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세상을 밝히기1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728회 작성일 2016-01-06 21:03

*** 세상을 밝히기 1 / 마태복음 5:13-16

마태복음 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들어가는 말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시들어지고 쇠퇴하여 갑니다. 물론 사람도 예외가 아니어서 만물이 가는 길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원숙하게 익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20:29절에서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고 했으며, 16:31절에서는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인터넷의 어느 글에서 어느 노부인이 머리카락을 정리하려고 미장원엘 들렀을 때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조금 편집하면 이렇습니다.
머리카락이 백발이 된 것을 보고 미용사가 염색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자 노부인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결코 염색하지 말고 얼굴의 주름도 펴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얼굴의 주름과 백발을 얻기까지 70년이 넘는 세월동안 공을 들였다오.”

이처럼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인격과 성품과 신품(信品, 신앙의 품성)이 원숙하게 익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인격과 성품과 신품이 원숙해지게 되면 당연히 그의 삶에서 아름다운 생활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을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착한행실”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런 착한행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박해의 바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탄과 마귀의 세력들이 인간을 하수인으로 삼고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미친 듯이 날뛰고 있습니다. 이 악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길은 흠 잡을 것이 없도록 성실하고 거짓이 없는 진실한 생활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뿐입니다. 이미 초대교회 당시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16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그래서 올해에는 우리교회가 세상을 밝히는 교회로 일어나도록 기도하면서 작은 것부터 함께 실천해 갑시다.

※ 빛이 되려면 먼저 나를 태워야 합니다.

세상의 빛 되기 첫 번째 말씀은 빛이 되기 위하여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헌신과 희생’에 대한 말씀입니다. 광원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빛을 내기 위하여 해야 하는 일은 빛을 위한 에너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촛불은 초 스스로를 녹이며 태워야 하고, 장작불도 나무 자신을 태워야 하며, 전기불도 화력, 풍력, 수력, 원자력 등 어떤 것이라도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빛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자신은 아무 손해도 보지 않고 어떤 노력이나 희생도 없이 빛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빛’이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밝히는 착한행실입니다. 요즘 어느 방송사의 프로그램에서 ‘착한 식당’ ‘착한 먹거리’를 전국에서 찾아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보셨겠지만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먹을거리를 만드는 곳이 정말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돈을 벌기 위하여 양심을 버린 수많은 상술도 보았습니다. 입맛만 속이는 비양심적인 음식들은 결국 사람의 몸을 병들게 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정직하게 만든 음식들은 사람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기분 좋게 합니다. 이런 정직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정말 힘들게 노력하는 모습들이 안쓰럽기까지 했습니다. 지금 세상은 이런 음식뿐만 아니라 착한 교회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바로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이런 착한 교회, 착한 신앙을 기대하십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착한 음식 하나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노력한다면 착한 신앙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겠습니까? 시간과 돈과 재능과 노력 그리고 관심과 사랑을 부어넣어야 합니다. 시간과 돈과 재능과 노력, 관심과 사랑을 부어넣는 것이 희생이고 헌신입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착한행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의 착한행실입니다. 즉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는 착한 신앙, 착한 교회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뜻이 고린도전서 13:1-3절에 자세하게 담겨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고린도전서 16:14절의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희생과 헌신은 사랑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과 다른 것입니다.

몹시 추운 12월 어느 날, 뉴욕시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열 살 정도 된 작은 소년이 브로드웨이 가의 신발가게 앞에 서 있었습니다. 맨발인 소년은 치아를 부딪칠 정도로 심하게 떨면서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측은하게 지켜보던 한 부인이 소년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꼬마야! 진열장을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유라도 있는 거니?”
“저는 지금 하나님에게 신발 한 켤레만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중이에요.”
부인은 소년의 손목을 잡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인은 우선 여섯 켤레의 양말을 주문하고, 따뜻한 물이 담긴 세숫대야와 수건을 요구해서 가게 뒤편으로 소년을 데리고 가서 앉히더니, 무릎을 꿇고 소년의 꽁꽁 언 차가운 발을 씻긴 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주었습니다. 부인은 점원이 가지고 온 양말 중에서 한 켤레를 소년의 발에 신겨 주었습니다. 소년의 차가운 발에는 이윽고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부인은 신발과 양말도 사 주었습니다. 남은 다섯 켤레의 양말은 도망가지 않도록 끈으로 묶어 소년의 손에 꼭 쥐어 주면서 소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꼬마야, 의심하지 말거라. 자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니?”
소년은 엷은 미소를 띠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부인도 살짝 소년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 그녀가 가던 길을 가기 위해 몸을 돌리려는 순간, 소년이 부인의 손을 잡고는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은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습니다.
“아줌마가 하나님의 부인이에요?”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 웃음도 나고 감동도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작은 아이의 마음이 감동되면 예수님의 마음도 감동됩니다.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의 비유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5:40절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이처럼 작은 사람 하나 감동시키는 것에도 자신을 낮추고 헌신해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는 삶을 이루려면 먼저 시간과 돈과 재능과 노력, 관심과 사랑을 부어넣는 자신의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만 합니다.

※ 빛이 되는 삶이란 본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을 봅시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등불을 두는 위치는 모든 것을 비출 수 있는 위쪽입니다. 전등은 항상 위쪽에 있습니다. 당연히 등불의 목적이 모든 것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빛이 되는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주목하는 본이 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개독교라고 욕하는 이유는 그만큼 많은 관심이 있다는 표현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기독교인은 적어도 넒은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며,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기대하는 것에 미치지 못하게 되니까 욕하게 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 중에 ‘점치는 크리스천’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습니다. 그 글을 관심 있게 읽어보았는데 아마도 미국 이민자 사회인 듯 합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새벽기도를 정말 열심으로 하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교회에서 만났는데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이유를 물었는데 충격적인 대답이었습니다. “나 내년부터 삼재래. 그래서 나쁜 것 오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중이야.” 삼재(三災)란 불교에서 말하는 악재인데, 12지간에 따라 인간에게 9년마다 찾아오는 3년간의 악재를 말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삼재를 받아들였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걸 막아달라고 왜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입니까?
이 글을 올린 청년이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 아닌 무속이나 기타 역학 등을 통해 미래를 의지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또 점을 보러 찾아오는 크리스천들을 보는 무속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궁금해서 LA 한인 타운에서 용하다고 소문난 무속인의 집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청년은 무속인에게 신년운세를 물으며 여러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 기독교인이라 이렇게 찾아오기가 마음에 부담이 컸다.”고 말하자 무속인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의 99%가 아마 기독교인일 것이다.”
청년은 그렇게 단정 짓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무속인은 교인들뿐만 아니라 목회자들도 심심찮게 들린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 친한 목사님이 있는데 그 분은 심지어 선교지를 나갈 때에도 어디가 좋을지를 묻기도 합니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 목사님들은 특별히 물질과 관련해 조언을 듣길 바라죠.”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는 동성 간의 결혼을 합법화 시켰고, 동성애자 목사도 허용하는 타락의 극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의 인권 운운하면서 입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뎀나무그늘교회, 성문밖교회, 향린교회(서울명동), 들꽃향린교회(천호동), 강남향린교회(거여동), 섬돌향린교회성산동) 등. 이런 교회들마저 동성애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특히 섬돌향린교회는 지난 해 퀴어 축제 때 그들과 함께 시가행진도 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교회를 더럽히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기독교인이라는 명칭을 달고 부정부패를 일삼고, 불법과 거짓을 자행하며, 세상을 불신하게 만드는 수많은 행동들을 멀리하고 단절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아름다운 본이 되도록 모든 일에 성실하고 진실하며 신뢰감을 주는 빛 된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1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으며, 빌립보서 3:17절에서는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사는 자들을 눈여겨보라(공동번역/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내 생활을 본받으십시오. 그리고 나를 본받아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님과 앞선 믿음의 사람들을 본받고 또한 다음 세대의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욕하고 하나님을 욕하는 사람들을 잠잠하게 하는 길은 그들 앞에서 빛이 되는 길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시간과 돈과 재능과 노력, 관심과 사랑을 부어넣는 자신의 희생과 헌신을 통하여 선행으로 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2016년에는 이렇게 시작해 봅시다. 작은 것 하나부터 생활 속에서 실천하여 세상을 밝히는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이루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복한 해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원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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