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모래금과 금모래의 차이를 아십니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5,000회 작성일 2016-03-02 17:41

*** 모래금과 금모래의 차이를 아십니까? / 요한복음 20:24-29

한복음 20:24-29, “24 열두 제자 중에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제목이 좀 황당하지요? 금모래와 모래금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같은 말 같지만 전혀 다른 말입니다. 금모래는 ‘금 같은 모래’로 금처럼 빛나지만 결국은 모래입니다. 모래금은 ‘모래 같은 금’으로 모래처럼 잘지만 엄연히 금입니다. 왜 제목을 이렇게 했는지는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나 여러분은 매일의 삶이 선택의 연속입니다. 오늘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할까? 어떻게 할까? 누구를 만나고, 교통편은 어떤 것을 이용하고, 심지어는 말하는 것까지도 선택하게 됩니다. 이렇듯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하루가 결정되고 인생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선택의 기준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기준이 되고, 어떤 사람은 명예, 신앙, 학식, 권력, 자신의 신념, 자녀, 건강, 등등.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정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택 기준의 가치입니다. 이사야 2:22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이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즉 ‘한갓 호흡을 의지하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 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진정한 가치관을 무엇에 두어야 하는지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진정한 가치관이겠습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되어 삼일이 지나 부활하신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믿고 따르던 선생님이 어이없이 죽임을 당한 후에 두려워서 집의 문들을 모두 걸어 잠그고 숨어있었습니다. 저녁 무렵에 갑자기 집 안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멍하게 바라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던 자국과 창이 찔렸던 자국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즉 의혹스러움에 머리를 굴리던 제자들에게 확인을 시켜주신 것입니다. 잠시 후에 도마가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이미 예수님께서 떠나신 후였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선생님이 오셨었다.’고 하자 도마는 어이없다는 듯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며 자신이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지 팔일 후에 다신 예수님이 그곳에 오셨습니다. 그 때에는 도마도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인사말을 건넨 후에 대뜸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예수님을 어떻게 부인하겠습니까? 그제야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오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눈으로 확인을 해야만 믿었던 도마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 같지만 실상은 믿음이 아닌, 무늬만 믿음인 사람들 말입니다. 요즘은 기술들이 좋아서 모조품들을 아주 잘 만듭니다. 고속도로 휴게실이나 대형매장의 Food Court(음식점코너)에 보면 음식물 모형들이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오히려 진짜 음식보다 더 맛깔스럽고 풍성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진짜 음식을 대신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 금모래 같은 믿음이 있습니다.

2001년 9.11테러 사건이 있은 후로 전 세계가 출입국 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어떤 사업가가 이태리로 출장을 갔다가 일을 마치고 귀국하기 위하여 시간에 쫓겨 출항시간에 임박하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로마 공항의 검색이 까다롭기로 유명하여 무려 네 번의 검색을 거친다고 합니다. 세관, 이민국, 외화 반출 검사대, 마지막으로 면역소를 거친다고 합니다.
이 사업가는 비행기를 놓칠까봐 안절부절못하면서 발을 동동 구릅니다. 마음이 조급해 있는데, 그 사업가의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어깨를 툭툭 치면서 하는 말이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선생님이 탑승하기 전까지는 비행기 문이 절대로 닫히지 않을 것입니다. 원래 이 공항의 수속 시간은 오래 걸립니다.”라는 것입니다. 이 사업가는 황당하다는 듯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는 “당신이 무엇을 믿고 그렇게 장담하느냐?”고 쏘아붙였습니다. 그러자 뒤에 서있던 사람이 한 마디 했습니다.
“제가 그 비행기 기장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런 비슷한 경우를 경험한 적은 없는지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바쁘게 삽니다. 그런데도 별 성과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삶이 즐겁거나 만족한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혼자서 바쁘고 조급해서 안절부절 못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의 가치관으로 판단하고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이 아니면 도무지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거나 자기 확신이 서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믿으려 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가치관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자기 확신입니다. 로마서 10:2-3절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것이 자기중심적 가치관을 따르는 신앙입니다. 자기 확신에 대한 이야기는 야고보서 4:13-17절에 자세하게 표현했습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믿음이 금모래 믿음입니다. 앞의 예화에서 나오는 어느 사업가처럼 자신의 생각과 뜻에 빠져 있으면 사실을 말해줘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믿음 같지만 사실은 믿음이 아닌 자기 확신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도마가 그 좋은 예입니다. 3년이나 예수님을 따르면서 온갖 이적을 눈으로 보고 경험했던 도마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에 미리 제자들에게 고난 받으실 것과 십자가 죽음과 삼일 후에 다시 살아날 것에 대하여 세 번이나 분명하게 확인시켰습니다. 더욱이 다른 제자들이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Doma syndrome(도마 증후군)입니다. 자신이 확인하기 전에는 결코 믿을 수 없거나, 자기 확신으로만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확신을 의지하는 이유는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나사로가 잠자고 있는 줄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라고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밝히 말씀하시기를 “나사로가 죽었다”고 하시면서 ‘나사로에게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여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죽었는데 어떻게 깨운단 말인가!’그때, 도마가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대단히 용감한 도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도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죽으러 가자.’고 하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말씀이니까 즉흥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들 가운데도 ‘교회를 가지만 왜 가야하는지’를 모르면서 교회에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왜 믿어야 하는지, 왜 헌금하고, 왜 봉사하고, 왜 헌신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그냥 따라하는 경우나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깨닫지 못하거나 불신과 의심의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금모래처럼 믿음의 흉내만 내는 것입니다. 금모래가 아무런 가치가 없듯이 자기 확신적인 믿음도 가치가 없습니다. 가치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가 없음을 뜻합니다.

※ 모래금 같은 믿음이 있습니다.

일명 사금(砂金)이라고 하는 금은 모래처럼 잘아서 반짝이는 모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금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에서 빌라델비아 교회가 가졌던 믿음입니다. 요한계시록 3:8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겉으로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그런 교회였지만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교회였습니다. 마태복음 25:40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그리고 마태복음 10:42절에서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작은 자”란 ‘무시할 수 있는 비천한 사람’ ‘소외된 사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 등을 통틀어서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는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대접이라고 할 것도 없는 냉수 한 잔을 주는 행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행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라는 조건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따르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며, 모래금처럼 비록 보잘 것 없는 작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생활 속에서 능력이 나타나는 신앙입니다. 본문 27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신 것은 비록 작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이처럼 진정한 믿음이라야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장래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크고 위대한 일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무시할 만큼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믿음으로 행할 때에 세상을 바꾸는 능력이 됩니다. 남자 장정 오천 명을 먹인 것은 많은 떡과 고기가 아니었습니다. 어린아이가 가져온 아이 주먹 만한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였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사랑을 품고 주님 말씀에 의지하여 행한 작은 선행과 위로와 섬김과 봉사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이 시간을 장래의 생명과 삶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여 가식적으로 산다든지, 자신의 미래에 아무런 덕이 되지도 못하는 남을 흉내 내는 삶은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는 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금모래처럼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닌 비록 모래금일지라도 금의 가치를 가진 믿음이 되어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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