. 내일은 내게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대복교회를 이룬 우리 모두가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를 이루어 부끄럽지 않게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